[조경] ‘봄을 알리는 우체부’ 생강나무와 산수유나무

오순화의 나무가 있는 풍경〈30〉

2025-03-24     오순화

주말 아침 겨우내 움츠렸던 몸도 움직일 겸 인근 도심의 산을 찾았다. 복잡한 도시를 뒤로 하고 조금만 산속으로 몸을 숨겨도 딴 세상 같다. 고요함을 느끼며 걷는 길에는 이름 모를 새소리와 오로지 내 숨소리만 들린다. 아직은 알싸한 바람이 콧물을 훔치게 하는데 겨우내 얼어있던 골짜기의 얼음도 녹아내리고 포근해진 날씨에 위엄있게 산을 지키고 있는 바위도 얼어붙은 몸이 녹아 젖어 들고 있다. 돌고 돌아가는 길, 따사로운 햇살 아래 삐죽 얼굴을 내민 진달래가 ‘나 여기 있다’며 손짓하고 봄비가 내리고 나면 봉긋봉긋 꽃망울을 피워 올리리라.

3월은 봄맞이로 분주하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일으켜 산을 오르면 참나무 사이로 샛노란 꽃을 피워낸 생강나무가 반겨준다. 같은 듯 다르게 생긴 산수유꽃을 닮은 생강나무. 아파트에서 산수유를 볼 수 있다면 산에는 생강나무가 있다. 생강나무(영어명: Korean spicebush)는 봄이 오면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식물 중에서 개나리 진달래보다도 먼저 꽃을 피워 가장 일찍 봄을 알리는 ‘봄의 우체부’다.

봄꽃 중에서 산수유와 생강나무는 꽃 피는 시기도 같고 색깔과 생김새도 비슷해서 헷갈리기 쉽다. 사람들은 생강나무를 산수유로 착각하기도 하는데 산수유는 중국이 고향이다. 기다란 꽃대가 있어 하나씩 작은 꽃이 매달려 피지만 생강나무꽃은 가지에 바짝 붙어 주먹을 쥔 모양처럼 몽글몽글 핀다. 어린 가지나 잎을 잘라 비비면 생강 냄새가 난다고 해 ‘생강나무’라는 이름이 붙어졌다. 요즘처럼 헤어 오일이 없던 시절 옛 여인들은 머리카락을 윤기나게 하는 아주까리기름이나 동백기름을 발라 머리를 단장했다.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 열매를 짠 것을 동백유라고 하는데 생강나무에서 동백유가 나온다고 해 동백나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1936년 발표된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은 차나뭇과의 동백나무 빨간 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소설의 동백꽃은 생강나무꽃의 방언으로 소작농의 아들인 주인공과 마름의 딸 점순이의 티격태격 풋풋한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의 한 대목을 읊어본다.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생강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상상이 가는가. 올봄에는 산에 올라 생강나무꽃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생강나무와 산수유는 모두 잎이 나기 전에 꽃이 먼저 피는 ‘선화후엽’으로 생강나무 줄기는 매끈하지만 산수유는 줄기가 갈색으로 껍질이 일어나 거칠고 지저분해 보인다. 쉽게 구분하는 방법으로는 생강나무 잎은 어긋나기로 달리며 튤립 모양으로 가을에 노랗게 단풍이 들고 열매는 둥글고 까맣게 익어 야생 조류들에게 훌륭한 식량자원이 된다.

산수유 꽃

산수유(山茱萸)는 층층나뭇과에 속하는 낙엽성 소교목으로 잎은 마주나기로 달리고 잎 뒷면에 반점이 있다. 아파트 정원이나 근처 공원에서 관상수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산수유나무는 약간 건조한 양지쪽에서 잘 자란다. 열매는 타원형으로 붉게 익어서 말리면 작은 대추처럼 보이며 한방에서 약용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노란색 꽃의 향연이 아름다워 봄꽃 축제로 유명한 구례군 산동면에는 높이가 7m, 둘레가 4.8m에 달하는 노거수 산수유나무가 있다. ‘산수유 시목’이라 부르는 나이가 1000년 묵은 산수유나무는 1000년 전 중국 산동성에 살던 처녀가 전남 구례군 계척마을로 시집을 오면서 고향의 향수를 달래고자 산수유 한 그루를 가져와 심은 것이 전국에 산수유가 퍼졌다고 한다. 산동면이라는 지명도 산수유에서 유래된 것으로 산동 새댁이 심은 나무는 할머니 산수유나무로 부르고 있다.

생강나무 꽃

2021년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지난 10년간 봄철 평균기온이 평년 대비 0.25℃ 상승했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이(2012년 3월 25일~2021년 3월 4일) 관측한 자료에 따르면 제주 애월 곶자왈 숲 생강나무 꽃피는 시기가 9년 전에 비해 21일 빨라졌다고 한다. 진달래는 2009년에 비해 최대 16일(연평균 1.4일) 일찍 봄을 맞았다. 기상청 2023년 봄철 기후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23년 봄철(3~5월) 수도권 평균기온은 13.3℃(평년 대비 +1.8℃)로 1973년 이후로 역대 가장 높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산림의 ‘생태 시계’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점점 빨라지고 있음은 지구온난화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새봄은 조금 기다릴 테니 안단테(andante)로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