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 아파트의 봄은 화단에서 시작된다

오순화의 나무가 있는 풍경〈29〉

2025-03-11     오순화
봄 화단 풍경

벌써 매화꽃이 꽃망울을 활짝 터뜨리고 님 마중 중이다. 해지고 저녁이 되면 쌀쌀함으로 따스한 온기를 찾아가고 세면대의 찬물은 아직도 손이 시린 데 바람은 언제 들락날락해 겨울잠을 자는 대지의 생명들을 쓰다듬었을까. 봄바람은 산을 넘고 물을 건너 호호 불어대며 꽃잎의 가슴을 봉긋 부풀게 하더니 수줍게 터트린 미소가 발길을 붙잡는다.

반려견과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다 보니 한쪽 구석인 곳에 낙엽포대가 수십 개 쌓여있다. 가을에 걷어내고 다시 또 겨우내 흩날리다 여기저기 쌓여있는 낙엽을 걷어냈는지 화단이 깨끗하게 흙의 맨살이 드러나 있었다.

며칠 전 대구에서 근무하는 관리사무소장으로부터 다급히 전화가 왔다. 몇 년 전 ‘오순화의 나무병원’이라는 책을 냈을 때 다른 사람에게도 선물한다며 몇 권의 책을 구입했던 사람이다. 대구에서 일 년에 몇 번씩 조경 교육을 해서 그 어느 지역보다 조경 관심이 높은 곳이란걸 알고 있었다.

“네. 다름이 아니고 낙엽을 치워야 하는지 그냥 둬야 하는지 고민이 돼요. 지금 낙엽 청소를 하고 있는데 동대표 한 분이 왜 치우냐고 그러셔서.”

그에게 낙엽을 왜 이제야 치우는지 묻자 해당 아파트에 관리소장으로 부임한 이후 3년 동안 낙엽을 안 치우고 그대로 뒀다고 한다. 그런데 왜 지금에서야 치우냐고 다시 묻자 화단에 낙엽이 너무 두껍게 쌓여있어서 나무뿌리에 지장이 있을까 봐 걷어내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이에 나는 “소장님 같은 문제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생각하는 것이 달라지듯이 낙엽도 마찬가지예요. 조경하는 분들도 낙엽을 치워라, 치우지 마라. 각자의 주장이 달라요. 저는 관리자 쪽에서 바라볼게요. 낙엽으로 만든 퇴비가 최고의 퇴비가 되지만 아파트 화단의 환경에서는 퇴비가 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미생물이 적다 보니 부식, 즉 썩지 않고 그대로 있게 되고 낙엽 속에 각종 쓰레기(담배꽁초, 비닐, 종이 부스러기, 막대 과자, 과자 포장지, 물티슈 등)도 쌓이고 바람이 불 때마다 여기저기 지저분하게 날려 관리를 안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또 낙엽이 이불 역할을 해 각종 병해충의 온상이 되고 그로 인해 병충해 개체수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파트에서 낙엽을 잘 수거해 퇴비 만드는 곳으로 보내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조언했다.

낙엽을 모으고 있는 모습
낙엽을 모으고 있는 모습

사실 퇴비를 만들려면 양묘장이 있어야 하는데 아파트에 그런 공간을 만들기도 불가능하고 썩을 때 내뿜는 냄새는 더욱 감당하기 힘들다. 가끔 막걸리를 나무에 주면 좋다는 이유로 막걸리를 사다 뿌려주는 아파트도 있는데 입주민들이 냄새 민원을 제기하고 여름철에는 벌레가 생겨 잘해보겠다고 한 일이 괜한 일을 벌인 격이 돼 민원을 만들기도 한다.

토양에 가장 좋은 퇴비는 자연생산물로 만들어 다시 흙이 흡수하도록 한 것이다. 흙의 수명을 늘리는 길은 흙에서 온 것을 다시 흙으로 돌려보내는 것으로 오래전부터 토양 과학자들은 순환농업을 주장했고 서양식 무기질비료나 화학물질의 축척은 동맥경화가 걸린 것처럼 흙이 딱딱해지는 경화현상이 심각해진다고 한다.

1936년 미국 상원은 20년 동안 화학비료와 농약을 농토에 뿌린 결과 미 국민의 99%가 심각한 미네랄 부족 상태라고 발표했다. 즉 몸에 좋다는 과일과 야채를 아무리 먹어도 우리 몸은 필수 영양소 결핍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됐다는 말이다.

봄이다. 화단을 정리하고 부실한 나무들에 무기질비료가 아닌 유기질 퇴비를 먹여 튼실하게 하자. 그리고 비가 오면 도심의 배수구 구멍을 막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낙엽이지만 쓸모에 따라 흙을 살리고 나무를 아름답게 키워주는 소중한 자원이다. 묵은 때를 벗겨내듯이 화단을 깨끗이 정리해 새 생명이 움터 오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