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김미란 칼럼] 과실에 의한 방조, 범죄는 아니어도 불법행위다
승인 2022.05.11 11:48|(1388호)
법무법인 산하 김미란 변호사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근무하던 경리가 9억원 상당을 횡령한 일로 큰 충격을 준 바 있다. 피해 금액도 크고, 횡령 기간도 약 9년에 달하는 데다 경리와 관리사무소장이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어서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문제의 경리는 관리비 계좌에서 장기수선충당금 명목으로 돈을 인출해 개인적으로 사용하거나 개인 계좌에 이체하는 방법으로 꾸준히 횡령했다. 관리사무소장은 경리직원이 매월 월말 결산서를 작성하고 위·변조한 예금잔액증명서를 첨부해 결재를 받는 과정에서 실제 예금 잔액증명서와 대조해 확인하는 작업을 하지 않아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결국 경리의 횡령이 발각됐다. 횡령에 연루된 주요 인물이 사망했으니 사건이 끝났을까? 그렇지 않다. 형사적으로야 사망한 이들을 처벌할 수 없으니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지만 아파트에 발생한 손해를 어떻게 전보할지, 즉 민사적인 문제는 남는다. 최근 해당 사건의 민사소송 판결이 선고됐다(서울북부지방법원 2022. 1. 19. 선고 2020가합29211 판결 참조).

위 아파트는 사망한 경리와 관리사무소장의 상속인들 외에도 서무 주임, 횡령 당시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을 역임했던 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결과는 관리사무소장의 상속인들에게 상속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됐고, 상속을 포기한 경리직원의 상속인들을 비롯해 나머지 피고들에 대한 청구는 모두 기각됐다.

언뜻 횡령을 저지른 경리직원의 잘못이 훨씬 크고, 주의를 제대로 기울이지 못해 횡령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관리사무소장의 잘못이 작은 것 같은데 어찌 이런 결론이 나왔을까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민사(民事)와 형사(刑事)가 다르고, 상속을 포기한 경우 피상속인의 권리뿐 아니라 의무 역시 상속인들에게 승계되지 않는다는 당연한 법리가 적용된 탓이다.

범죄에 해당하지 않아 형사처벌은 면했더라도 민사상 불법행위로서 손해배상책임은 면치 못할 수 있다. 불법행위로서 타인에게 끼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은 고의로 비롯된 행위건, 부주의로 인한 과실이건 큰 차이가 없다. 불법행위 책임에서 거론되는 귀책사유로서의 고의·과실은 특별히 다르게 취급되지 않는다.

횡령을 돕는 방조 범죄는 반드시 고의범이고, 과실에 의한 방조는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민사적으로는 과실에 의한 방조 역시 명백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형사상으로는 과실 방조라는 범죄가 없지만 민사상으로는 얼마든지 불법행위에 해당하는 것이다. 민법 제760조는 공동불법행위자의 책임이라는 제하로 여러 명이 공동의 불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연대해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제1항). 또한 교사자나 방조자 역시 공동행위자로 본다(동조 제3항). 공동불법행위는 상호 간에 공모가 있는 경우에 한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형법과 달리 과실에 의한 방조가 가능하며 이때 과실은 불법행위에 도움을 주지 않아야 할 주의의무가 있는데 이를 게을리해 위반한 것을 의미한다.

관리사무소장은 공동주택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해 입주자 등의 권익을 보호해야 하고 관리비 등을 처리하는 업무에서 경리가 횡령 등 불법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지휘·감독할 의무가 있다. 이를 게을리해 실제 예금잔액증명서와 대조 확인을 하지 않아 횡령을 쉽게 발견하고 예방할 수 있었음에도 장기간 거액의 횡령이 발생하도록 했다면 넉넉히 과실이 인정된다. 과실에 의한 방조 역시 공동불법행위에 해당하므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단 경리직원의 상속인들은 상속을 포기했으므로 이를 배상할 책임이 없을 따름이다.

이에 반해 서무 주임과 횡령 당시 대표회장은 과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행정적인 보조 업무를 수행하는 서무 주임은 자금 관리나 경리 관련 업무를 담당하지 않았고, 대표회장 역시 비록 결재라인에 있었으나 첨부된 예금잔액증명서가 위조된 것인지 여부를 의심해 실제 예금잔액증명서를 대조할 의무까지는 없다고 본 것이다.

이 사건은 비극적인 결말 외에도 장기근속의 끝맺음이 씁쓸해 더욱 안타깝다. 한 곳에서 10년 가까이 일한다는 것이 근래 아파트 관리 현장에서는 흔치 않다. 입주민들로부터 받은 신뢰를 횡령으로 되갚은 것도, 부주의로 횡령을 도운 결과가 된 것도, 무엇보다 제대로 책임지지 않고 삶을 끝낸 것 모두 더없이 안타깝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아파트관리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미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aptn 포토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채용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학의로 282(금강펜테리움 IT타워) A동 18층 1802호  |  전화 (02)873-1114  |  팩스031-423-1143
발행인 : 김한준  |  청소년보호책임자 : 온영란  |  등록번호 : 경기 다 50451  |  등록일자 : 1992. 12. 21.
Copyright © 2007-2022 아파트관리신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