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에서 우수관리단지로 선정된 한 아파트에 취재를 간 적이 있다. 그 아파트는 특히 관리사무소 직원과 입주민이 돈독하게 지내며 장기근속을 이끌어냈다는 점이 돋보였다. 기자 역시도 아파트에서 장기근속을 하는 사례가 흔치 않아 인터뷰이인 관리소장과 입주자대표회장의 말에 더욱 관심이 갔다.

그런데 너무 막역해서 일까. 대뜸 입주자대표회장이 “(소장, 직원들이)너무 오래했어. 바꿔야 하나봐”라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 말에 함께 웃을 수 없었다.

2020년 5월과 10월, 공동주택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그전까지 입주민들에게 “누님, 형님”하며 살갑게 대하고 묵묵히 할 일을 하던 경비원이 입주민의 괴롭힘에 스스로 숨을 거둔 사건, 많은 업무량 속에서도 부당지시에 대항하던 관리소장이 그 지시를 한 입주자대표회장의 손에 숨진 사건이다.

공교롭게도 두 추모식 현장 모두 직접 취재를 나가게 됐다. 동료들과 입주민들의 슬픔으로 가득했던 추모식의 분위기가 여전히 생생하다. 당시 숨진 관리소장의 동료들은 열심히 일해도 자리가, 목숨이 위태로운 현실에서 일할 의지가 사라진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 같은 범죄 사건이 아니더라도 관리소장, 관리직원, 경비원, 미화원 등 근로자들은 혹여나 입주민들이 괴롭히진 않을까, 또 비위를 못 맞춰 잘리진 않을까 두려움에 떨며 업무에 임한다. 위탁관리 재계약 시즌만 되면 그 두려움은 배가 된다. 관리 재계약이 무산되고 새 업체가 들어오게 되면 자신들의 자리도 위태롭기 때문이다.

충남 아파트에서 2년 넘게 근무하고 있는 경비원 A씨는 입주민들의 괴롭힘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해당 동대표는 관리소장을 통하지 않고 A씨에게 쌀을 나르라는 등 개인적인 일을 지시하는가 하면 ‘이중주차 차량을 빼 달라’는 요청에 막말을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A씨는 “동대표의 괴롭힘으로 몸이 너무 안 좋아져 더 이상 못 견디겠다”면서도 잘릴까봐 걱정돼 입주자대표회의나 관리사무소, 관리업체에 말을 못하겠다고 호소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2019년 11월 발간한 ‘전국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경비원 3388명 중 근로계약서상 1년의 근로계약을 체결한 경비원은 2007명(63.7%)으로 절반이 넘었지만 3개월 계약이 21.7%(685명), 6개월 계약이 8.7%(273명)로 경비원 3명 중 1명은 6개월 이하의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리소장의 경우에도 2017년 한 위탁관리업체가 소속 사업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원·급여조사에서 전체 근로자 중 현 사업장에서의 근무기간이 1년 미만인 경우가 44.3%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 이선미 회장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공동주택 관리종사자들의 고용 불안 및 신분 불안정이 해결해야 할 과제”라며 “일부 단지에서는 3개월, 6개월 등 초단기 근로계약이 횡행하는 곳도 있을 정도”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런 현실에서 직원을 “바꿔야겠다”는 웃음 섞인 말은 더 이상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물론 모든 동대표들이 관리 근로자들을 괴롭히는 것은 아니다. 사명감을 갖고 관리업무에 임하는 선량한 동대표들도 다수다.

아파트 입주민들이 관리 근로자를 마음먹으면 해고할 수 있는 갑을관계가 아니라 관리 전문가로, 함께 단지를 가꿔나가는 동료로 바라본다면 근로자들이 괴롭힘 및 해고 걱정 없이 관리역량을 펼칠 수 있지 않을까.

저작권자 © 아파트관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