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회의일 임박 등 사회상규상 허용범위”

사진은 기사와 무관 <아파트관리신문DB>

[아파트관리신문=고경희 기자]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회의 소집권자인 자신의 동의·승인 없이 게시된 회의 공고문을 제거한 것은 사회상규상 허용범위를 벗어나지 않은 정당행위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입주자대표회의 소집 공고문이 위법하다며 제거해 재물손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서울시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 B씨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린 2심을 파기, 사건을 서울남부지방법원에 환송하는 판결을 지난달 30일 내렸다.

입주자대표회장 B씨는 2019년 10월 자신의 승인 없이 동대표 4명과 관리소장이 함께 ‘입주자대표회의 공고문’을 각 동 1층 게시판에 게시하자 이를 뜯어냈다.

이에 대해 1심에서는 무죄 판결을 내려졌으나, 2심 재판부는 ▲B씨로서는 별도 공고문을 부착하는 등 다른 수단을 활용할 수 있었고 ▲입주자대표회의 결의 효력정지 가처분 등을 통해 결의의 하자를 다툴 수 있었으며 ▲공고문 부착 여부가 관리주체의 권한이어서 B씨에게 공고문을 제거할 권한이 없었던 점 등의 사정에 비춰 B씨가 공고문을 뜯어내 제거한 행위는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1심을 뒤집고 유죄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은 2심 판결을 다시 뒤집어 B씨의 행위가 정당행위에 해당한다며 사건을 2심 재판부에 돌려보냈다.

B씨가 제거한 공고문에는 ‘안건(동대표회장 해임 포함)’이 기재돼 있었는데, 동대표 4명이 B씨에 대한 회장 해임의 안건을 제안했으나 B씨가 해당 안건제안이 절차와 규정에 맞지 않음(별지 서식 미사용, 객관적 증거자료 미첨부, 인신공격적 내용 등)을 이유로 제안을 거절하자 관리소장이 동대표들의 요구에 따라 회장인 B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회의를 개최한다는 공고문을 작성하면서 공고주체의 표시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중 ‘회장’ 부분을 삭제하고 직인에서도 ‘장’자 부분을 가려 ‘입주자대표회의’라고 날인했다.

대법원은 “관리규약에 따라 회의는 회장이 소집하도록 규정돼 있으므로 회의 소집공고문 역시 회장 명의로 게시돼야 하고 관리주체인 관리소장은 게시판에 광고물의 설치 및 부착에 동의할 권한이 있으나 입주자 등에게 홍보가 필요한 경우에 그러하고 이를 넘어서 회의를 소집할 권한이 없다”며 “공고주체 표시에 회장 부분 글자가 삭제되고 인영 중 ‘장’자 부분이 날인되지 않았으나 객관적 해석상 회장이나 그 적법한 대행자가 이를 작성·게시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고 일반 주민이나 동대표들이 볼 때 그 차이나 진정한 의미를 쉽게 발견하기도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에 “그럼에도 공고문이 계속 게시되고 이를 방치할 경우 적법한 소집권자가 작성한 진정한 공고문으로 오인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이를 신뢰한 동대표들이 해당 일시의 회의에 참석할 것으로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었다”며 “공고문에 의해 소집된 대표회의는 정족수가 출석해 개최됐더라도 정당한 소집권자가 소집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소집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고 게시판 관리주체인 관리소장이 공고문을 게시했다고 하더라도 소집절차의 하자가 치유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한 “공고문 게시가 계속되고 이를 방치하면 동대표들로 하여금 법적 효력이 없는 무용한 회의에 출석할 것을 강요하는 셈이 되고 위법한 소집절차로 인해 대표회의 내부의 분쟁과 알력이 더욱 심화되는 결과가 초래될 가능성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며 “피고인이 공고문을 발견한 날이 공휴일 야간이어서 소장에게 즉각적인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청하기 어려웠던 데다가 소장 본인이 불법적인 절차 진행에 깊이 관여한 까닭에 이를 기대할 수도 없었던 상황이었고 그 다음날은 공고문에서 정한 회의일이어서 시기적으로 달리 적절한 방안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B씨가 관리소장을 거치지 않고 공고문의 위법성을 지적하는 반박글을 게시하는 것은 그 자체로 또 다른 절차적 위법성 시비를 야기할 수 있고 입주민들과 동대표들에게 큰 혼란과 불신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사태 해결책으로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더불어 “피고인이 위법하게 게시된 공고문을 발견하고 이를 제거한 조치는 위법한 공고문 작성 및 게시에 따른 위법상태의 구체적 실현이 임박한 상황 하에 행위의 효과가 귀속되는 주체의 적법한 대표자 자격에서 위법성을 바로잡기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범위를 크게 넘어서지 않는 행위”라며 “대표회의의 대표자로서 공동주택의 질서유지 및 입주자 등에 대한 피해방지를 위해 필요한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있는 피해를 발생시킨 경우에 지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원심이 회의 소집절차 및 소집권자에 관한 관리규약의 내용 등 B씨가 공고문의 손괴에 이르게 된 구체적인 사정과 그 행위의 사회상규 위배 여부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B씨의 행위가 정당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단정했다고 보고,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판·판단토록 원심법원에 환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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