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산하 김미란 변호사

아파트를 관리하는 데에는 많은 종류의 계약이 체결되고 이행된다. 관리계약을 비롯해 경비 및 미화 용역계약, 각종 공사계약 등 다종다양한 계약이 체결된다. 이때 관리나 경비, 미화 용역처럼 상당 기간 인건비가 지속적으로 지급되는 계약은 그 기간이 1년을 채우지 못할 때 실제로는 지급되지 않은 퇴직금을 아파트에 정산해 줘야 하는지 문제된다.

워낙 유사한 분쟁이 많아 법원에서도 거듭 법리를 확인했는데, 이에 따르면 해당 계약의 법적 성질이 위임이라면 정산해야 하고, 도급이라면 정산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위임은 사무 처리를 타인에게 맡기는 것을 뜻하므로 당사자 사이의 신뢰 관계가 그 어느 계약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위임인의 사무 처리를 맡은 수임인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써 위임사무를 처리해야 하고(민법 제681조), 원칙적으로 제3자로 하여금 사무를 처리하게 하는 복임권이 제한된다(동법 제682조). 특히 위임사무 처리에 비용이 필요하면 위임인은 이를 수임인에게 먼저 지급해야 하고(동법 제687조), 수임인은 위임사무 처리로 인해 받은 금전 기타 물건 및 수취한 과실을 위임인에게 인도해야 한다(동법 제684조 제1항). 따라서 위임의 성질을 갖는 용역계약에서 근로자에게 실제로 지급하지 않은 퇴직금은 마땅히 위임인인 아파트 측에 정산해 돌려줘야 한다는 결론이 된다. 그에 비해 도급은 타인에게 어느 일의 완성을 맡기는 것으로서 주요 목적이 그 일의 결과에 있기 때문에 반드시 수급인의 노무에 의할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위임과 달리 하도급도 무방하고, 정해진 도급비를 지급하면 그 뿐, 실제로 수급인이 해당 비용을 지출했는지 여부를 가려 정산할 의무는 원칙적으로 없다.

결국 미지급 퇴직금의 정산 여부는 해당 계약의 법적 성질이 위임인지, 도급인지 여부에 따라 판가름이 나는데, 이 법리가 일반 수범자에게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계약의 법적 성질을 계약의 제목이 도급계약인지, 위임계약인지 여부로 가린다면 모를까 계약의 내용을 일일이 살펴 구분해야 하니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위임 계약의 특징으로 볼 수 있는 선관주의의무나 복임권 제한 등이 있는지를 하나씩 살펴야 한다. 비용의 지급을 정액제로 규정한 것인지, 혹여 정산이나 환급이 금지된다는 취지의 규정이 있는지, 하도급이 가능하다는 등 도급 계약의 특징이 없는지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이런 어려움은 최근 선고된 사건에서도 확인된다(대구지방법원 2021. 8. 19. 선고 2020나305162 판결 참조).

A사는 아파트 시행사와 공동주택 위·수탁관리계약을 체결하고 약 9개월간 관리업무를 수행했다. A사는 관리주체로서 B사와 본건 아파트 경비용역계약과 청소용역계약을 체결했고, B사는 위 기간 동안 경비 및 청소 용역을 수행했다. 그 사이 입주자대표회의가 구성돼 시행사의 지위를 승계했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A, B사에 인건비로 월급 외에 1년치 퇴직금을 12개월로 나눠 함께 지급했는데, 관리업무, 경비 및 청소업무 기간이 1년이 채 되지 않았으므로 두 회사 모두 실제로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에 위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A, B사를 상대로 미지급 퇴직급여 충당금에 대해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1심 법원은 이를 모두 아파트에 반환해야 한다고 본 반면 2심 법원은 B사의 경비 용역계약만은 도급이라면서 반환 의무가 없다고 달리 판단했다. 법원조차 판단이 엇갈리니 간단해 보여도 간단치 않은 법리인 것이 분명하다.

문제 된 위·수탁관리계약은 본 건 아파트 관리업무를 A사에 위탁하면서 매월 인건비와 위탁수수료를 지급하도록 돼 있고,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해 관리하기로 한 점 등에 비춰 볼 때 1, 2심 모두 민법상 위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재직기간 1년을 채우지 못한 직원들에게 퇴직급을 지급하지 않은 이상 이를 부당이득으로 반환해야 한다.

문제는 B사의 경비용역계약과 청소용역계약이다. 2심 법원은 경비용역계약에 대해서는 1심과 달리 도급에 해당하므로 이를 반환할 의무가 없다고 보았다. 본건 관리계약에 따르면 A사는 경비, 청소, 물탱크 청소 등 업무상 불가피한 경우에는 재위탁이나 도급을 줄 수 있다고 규정해 해당 업무를 재위임하거나 도급할 재량을 줬는데 경비용역대금은 입주초기단계에 매월 953만5914원, 입주완료 단계에는 매월 1443만4888원을 지급하도록 규정해 정액제였다. 또한 조정이나 별도 금액을 청구하거나 환급하지 못하도록 금지했으며 계약기간은 2017. 3. 10.부터 2018. 3. 9.까지 1년이었고, A사가 B사로 용역대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했다. 따라서 경비용역계약은 도급계약에 해당하므로 경비원 퇴직급여충당금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청소용역계약은 정산금지 약정이 없으며 청소 인원 역시 초기에는 미화원 6명, 입주율 50% 이상인 경우 협의해 순차적으로 증원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위·수탁 관리규약상 환경미화원 인원 규정과 동일하다는 점 등에 비춰 볼 때 A사와의 관리계약 중 청소업무를 B사에 재위임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률의 최종 전문가라 할 수 있는 법원조차 경비용역계약의 법적 성질에 대해서는 판단이 엇갈렸다. 일반 수범자 입장에서 계약의 법적 성질이 도급인지, 위임인지 구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다만, 계약기간이 1년이 되지 않은 채 종료되는 경우 미지급 퇴직금의 정산이 문제된다는 점은 이제 널리 알려졌다 할 것이다. 법적 분쟁을 예방하는 첩경은 계약을 체결하는 단계에서 이를 잘 구분해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이다. 정산할지 말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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