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승강기 전면교체는 관리주체나 입주민이나 피하고 싶은 대공사다. 다수의 인력이 대거 투입되는 일반 공사와 달리 공간이 협소한 만큼 소수 인력으로 진행해야 해 시간이 오래 걸린다. 공사가 길게는 한 달여 이어진다.

아파트 전체 구성원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행한다지만 저층을 제외한 나머지 입주민들은 공사 기간 내내 고역의 연속이다. 택배물건을 받기도 어렵고 배달음식을 주문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젊은이들이야 그래도 낫지만 관절이 좋지 않은 어르신들의 경우는 고층의 계단을 오르는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다. 나들이는 엄두도 못 내며, 어쩌다 외출할 경우엔 미리 크게 마음을 먹어야 한다.

문제는 이마저도 용이치 않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이다. 이들 스스로는 옴짝달싹도 못 한다. 승강기 교체 전에 공사업체와 관리주체 등이 실행계획과 매뉴얼을 미리 챙긴다지만 상당수가 공사집행을 위한 것들이고 입주민들, 그중에서도 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최근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의 이동을 배려하지 않은 아파트 승강기 공사는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는 당국의 결정이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일 아파트 승강기 개선 공사를 하면서 휠체어 이용 장애인을 위한 이동수단 등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행위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아파트 관리소장과 입주자대표에게 적절한 피해배상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이 판단이 나오게 된 연유는 연초에 한 아파트에서 승강기 교체 공사를 진행했는데 휠체어 이용 장애인을 위한 대체수단을 제공하지 않았고, 이에 피해자가 직장생활 및 사회생활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며 인권활동가가 인권위에 진정을 냄으로써 공론화됐다.

당시 피해자는 아파트 측에 조처해달라고 호소했지만, “집에 가만히 있거나, 자녀들이 업고 다니면 되지 않느냐”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했다. 아파트 측은 승강기안전관리법에 따른 전체 아파트 입주자의 안전을 위한 것인 만큼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다. 일부러 피해를 발생시킨 것이 아닐 뿐더러, 노약자 등 모든 주민이 불편을 감수하고 있는 사안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피해자가 금전적 지원을 원하나 이런 건으로 아파트에서 재원지원을 한 사례가 없고 적법한 지출이라 하더라도 입대의 의결이 있어야 한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승강기 공사 시 대체 이동수단이 제공되지 않을 경우 휠체어를 이용하는 피해자는 외부 출입이 원천적으로 차단된다는 점에서 비장애인이 경험하는 불편에 비해 그 피해 정도가 다르다. 더욱이 신장투석 등 주기적으로 통원치료를 해야 하는 휠체어 장애인의 경우라면 얘기가 또 다르다. 입원을 할 수 없는 처지가 있을 수도 있고, 공사기간 동안 치료를 미룰 수도 없다. 단순한 불편의 문제가 아니다.

위 사례의 경우에는 아파트 측이 금전배상을 함으로써 일단락됐지만, 관리주체와 입대의는 좀 더 적극적으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거동 도우미를 배치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일부 아파트들은 안전성이 보장될 경우 옥상을 이용해 옆 라인을 통해 이동을 한다든가 방안을 택하기도 한다.

굳이 헌법의 행복추구권과 평등권을 말할 필요가 없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거론할 것도 없다. 대한민국은 이제 당당한 선진국이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충분히 할 만큼 성숙한 사회다. 입대의와 관리주체의 보다 섬세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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