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단지 내 불법 게시물 제거’ 현실성 논란

법원 “절차 없이 철거
가능한 법 규정 없어”

철거 청구·민사 소송 등
법적 절차 통해 해결해야

아파트 승강기 내 게시판. 사진은 기사와 무관 <아파트관리신문DB>

[아파트관리신문=고경희 기자] 공동주택 단지 안에 관리주체의 동의를 받지 않고 게시물을 부착하더라도 절차 없이 바로 제거할 수 없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와 불법 게시물 처리를 두고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제19조 제2항은 입주자등이 공동주택에 광고물·표지물 또는 표지를 부착하는 행위를 할 경우 관리주체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동주택관리법 제63조 제1항 제7호와 동법 시행규칙 제29조 제2호는 ‘입주자등의 공동사용에 제공되고 있는 공동주택 단지 안의 토지, 부대시설 및 복리시설에 대한 무단 점유행위의 방지 및 위반행위 시의 조치’를 관리주체 업무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공동주택관리법령에 따라 공동주택 단지 안에 표지물을 게시하기 위해서는 관리주체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이를 위반해 게시된 표지물에 대한 조치는 관리주체의 업무범위에 속하게 된다.

그렇다면 관리주체의 동의를 받지 않은 게시물을 관리소장이 떼어 낼 경우 공동주택관리법령을 근거로 한 행위로서 정당행위에 해당할까.

형법 제366조는 타인의 재물, 문서 또는 전자기록등 특수매체기록을 손괴 또는 은닉 기타 방법으로 기 효용을 해한 자(재물손괴등)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최근 대구지방법원은 ‘관리주체 동의를 받지 않고 게시된 표지물에 대한 조치는 관리주체의 업무에 속하지만, 불법 표지물을 관리주체 등이 스스로 철거할 수 있다는 규정은 없다’는 이유로 관리주체 동의 없이 걸은 현수막을 제거한 관리소장에게 벌금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본지 제1351호 2021년 7월 26일자 게재) 게시판에 불법 게시물을 붙여도 관리소장이 마음대로 제거할 수 없다는 의미다.

해당 사건에서 ‘소장 물러나라’는 내용의 불법 현수막을 제거해 재물손괴죄로 기소된 관리소장은 재판부에 “관리소장으로서 공동주택관리법령 및 관리규약에 따라 불법 현수막을 철거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공동주택관리법령 어디에도 관리주체의 동의를 받지 않은 표지물이나 게시물에 관해 관리주체나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스스로 철거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며 소장의 행위가 정당행위에 속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2020년 4월 15일 선고)에 따르면 정당행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그 행위의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 ▲행위의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 ▲보호이익과 침해이익과의 법익균형성 ▲긴급성 ▲그 행위 외에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다는 보충성 등의 요건을 갖춰야 한다. 재판부는 소장의 행위가 정당행위 인정 요건인 긴급성이나 보충성의 요건을 갖추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또한 재판부는 관리주체가 동의를 받지 않은 게시물, 표지물에 대해 자진철거를 청구하거나 민사소송을 제기해 강제집행으로 구제받는 등의 법적절차를 통해 ‘위반행위 시의 조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위법성 조각 사유 엄격
"불법 게시물 관리 어떡하나"

이와 유사한 사례로 대전지방법원은 입주민이 관리주체 동의 없이 대표회장을 비방하는 내용의 인쇄물을 세대 우편함에 투입하자 관리소장에게 이를 회수토록 지시해 문서은닉 혐의로 기소된 대표회장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본지 1358호 2021년 9월 20일자 게재>

재판부는 “우편함에 배포된 문서는 아파트 주민들에게 공동관심 사안에 관해 의견을 알리는 서신”이라며 “관련법령 및 관리규약에 따라 아파트 우편함에 배포하는 행위가 금지되거나 관리주체가 회수할 수 있는 광고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러한 판결에 그동안 공동주택관리법령 규정을 ‘관리주체 동의를 받지 않은 게시물 등을 바로 제거할 수 있다’고 해석해 불법 게시물 등을 제거해 온 관리소장들이 고민에 빠졌다.

A아파트는 최근 입주민이 승강기 게시판 등에 관리주체 동의 없이 게시물을 붙인 뒤 제거된 일로 갈등에 휩싸였다.

A아파트 관리소장 B씨는 공동주택관리법령을 근거로 불법 게시물을 관리주체가 즉각 제거할 수 있다고 본 반면, 게시물을 부착한 입주민은 앞선 판결을 근거로 ‘재물손괴’를 주장했고 결국 게시물 제거 모습을 CCTV로 확인하겠다면서 관리사무소에 내용증명을 보내기에 이르렀다.

B소장은 “공동주택관리법령에 따라 아파트를 관리하면서 당연히 불법 게시물을 바로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손괴’라는 법원의 판결에 혼란스럽다”며 “관리에 영향을 주는 게시물의 경우 입주민들의 불만을 야기할 수 있어 앞으로 불법 게시물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걱정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B소장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불법 게시물에 대해 게시자가 자진철거를 할 수 있도록 여러 차례 경고하는 등 절차를 거쳐 처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법무법인 산하 김미란 부대표변호사는 “불법 게시물이어도 타인의 재물에 해당하고 타인의 재물을 손괴한 것은 재물손괴죄 성립요건에 해당한다. 마찬가지로 각 세대 우편함에 투입된 불법 유인물도 우편함에 투입된 때부터 그 세대의 소유가 되는 것”이라며 “관리소장들이 형법 등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당행위라고 생각해 불법 게시물을 제거하게 되는데, 위법성 조각 사유는 엄격하게 판단되므로 이를 유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아파트에서는 관리규약에 불법 게시물 철거에 대한 세부기준을 규정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다만, 김 변호사는 “이러한 판결이 법리적으로는 맞지만 관리주체의 동의를 받지 않고 일방적인 비방 내용의 게시물 등이 게시될 경우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철거할 수 없어 법원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방치되고 그 사이 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관리현실을 반영한 법제도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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