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나는 아파트 경비원입니다’저자 최훈 작가

수습기간 필요성 인정하지만, 최소 1년은 보장됐으면
성실하되 몸은 물론 마음도 다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

‘나는 아파트 경비원입니다’를 쓴 최훈 작가. 작가의 요청에 따라 얼굴 공개는 하지 않기로 했다. <용인=고경희 기자>

이전부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입주민의 폭행 및 부당지시와 열악한 근무환경, 고용불안 문제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지자체의 경비초소 및 휴게실 개선사업, 단기 근로계약과 갑질을 막기 위한 법제도적 개선 등 관심이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경비원들은 하루하루가 매섭다. 지난 6월 발간된 ‘나는 아파트 경비원입니다’는 60대 경비원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책을 집필한 최훈 작가(66세· 필명)는 건설회사에 입사 후 평탄한 생활을 하다가 사업 후 경영악화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됐다. 먹고 살기 위해 이라크에 진출하려다 무산됐고 2018년 7월 경비원으로서 인생 2막을 열게 됐다. 최 작가는 책에 경비원으로 근무하면서 겪은 고용문제, 입주민의 갑질뿐만 아니라 입주민과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 아파트와 관계된 다른 구성원과의 이야기 등 ‘아파트에서의 삶’ 그 자체를 담았다. 또 세상의 ‘투명인간’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가족과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스위트 홈’을 만드는 것이 소망이라는 최훈 작가, 그의 삶을 들어봤다.

▶ ‘나는 아파트 경비원입니다’를 쓰게 된 계기는.
경비원 생활을 하면서 아파트 게시판에 붙었던 안내문을 이면지로 재활용해 틈틈이 일기를 쓴 것이 기록의 시작이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설화처럼 힘든 일이 있거나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가슴에만 담아두기 억울할 때 조금씩 일기를 쓰면 속이 후련해지곤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양이 꽤 많이 쌓였다. 그러던 중 우연히 ‘표백’이라는 장편소설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장강명 작가의 ‘책 한번 써봅시다’ 강의 영상을 보게 됐다. “당신도 책을 쓸 수 있다. 도전하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아 장강명 작가에게 “저는 경비원인데 생활일기를 써둔 게 있다. 이런 내용으로도 책을 낼 수 있겠나”라고 이메일을 보냈다. 대답은 긍정적이었다. 장 작가는 “저라면 그 책(경비원이 직접 쓴 경험담) 볼 것 같은데요”라면서 출판사 ‘정미소’의 김민섭 대표를 소개시켜줬다. 본격적으로 책을 집필하면서 생활기록 외에 후배 경비원들을 위한 지침서가 될 수 있는 내용도 보탰다.

▶ 책에 경비원이 되기까지 겪은 고충이 담겨 있다. 몇 가지 사례를 전한다면.
경비원 학력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경비원이 되고자 하는 분들 중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이 많다. 저 역시 신임 경비원 교육을 이수하면서 교육비 12만원을 부담하는 게 무척 버거웠다. 책에도 썼지만 당시 돈이 없어 첫 날 도둑 수강을 했고 교육비를 내기 위해 친구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말하기까지 무척 힘들었다. 경비원 준비를 하면서 노인일자리를 위해 정부의 교육비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교육 이수 후 경비원이 되려고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넣었는데 만 62세 이하의 경비원만 채용하는 아파트가 많았다. 당시 저는 만 63세였는데 나이가 면접 기회마저 앗아간 것이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아파트 관리소와 경비업체에 끈질기게 연락한 결과 경비원으로 근무할 수 있게 됐다. 씁쓸하지만 ‘이력서를 화려하게(고학력, 대기업 경력 등) 쓰지 말라’는 조언도 도움이 됐다.

▶ 스스로 ‘나는 투명인간이다’라고 되뇐다는 말이 뇌리에 박힌다는 평이 많다.
항상 “나는 투명인간이다. 아파트의 움직이는 시설물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고 그것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예를 들어 단지 내에서 입주민과 동선이 겹치더라도 제가 경비원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 상대방은 길을 양보하지 않는다. 그저 걸어 다니는 시설물인 것이다. 혹여나 입주민과 관리사무소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불평하는 말이나 심지어 표정도 보여서는 안 된다. 감정에 파고(波高)가 생겨 자칫 인격체로 돌아오면 경비원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이 된다. 입주민과의 갈등과 분쟁은 해고의 1순위 사유이기 때문이다.

그 사례로 일을 하던 중 입주민이 창문을 열고 급히 부르기에 뛰어올라갔더니 가구 옮기는 걸 도와달라고 하더라. 이리 옮겨 달라, 저리 옮겨 달라. 자식뻘인 입주민이 말을 턱턱 놓고 턱으로 가리키며 지시하거나 삿대질을 할 때는 울고 싶었다. 그럼에도 경비원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감정이 없는 그저 아파트 시설물의 일부로 항상 예스맨이 돼야 한다.

▶ 경비원은 3·6·9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임계장’이란 말이 있다. 이러한 경비원의 고용불안, 처우문제 경험담을 직접 전한다면.
경비원은 3개월, 6개월, 9개월 단위로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임시 계약직 노인장’이라고 한다. 저는 지금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서 첫 발을 딛고 2년 넘게 근무하고 있지만 3개월마다 2차 관문을 통과하고 있다. 숨죽이고 벙어리로, 귀머거리로 3개월의 수습기간을 보내고도 매번 3개월짜리 2차 관문을 기다린다. 근로계약을 연장하더라도 두 달 만에 ‘혹시 꼬투리 잡힌 게 없는지, 시말서나 사유서를 쓰진 않았는지’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3개월의 수습기간은 사용자로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력서와 면접만으로 인성과 작업 적합도, 성실성을 판단하는 건 무리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수습기간 이후에도 3개월마다 반복적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경비원을 최소한의 권리조차 주장할 수 없는 을로 만든다. 관리사무소, 입주자 등 사용자들로부터 오는 인간적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언행이나 대우를 피할 길이 없다. 야간 휴식시간에 초소 불을 끄지 말라는 지시에 1년간 불을 켠 채 야간휴게를 취한 적이 있다. 문제 소지가 있는 부당행위에 대해서는 계약연장 시 반드시 문구를 삽입시켜 ‘을’의 동의를 받은 척 위장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에 대항하거나 이견을 표시하면 정리대상 1순위에 오르기에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경비원의 고용문제를 해결하고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수습기간 이후 1년의 근로기간을 보장해야 하지 않을까.

▶ ‘투명인간’으로서 일하는 모든 근로자들, 그리고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우선 매사에 조심하고 성실해야 하며,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예스맨이 되길 바란다.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슬기롭게 대처하길 빈다. 설사 무리한 업무지시를 받더라도 그 자리에서 바로 자기 의견을 내기 보다는 우선 업무지시에 성실하게 따르면서 개선책을 내놓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다치지 않는 것이다. 몸은 물론 마음도.

한 번뿐인 인생이고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이니 모두가 열심히 노력해서 보다 더 행복하고 멋진 인생 만들기를 기원한다. 저도 이번 책을 쓴 것을 시작으로 행복을 이야기하는 따뜻한 작가가 되겠다. 책을 통해 독자들과 함께 울고 웃는 공감대를 만들고 싶다.

최훈 작가가 사인을 하고 있다. <용인=고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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