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산하 김미란 변호사

여러 사람이 모여 살고 있는 아파트, 모두가 곤히 잠들어 있는 새벽 시간, 지하주차장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한다. 밤새 주차돼 있던 차량에서 시작된 화재다. A화재감지기가 작동하자 1차 경보가 울리지만 화재 현장에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 이제 불꽃은 인근 차량으로 옮겨 붙고 지하주차장의 천장과 벽체로 이어져 B화재감지기를 통해 2차 경보가 울린다. 두 화재감지기가 동시에 신호를 보내면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는데, 어쩐 일인지 작동하지 않는다. 1차 경보가 울린 후 약 21분이 지나서야 화재 신고가 이뤄졌고, 약 23분 만에 진화, 그로부터 15분 뒤 화재는 완전히 진압됐다. 그 사이 차량 3대가 소실되고, 지하 송풍구, 엘리베이터실 등이 소손됐으나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가? 안타깝게도 아파트 화재 사고는 실제로도 그리 낯설지 않다. 아파트는 여러 사람이 살다 보니 화재로 인한 위험이나 손해의 범위가 얼마든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에 주택화재보험에 가입해 만의 하나 생길 수 있는 화재 피해를 최대한 보전한다. 그렇게 보험사고 처리 후에는 보험사의 구상 문제가 시작된다. 화재가 누구의 잘못으로 발생한 것인지, 이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하고 조속히 방지조치 하지 못해 손해가 확대된 것은 누구의 탓인지 꼼꼼하게 따지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1차 경보 이후에도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며 어떤 경위로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은 것일까 같은 문제를 말이다.

실제 위 사안에서도 화재보험사가 화재 차량의 소유자와 그 차량의 보험사, 아파트 경비업체를 상대로 구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원고 전부 패소 판결을 선고한 1심 법원과 달리 2심 법원은 비록 20%로 제한하기는 했지만 경비업체의 손해배상책임만은 인정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0. 1. 21. 선고 2017가단 5132130 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21, 4, 22. 선고 2020나 12386 판결).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당시 근무 중이던 경비원의 귀책사유 유무 판단이 달라진 이유는 그 전제가 된 사실관계를 전혀 달리 인정했기 때문이다.

1심이 인정했던 사실관계는 이렇다. A화재감지기를 통해 1차 경보가 울리자 경비원은 화재경보수신기 주음향 정지 버튼을 눌러 경보 음향인 주경종을 정지시키고 복구 버튼을 눌러 시스템을 초기화한 후 관제실을 나가 일반 순찰을 겸해 주차장을 조사했으나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약 10분 뒤 B화재감지기를 통해 2차 경보가 울렸고, CCTV를 통해 화재 현장을 확인한 후 119에 화재 신고를 했다. 1차 경보 당시 주경종을 정지시킨 후 복구 버튼을 눌렀는데도 경보가 울리지 않은 것은 A화재감지기와 통신선이 모두 녹아 소실됨으로써 화재 신호를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1차 경보가 울린 후 순찰을 통해 화재 현장을 찾으려 시도한 점, CCTV가 총 512개 화면으로 구성돼 있어 경비원들이 모니터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더라도 화재발생과 동시에 곧바로 이를 인식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경비원들이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 어려워 경비업체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2심 법원이 인정한 사실관계는 전혀 달랐다. 본건 아파트 관제실에는 총 2대의 화재경보수신기가 설치돼 있고, 특정 구역의 화재감지기가 화재로 인한 열변화를 감지하면 화재경보수신기 중 하나의 정보표시부 화면에 화재가 발생한 구역의 구체적 정보가 표시되며 주경종 등이 작동된다. 주경종이 울렸을 때 관제실에서 화재경보수신기 주음향 정지 버튼을 누르면 주경종이 꺼지는데 복구 버튼을 눌러야 시스템 초기화 후 화재감지기 발신 신호가 남아 있는 경우 다시 주경종이 울리게 된다. 만일 이를 누르지 않으면 다른 화재감지기에서 신호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최초 화재감지기 신호로 인해 주경종이 다시 울리지는 않는다. 1심은 경비원들이 복구 버튼을 눌렀으나 감지기와 통신선이 녹아 경보가 울리지 않았다고 봤으나 2심은 경비원들이 복구 버튼 자체를 누르지 않았다고 봤다. 화재감지기 전선은 내화배선을 사용하거나 전선을 매설해야 하고, 화재감지기 전선보다 화재에 취약한 형광등 전선조차 상당 시간 녹지 않고 작동한 것을 보면 화재 감지기 전선도 화재 발생 후 10분 내에 소손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비원들이 1차 경보 당시 주경종을 정지시킨 후 단순 오작동으로 속단해 복구버튼을 누르지 않아 2차 경보 이후에도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뿐만 아니라 본건 아파트에는 총 512개의 CCTV가 설치돼 있고, 관제실에는 이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3대의 모니터가 있으며, 각 모니터는 16~25분할로 이뤄져 있는데 상단에는 연결되는 CCTV의 설치구역이 표시돼 있고 분할화면은 확대가 가능하다. 화재감지기로부터 이상신호가 수신되면 관제실에서는 이상신호를 보낸 감지기의 설치위치를 확인할 수 있고 1차 경보 당시 육안으로도 차량에서 발생한 불꽃이 확인된다. 따라서 이를 확인하지 못한 것은 경비원들이 1차 경보 당시 CCTV 영상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거나 주의 깊게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사안일지 의문일 정도로 사실관계가 전혀 달리 인정됐다. 1심은 경비원들이 1차 경보 당시 복구 버튼을 눌렀음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이 복구되지 않은 것은 통신선이 녹아서였고, 순찰도 나간 것으로 보았으나 2심은 달리 보았다. 화재감지기 전선은 내화배선을 사용하거나 매설한다는 점에서 스프링클러 미작동은 경비원들이 1차 경보를 화재감지기 오작동으로 속단해 복구버튼을 누르지 않았기 때문으로 본 것이다.

아파트 경비업체라면 경비대상인 아파트의 위험을 미리 감지해 사고 발생을 예방하고 사고 발생시 응당 즉각적 대응조치를 취해야 한다. 경비업자의 업무상 주의의무의 범위와 깊이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판결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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