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지법 판결...:재물손괴 범행 가담 볼 수 없어"

“관리소장이 업체에 제거 지시
회장 협의나 용인 없었다”

[아파트관리신문=서지영 기자] 아파트 도로포장공사 과정에서 뜯겨져 나온 열선을 입주자대표회의 의결 없이 임의로 훼손하게 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입주자대표회장에 대해 법원이 무죄 판단을 내렸다. 대표회장이 관리소장과 공모해 열선을 제거하고 공사를 강행시켰다는 고소인 및 검사의 주장과 달리, 재판부는 관리소장 단독 판단으로 열선을 제거했다고 봤다.

수원지방법원 제3형사부(재판장 김수일 부장판사)는 아파트 도로 열선에 대한 재물손괴 혐의를 받는 경기 수원시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 B씨에 대해 최근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검사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하며 변경된 공소사실을 선택적으로 추가하는 내용의 공소장변경허가신청을 했고, 법원이 이를 허가함으로써 그 심판대상이 변경돼 원심 판결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됐다. 이에 2심 재판부는 직권으로 원심판결을 파기, 변론을 거쳐 B씨에 대해 다시 무죄 판결을 내렸다.

변경된 공소사실에 따르면 A아파트에서는 2018년 12월 4일경 수원시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도로포장공사가 진행됐는데, 대표회장 B씨는 공사도급인 및 감독자로, 관리소장 C씨는 안전관리자로 지정이 돼 모두 공사현장에 나와 있었다.

이날 아파트 관리사무소 기전과장 D씨로부터 “도로포장공사 도중 열선이 뜯겨져 나왔다”는 보고를 받은 B씨와 C씨는 공사업체 대표 E씨 등이 있는 공사현장으로 다가가 열선 훼손 사실을 목격했다.

이에 대해 검사는 “피고인 B씨로서는 즉시 공사를 중단하고 아파트 공동재산인 위 열선의 폐기 여부 등을 입주자대표 회의에 안건으로 상정해 구성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해 처리할 법령상 의무가 있음에도 이러한 절차를 무시한 채, 피고인은 관리소장 C씨와 열선 등을 철거하고 공사를 강행하기로 협의했다”며 “이에 C씨는 공사현장으로 돌아와 공사업체 대표 E씨에게 ‘공사를 강행해도 좋다’고 지시했다”고 지적, “이로써 피고인은 C씨와 공모해 아파트 입주민들 소유의 시가 미상 열선을 손괴했다”고 주장했다.

1심은 여러 사정을 종합해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A아파트 동대표이자 고소인인 F씨는 법정에서 “공사현장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당시 현장에 있던 기전과장 D씨 및 공사업체 대표 E씨가 작성해 준 사실확인서를 근거로 B씨가 C씨와 공모해 단지 내 도로에 매립돼 있던 열선을 손괴했다고 판단해 B씨에 대한 형사고소를 진행하게 됐다”고 증언한 바 있다.

그러나 D씨가 작성한 사실확인서에는 당시 B씨와 C씨, D씨가 굴삭기 작업으로 바닥에 매립돼 있던 열선이 뜯겨져 나온 것을 직접 확인했고, 이에 E씨가 공사 속행 여부를 알려달라고 요청하자 B씨와 C씨가 후문 경비초소 쪽으로 이동했으며, 이후 C씨가 공사현장에 혼자 돌아와 E씨에게 열선 제거 및 공사 강행을 지시했고, 그 후로는 B씨가 공사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을 뿐, 정작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C씨가 E씨에게 열선 제거 및 공사 강행을 지시할 때 B씨가 그 옆에서 이를 용인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내용은 기재돼 있지 않았다.

또 그 후 D씨는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당시 C씨가 E씨에게 열선 제거 및 공사 강행을 지시하는 것을 목격했을 뿐, B씨가 C씨와 열선 제거 문제를 상의하거나 C씨에게 이를 지시했는지 여부는 직접 목격한 바가 없어 알지 못한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이와 함께 E씨의 사실확인서에는 B씨와 C씨가 서로 상의해 열선 제거 및 공사 강행을 지시했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으나, 정작 E씨는 법정에서 “위 사실확인서의 내용은 F씨의 일방적인 요구에 따라 마지못해 작성해 준 문서이고, 실제로 열선 제거 및 공사 강행을 지시한 사람은 C씨였으며, C씨가 B씨와 열선 제거 문제를 상의한 사실은 본 적이 없고, B씨가 그 자리에 있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아울러 C씨도 수사과정에서 “공사 당시 열선이 뜯겨져 나와 있는 것이 발견돼 공사지연을 막기 위해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E씨에게 열선을 제거하고 공사를 계속 진행할 것을 지시했을 뿐, B씨로부터 열선 제거 등을 지시받은 사실이 없고, B씨와 이를 협의한 사실도 없으며, B씨와의 협의를 거칠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고 진술했다.

이와 관련해 1심 재판부는 “당시 피고인 B씨는 단지 내 어느 구역에 열선이 매립돼 있는지 알지 못했고, 도로포장공사로 인해 열선이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이 공사 진행 과정에서 아파트 단지 내 도로에 매립돼 있던 열선이 뜯겨져 나온 장면을 목격했다고 하더라도, 당시 피고인은 막연히 열선이 고장으로 인해 더 이상 정상적인 사용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인식하고 있었고, 도로열선과 도로포장공사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에 재판부는 “피고인이 C씨의 공사업체에 대한 열선 제거 지시를 알면서도 단순히 이를 제지하지 않거나 용인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자신의 재물손괴 범행을 위해 C씨와 일체가 돼 C씨의 행위를 이용해 자신의 범행의사를 실행에 옮긴 것으로 평가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고, 피고인이 굳이 재사용이 가능한 열선을 훼손하기 위해 재물손괴 범행에 공모·가담해야 할 특별한 동기를 찾아볼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2심 재판부는 이 같은 1심 판단에 대해 “피고인이 C씨와 공모해 아파트 단지 내 도로에 매립돼 있던 열선을 손괴했다는 이 사건 공소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이 충분히 증명됐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피고인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고, 거기에 검사의 주장과 같은 사실오인의 위법이 없다”고 판시했다.

또한 변경된 공소사실에 관해서는 “원심 및 당심이 적법하게 채택해 조사한 증거에 의하면, 피고인이 공소사실 기재 일시 및 장소에 있었던 사실은 인정되지만,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C씨와 매립돼 있던 열선 등을 철거하고 공사를 강행하기로 협의했다고 보기는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이 C씨의 공사 강행을 용인하는 태도를 보여 재물손괴 범행에 가담했다고 보기 어려운 이상, 이에 나아가 C씨와 협의를 해 재물손괴 범행에 가담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이 사건 공소사실은 피고인이 원심판결 기재 공소사실 또는 이 심에서 추가한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아파트 입주민들 소유의 시가 미상 열선을 손괴했다는 것인바, 앞서 본 바와 같이 위 공소사실들은 모두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므로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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