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산림과학원 국립나무병원 박지현 박사

박지현 박사

올해는 예년에 비해 무더위가 빨리 찾아왔다. 서울에 벚꽃이 3월 하순에 펴 1922년 기상관측 이래 가장 빠른 개화라고 기쁨보다는 걱정거리를 주더니 봄에는 때 아닌 잦은 비로 여름철 장마가 아닌 봄철 우기를 걱정해야 했다. 7월 중순에는 낮 최고 기온이 35℃를 상회해 무궁화, 배롱나무 등 여름철 꽃들이 예상보다 빨리 펴 나무의사, 수목치료기술자 등 수목을 관리하는 전문가들을 당황스럽게 만들고 있다.

기상 상황이 이렇게 예상을 벗어나다 보니 나무병원의 주 업무인 생활권 수목의 병해충 관리에 비상등이 켜졌다. 일반적으로 기온상승은 변온동물인 해충의 발육속도를 높여 생태계의 교란을 야기하는데 예를 들면 연 3∼4회 발생하는 진딧물류가 연 4∼5회 발생하고, 5월에 월동처에서 나와 피해를 주는 나방류 유충이 4월에 나와 가해를 시작해 기존의 수목관리 매뉴얼에 혼돈을 준다. 하지만 올해의 이상 기상 현상은 최근 꾸준히 나타난 겨울과 봄철의 단순한 기온상승과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봄철의 잦은 강우는 오히려 해충 발생을 억제하고 있다. 기온상승으로 발생 시기가 빨라진 매미나방은 3월 하순부터 출몰했으나 수목의 잎이 아직 나오지 않아 아사하거나 높은 공중 습도로 인해 각종 곤충병원성 미생물의 활동이 왕성해져서 유충의 자연 폐사율이 높아졌다. 결국 2019년과 2020년에 전국적으로 문제가 됐던 매미나방 유충의 피해는 올해 감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외래 침입해충인 미국선녀벌레, 갈색날개매미충, 주홍날개꽃매미의 발생 빈도도 급격히 낮아지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반면 수목병은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장마가 끝나는 7월 하순부터 주로 문제가 시작되지만 올해는 모과나무 붉은별무늬병, 호두나무 갈색썩음병, 사철나무 흰가루병이 예년에 비해 봄철에 유난히 창궐하고 있다. 또한, 아파트 단지 및 생활권 주변 공원에 식재된 각종 수목에서 토양 내 수분 과다로 인한 뿌리의 썩음 현상이 발생해 시들거나 고사하는 민원이 예년보다 월등히 많아졌다.

코로나19로 인해 해외 및 국내 여행에 제한을 받고 있어 시민들은 주말이나 휴일 등 여가시간에 가까운 공원 숲, 생활권 동네 숲, 아파트 단지 내 생태 숲 등을 찾는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나들이를 나온 아이들은 자연스레 나무에 관심을 보이고 나무가 보이는 비정상적인 모습들, 각종 병해충이나 비생물적 피해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떻게 쉽고 간결하게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설명할 수 있을까? 벌레가 잎을 갉아 먹어서, 나무에 병이 들어서 혹은 뿌리가 썩어서 나무가 아프다고 모호하게 말하기에는 어른들의 체면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경우 전문가들조차 이런 단순한 질문에 속 시원하게 해답을 내놓기 어려운 상황이다.

자연 생태계에서 병·해충에 의한 수목의 피해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해충과 병원체도 모두 생물체로서 다양한 종으로 구성돼 있고, 모든 생물종은 나름대로의 진화 과정을 통해 현재의 위치까지 당당하게 자리잡아 생존하고 있는 지구생명체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생물종마다 오랜 관찰과 많은 연구를 통해 생리적, 생태적 특징을 파악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인간이 이 모두를 대응하기는 불가능하다 보니 다수의 병해충 피해를 그때그때 화학적 약제를 이용해 처리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직까지 많은 아파트 단지에서 예방소독이라는 명분으로 생활권 수목에 연 3∼5회 수목보호제(농약)를 살포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수목보호제는 화학약품으로 전문가의 진단과 처방 없는 관례적인 예방소독은 생태계 교란은 물론이고 심각한 탄소배출원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구 살리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2016년 파리협정 이후 발효된 ‘탄소중립(Carbon-neutral)’에 우리나라도 2020년 10월에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며 동참하고 있다. 탄소배출을 제로로 만드는 다양한 과업 중에 수목관리, 특히 환경과 생활 안전을 고려한 친환경적인 수목 관리는 나무병원에서 주도적으로 선도해야 하는 핵심 과제 중 하나다. 수목의 병해충에 대한 전문가 양성 및 활용, 연구 지원 강화, 인프라 구축 등을 통해 이러한 나무병원의 역할에 힘을 실어주는 국가적인 지원을 간절히 소망한다. 나무병원을 통해 건강해진 나무와 그 나무가 건강하게 지켜주는 지구 환경에서 우리의 정서가 성숙해지며 소소한 행복이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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