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법 판결

“법정절차 통해 조치했어야
긴급성·보충성 요건 못 갖춰”

[아파트관리신문=서지영 기자] 아파트 입주민이 단지 내에 걸어 놓은 현수막을 관리주체 동의 없이 걸었다는 이유로 제거한 관리소장이 벌금형의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관리소장에게 입주민이 건 현수막 등을 제거할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라며 이같이 판결했다.

대구지방법원(판사 김남균)은 재물손괴 혐의로 기소된 관리소장 A씨에 대해 최근 “피고인 A씨를 벌금 70만원에 처하며, 다만 이 판결 확정일로부터 1년간 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고 선고했다.

A씨는 대구 북구 소재 B아파트 관리소장을 맡고 있었던 지난해 6월 22일 오전 9시경 입주민 C씨가 단지 내 쓰레기 분리수거장과 상가 앞 화단에 걸어놓은 ‘주민들 피해 주는 소장 물러나라’라는 내용의 현수막 2개를 가위로 절단해 C씨 소유 시가 4만원 상당의 현수막 2개를 각각 손괴했다.

이에 대해 A씨는 재판부에 “본인은 관리소장으로서 공동주택관리법령 및 아파트 관리규약에 따라 공동주택 단지 등 관리대상물 안의 무단 점유행위의 방지 및 위반행위 시의 조치를 할 수 있다”며 “관리규약 제49조 제2호에 따르면 입주민은 공동주택에 광고물 등을 부착할 때 반드시 관리주체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는데, 이 사건 현수막 2개는 관리주체의 동의 없이 게시돼 공동주택관리법령 및 관리규약에 따라 불법 현수막 2개를 철거했을 뿐”이라고 정당행위 주장을 펼쳤다.

재판부는 “공동주택관리법령에 따라 공동사용에 제공되는 공동주택 단지 안에 표지물을 게시하기 위해서는 관리주체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이를 위반해 게시된 표지물에 대한 조치는 관리주체의 업무범위에 속하게 된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공동주택관리법 및 그 하위 법령 어디에도 위와 같이 법령에서 정한 관리주체의 동의를 받지 않은 표지물이나 게시물에 관해 관리주체나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스스로 이를 철거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며 A씨의 행위가 정당행위에 속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나아가 공동주택관리법의 목적은 공동주택의 ‘관리’에 관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투명하고 안전하며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있을 뿐, 공동주택의 입주민들의 분쟁까지 입주민들이 자율적으로 해결하도록 하거나 공동주택 관리 과정에서 발생한 분쟁에서 법이 정한 권리구제절차를 배제하고자 하는 취지까지 있다고 할 수는 없다”고 덧붙이며 “따라서 공동주택 관리주체로서는 동의를 받지 않은 게시물, 표지물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자진철거를 청구하거나 민사소송을 제기해 강제집행으로 구제받는 등의 법정절차를 통해 위와 같은 ‘위반행위 시의 조치’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현수막에 ‘피해’의 구체적인 내용이 적시돼 있지 않아 A씨의 명예에 중대하거나 회복하기 어려운 침해를 유발하지 않는 점 ▲A씨 또는 입주자대표회의가 현수막을 단 입주민 C씨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 등의 법정절차를 취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했던 점 등에 비춰 “피고인 A씨의 행위는 정당행위로서 긴급성이나 보충성의 요건을 갖췄다고 볼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이와 함께 A씨는 “관리소장으로서 불법 현수막을 공동주택관리법령 및 관리규약에 따른 조치행위로 철거, 제거할 수 있다고 잘못 인식했고, 그와 같이 잘못 인식함에 정당한 이유가 있으므로 벌할 수 없다”고도 주장했는데 이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형법 제16조에서는 ‘자기가 행한 행위가 법령에 의해 죄가 되지 아니한 것으로 오인한 행위는 그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 한해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일반적으로 범죄가 되는 경우지만 자기의 특수한 경우에는 법령에 의해 허용된 행위로서 죄가 되지 않는다고 그릇 인식하고, 그와 같이 그릇 인식함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벌하지 않는다는 취지고, 이러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 여부는 행위자에게 자기 행위의 위법 가능성에 대해 심사숙고하거나 조회할 수 있는 계기가 있어 자신의 지적능력을 다해 이를 회피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다했더라면 스스로의 행위에 대해 위법성을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이를 다하지 못한 결과 자기 행위의 위법성을 인식하지 못한 것인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할 것”이라며 A씨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 근거로 재판부는 먼저 A씨가 관련 법령 및 관리규약을 스스로 검토한 결과 스스로 관리주체의 동의 없이 현수막을 철거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뿐, 관계행정청 등 유권해석을 할 수 있는 기관에 이를 조회해 보지는 않은 점을 들었다.

이와 함께 A씨는 현수막 제거 전 입주자대표회장으로부터 현수막을 철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하나, 입주자대표회장이 공동주택관리법령 및 관리규약의 해석에 관해 전문성을 갖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등을 제시하고, 이에 더해 법치국가에서 사법절차를 통하지 않은 자력구제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것인 점을 더해 이같이 판단했다고 밝혔다.

양형이유로는 “이 사건 범행은 피고인 A씨가 피해자 C씨 소유의 현수막 2개를 임의로 판단해 현수막을 가위로 자르거나 그 끈을 잘라내는 방법으로 손괴한 것”이라며 “피고인은 이 사건 아파트의 관리소장으로서 적법하게 관리 업무를 수행하지 못했다”고 전한 뒤, “▲피고인이 아무런 범죄전력이 없는 초범인 점 ▲피해자가 입은 손해의 액수가 적은 점 ▲피고인이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점 ▲피고인은 더 이상 B아파트 관리소장으로서 근무하지 않아 재범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종합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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