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고법 판결

“출차·주차 유도, 경비업무와 별개 아냐”

<아파트관리신문DB>

[아파트관리신문=고경희 기자] 공동주택에 근무하는 경비원이 경비 업무 외에 수행할 수 있는 업무범위에 주차관리, 택배관리, 청소, 분리수거가 포함되도록 하는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이 9일 입법예고 돼 경비원의 감시단속직 승인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가운데 고용노동청에서 아파트 경비원이 주차관리를 한 것은 경비업무가 아닌 업무를 겸직한 것이라며 감시단속적 근로자 승인 취소 처분을 했으나, 주차관리도 감시적 업무의 일환이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수원고등법원 제1행정부(재판장 임상기 부장판사)는 최근 경기 수원시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중앙지방고용노동청경기지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감시적 근로에 종사하는 자에 대한 적용제외 승인 취소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피고가 원고에 대해 한 감시적 근로자에 대한 적용제외 승인 취소처분을 취소한다. 피고가 승인을 취소할 권한이 없음을 전제로 하는 원고의 주위적 청구를 기각한다”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양측 모두 상고를 제기하지 않으면서 지난달 확정됐다.

현재 근로기준법에 따라 경비원과 같이 감시업무를 주로 하면서 육체적·정신적 피로가 적은 업무에 종사하는 ‘감시적 근로자’나 시설기사와 같이 기계 고장 등 돌발상황에 대비해 근로가 간헐적으로 이뤄지는 ‘단속적 근로자’의 경우 고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근로기준법의 근로시간 관련 규정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1992년 8월 경기도지방노동위원회위원장으로부터 감시적 근로자에 대한 적용제외 승인을 받았다. 이 승인은 업무의 종류를 ‘경비, 보일러기사, 전기기사’, 근로형태를 ‘1일 2교대(주간 9~21시, 야간 21시~9시)’, 근로조건은 ‘야간근로시는 야간근로수당을 지급해야 함. 근로형태가 승인 당시와 다르게 된 때에는 그때부터 효력을 상실함’으로 정하고 있다.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경기지청은 이 승인 이후 ▲A아파트의 감시적 근로자(경비원)의 근무형태에 변경이 있거나 인허가기준에 미달하게 됐고(1일 12시간 교대에서 24시간 격일제로 변경, 1일 휴게시간 8시간 미만) ▲감시적 근로자가 감시적 업무 외의 타 업무(주차관리)를 반복 수행하거나 겸직한 때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2019년 1월 승인을 2013년 1월 1일자로 취소한다는 내용의 처분을 했다.

이에 대표회의는 “근로기준법에 의하면 감시적 근로자 적용제외 승인은 고용노동부장관의 권한이고 승인권한은 지방고용노동관서의 장에게 위임돼 있으나 승인 취소 권한은 위임돼 있지 않다”면서 취소처분은 권한 없는 자에 의한 것으로서 무효(주위적 청구)라고 주장하는 한편, “경비원이 감시적 업무 외 다른 업무를 반복적으로 수행하거나 겸직한 사실이 없고 근로기준법상 감시적 근로형태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므로 근무형태가 변경됐다는 사유만으로 기존승인의 효력이 상실된다고 본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예비적 청구)”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인 수원지방법원은 대표회의의 청구를 모두 받아들여 “피고가 한 감시적 근로자에 대한 적용제외 승인 취소처분은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반면 2심 재판부는 “감시직 적용제외 승인 권한이 피고에게 위임됐으므로 결국 피고가 원고에 대한 승인을 한 행정청에 해당하고 행정행위를 한 처분청에 해당하는 피고로서는 승인 후에 이를 철회할 별도의 법적 근거가 없더라도 효력을 상실케 하는 별개의 행정행위로 이를 철회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며 주위적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주차관리를 경비업무 외 업무를 겸직한 경우로 볼 수 없다’는 1심 판결에는 같은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에 따르면 A아파트에는 지하주차장이 전혀 없고 세대수는 740세대인데 주차면수가 420개에 불과하고 등록된 차량은 700대가 넘어 주차공간이 부족해 이중주차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입주민들의 등록 차량에 스티커를 부착하도록 하고 방문 차량은 방문세대, 출입시간 등을 확인해 주차를 허용하며 경비원들이 매일 밤 11시경 스티커 미부착 등 불법 주차 차량을 확인하고 주차된 차량번호를 경비일지에 기재하고 있다.

경비원들은 오전 출근 시간대에 차량의 출차를 위해 이중주차된 차량의 차량밀기를 하거나 출차 유도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오후 퇴근 시간대에 경광등을 사용해 진입하는 차량의 주차 유도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A아파트 취업규칙은 경비반의 업무로 ‘출입자의 통제 및 관찰, 내외의 경비업무, 내방객의 안내, 도난의 방지와 담당 동 및 관할의 감시적 역할과 각종 순찰에 대한 보고 및 응급처치, 담당 동 주민의 편의제공을 위한 제반 업무, 기타 경비업무에 관련된 사항’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2심 재판부는 “아파트 경비원의 경비업무는 그 본질상 경비 대상 시설인 아파트에서의 도난, 화재 그 밖의 혼잡 등으로 인한 위험발생 방지 업무를 당연히 포함하는 점까지 고려하면 A아파트 경비원들의 출근 시간대의 차량밀기 등 출차 유도 업무나 퇴근 시간대의 주차 유도 등의 업무는 본래의 경비업무와 동떨어진 독립된 업무라고 보기 어렵다”며 “취업규칙에 규정된 경비반의 업무로서 경비원이 통상 수행하는 감시적 업무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또한 “경비원들은 근무시간의 일부분만을 주차 관련 업무에 할애하고 있고 이는 총 근무시간 중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하는 본래의 감시업무에 부수해 이뤄진 것에 불과하므로 경비원들이 주차장 정산소 직원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하루의 상당 시간을 주차요금 징수업무에 할애하는 등으로 다른 업무를 규칙적으로 장시간 수행했거나 겸직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노동청 경기지청은 다수의 경비원들이 1일 30회, 최소 4시간 이상 주차관리 업무를 수행했으므로 감시적 업무 외의 다른 업무를 반복 수행하거나 겸직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경비원들은 ‘주민들의 요구가 있는 경우 차량밀기를 수행하거나 차주에게 연락해 차량통행을 원활하게 하는 업무를 수행한다’고 진술하면서 그 업무수행 시간이나 횟수에 관해 별도로 진술하지 않은 점 등 피고의 주장에 부합하는 일부 경비원들의 진술만으로 경비원들이 주차관리 업무를 규칙적으로 장시간 수행하거나 겸직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또 “이 사건 처분은 승인을 소급해 취소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나, 이 사건 처분은 승인에 위법한 하자가 있음을 이유로 소급해 효력을 소멸시키는 행정행위의 ‘취소’가 아니라 승인 이후의 사후적인 사정변경을 이유로 하는 행정행위의 ‘철회’에 해당하고 처분 효력을 소급해 발생시키기 위해서는 별도의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근거가 있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다”고 꼬집었다.

고용노동부장관이 감시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별하기 위한 기준인 구 근로감독관집무규정은 격일제 근무라고 하더라도 ‘수면시간 또는 근로자가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시간이 8시간 이상 확보돼 있는 경우거나, 경비원의 경우 당사자 간 합의가 있고 다음날 24시간 휴무가 보장돼 있는 경우’에는 감시적 근로자의 적용제외 승인요건을 갖춘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경비원들이 원고와의 합의에 따라 24시간 격일제 근무를 한 후 다음날 24시간의 휴무를 보장받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반증이 없으며, 승인 당시의 1일 2교대에서 24시간 격일제로 근무형태가 변경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근로기준법과 구 근로감독관집무규정에서 규정하는 감시적 근로의 적용제외 승인 요건을 충족했다”며 “승인을 철회할 만한 사정변경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이 사건 처분은 처분사유가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처분의 효력을 소급해 발생시킬 법적 근거도 없으므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해 취소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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