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확정 판결

필요성·긴급성 등 고려해
‘위법성 조각’ 판단
1심 이어 항소·상고 모두 기각

[아파트관리신문=서지영 기자]아파트 입주민이 현수막을 게시하는 모습 등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전송한 부녀회장 등에 대해 법원이 초상권 침해를 인정하면서도 그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전북 전주시 A아파트 입주민 B씨는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 C씨, 부녀회장 D씨, 입주민 E씨에 대해 초상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주장하며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서 기각된 데 이어 항소와 상고도 모두 기각됐다.

B씨는 2018년 2월 14일 A아파트 단지 내에 장기수선 조정과 경비초소 통폐합 공사를 지적하는 내용의 글이 담긴 현수막을 게시했다.

입주민 E씨는 관리사무소에 신고되지 않은 현수막을 게시하던 중인 B씨를 발견하고 이를 중지하라고 했고, B씨는 욕설을 하며 이를 거절했다. 부녀회장 D씨는 E씨와 말다툼하고 있는 B씨에 대한 동영상을 촬영해 대표회장 C씨에게 전송했고, C씨는 관리소장과 동대표 14명에게 위 동영상을 전송했다.

또 D씨는 2018년 4월 9일 오후 9시 30분경 이웃해 있는 B씨의 세대를 찾아가 층간소음에 대해 항의하면서 B씨가 욕설을 하고 폭행하는 장면 등을 휴대전화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두 차례의 동영상 촬영행위에 대해 B씨는 “본인의 초상권을 침해했으므로 이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이 있다”며 대표회장 C씨는 300만원, 부녀회장 D씨는 500만원, 입주민 E씨는 100만원을 지급하라는 취지의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 2심 재판부인 전주지방법원 제2-1민사부(재판장 오창민 부장판사)는 B씨에 대한 초상권 침해 여부는 인정하면서도 촬영 행위의 위법성이 조각된다며 1심과 마찬가지로 B씨의 위자료 청구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얼굴 기타 사회통념상 특정인임을 식별할 수 있는 신체적 특징에 관해 함부로 촬영 또는 그림묘사되거나 공표되지 않으며 영리적으로 이용당하지 않을 권리를 갖는데, 이러한 초상권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관한 헌법 제10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관한 헌법 제17조에 의해 보장되는 것으로서 초상권에 대한 부당한 침해는 불법행위를 구성하고, 그 침해는 그것이 공개된 장소에서 이뤄졌다거나 민사소송의 증거를 수집할 목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유만으로 정당화되지 않는다(대법원 2006. 10. 13. 선고 2004다○○○○○ 판결 참조)”며 “따라서 피고 D씨가 2회에 걸쳐 원고를 촬영한 행위는 원고의 초상권을 침해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수막 게시 행위 촬영 부분에 대해 “원고의 초상권이 일부 침해되는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그 행위 목적의 정당성, 수단·방법의 보충성과 상당성 등을 참작할 때 원고가 수인해야 하는 범위 내에 속한다고 할 것”이라며 “피고들의 행위는 그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먼저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제19조 제2항 제3호에 의하면 입주자등은 공동주택에 광고물·표지물 또는 표지를 부착하는 행위를 하려는 경우에는 관리주체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돼 있는데, B씨는 관리주체의 동의를 받지 않은 채로 무단으로 현수막을 설치한 점을 지적했다.

또한 재판부는 “원고가 게시한 현수막의 내용은 관리주체의 아파트 관리방법에 관한 반대의 의사표시로서 자신의 주장과 견해를 아파트 입주자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것”이라며 “이러한 공적 논의의 장에 나선 사람은 사진 촬영이나 공표에 묵시적으로 동의했거나 포기했다고 볼 수도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B씨에 대한 동영상이 관리주체의 구성원에 해당하는 관리소장 및 동대표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전송된 점도 고려됐다.

폭행 행위 촬영 부분에 대해서는 “피고 D씨는 층간소음 문제로 분쟁이 있어 감정이 격해지는 경우 원고가 욕설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에 대한 형사절차와 관련해 증거를 수집·보전하고 전후 사정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 촬영할 필요가 있었는바, 피고 D씨의 촬영행위는 형사절차상 증거보전의 필요성 및 긴급성, 방법의 상당성이 인정되므로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설명했다.

B씨는 2심 판결에도 불복해 상고를 제기했지만 대법원 제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의 판단도 다르지 않았다.

재판부는 초상권 침해의 위법성에 관한 법리로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사항의 공개가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것이더라도, 사생활과 관련된 사항이 공공의 이해와 관련돼 공중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항에 해당하고, 공개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며, 표현내용·방법 등이 부당한 것이 아닌 경우에는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고 설명을 더했다. 또한 “초상권이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두 방향의 이익이 충돌하는 경우에는 구체적 사안에서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이익형량을 통해 침해행위의 최종적인 위법성이 가려진다”며 “이익형량과정에서 첫째, 침해행위의 영역에 속하는 고려요소로는 침해행위로 달성하려는 이익의 내용과 중대성, 침해행위의 필요성과 효과성, 침해행위의 보충성과 긴급성, 침해방법의 상당성 등이 있고, 둘째, 피해이익의 영역에 속하는 고려요소로는 피해법익의 내용과 중대성, 침해행위로 피해자가 입는 피해의 정도, 피해이익의 보호가치 등이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B씨는 원심판결이 ‘초상권 침해는 그것이 공개된 장소에서 이뤄졌다거나 민사소송의 증거를 수집할 목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유만으로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위 대법원 판결(2004다○○○○○)과 배치된다고 주장했는데, 재판부는 “위 대법원 판결은 증거 수집 목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초상권 침해행위의 위법성이 조각될 수는 없다는 것일 뿐 그와 반대로 증거 수집과 보전이 필요한 경우에 일률적으로 위법성이 조각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며 “원심판결은 증거 수집 목적 외에 그 필요성과 긴급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위법성 조각을 인정한 것이므로 위 대법원 판결에 배치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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