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판결

[아파트관리신문=고경희 기자] 아파트 입주민이 경비용역비 부당 징수를 의심해 근로복지공단에 경비업체 산재보험료율 결정통지서 공개를 요청했으나 공단은 결정통지서의 보험수지율 등 정보를 토대로 산재 발생 여부, 근로자 보수총액 규모를 알 수 있어 ‘경영·영업상 비밀사항’이라며 이를 거부했다. 하지만 법원은 업종만 알아도 산재보험료율과 법령을 통해 보험수지율 역산이 가능하고 용역비와 관련해 입주민간 갈등이 벌어지고 있어 결정통지서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서울행정법원 제5부는 A아파트 입주민 B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 “피고가 원고에게 한 정보공개거부처분을 취소한다”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근로복지공단이 항소를 제기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경비업체 C사는 2012년 8월부터 매년 A아파트와 경비용역계약을 체결하고 2019년 9월까지 경비서비스를 제공했다. C사는 2018년경 기존의 산재보험료율 0.823%가 1.757%로 증가됐다면서 경비용역비 조정을 요구해 대표회의로부터 증액된 경비용역비를 징수했다가 2019년 5월 60만여원을 입주자대표회의에 반환했고 그해 9월 대표회의는 다른 업체와 경비용역계약을 체결했다.

그 과정에서 C사가 산재보험료율을 실제와 달리 적용해 경비용역비를 부당 징수한 것인지에 관해 입주민들 사이에 다툼이 발생했고 이에 입주민 중 한 사람인 B씨는 2019년 8월 근로복지공단에게 ‘공단이 2016년 내지 2019년도 C사에게 통지한 각 산재보험료율 결정통지서’의 공개를 청구했다.

공단 “보험수지율 공개 시 입찰 불이익”

그날 근로복지공단은 B씨가 운영하는 사업장의 직원에게 정보공개청구가 개인적인 사유인지 질의한 다음 B씨에게 ‘제3자의 정보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사유(관련근거 등)’를 보완하도록 요청했다. 그리고 약 일주일 뒤 ‘이 사건 정보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의 비공개 대상 정보에 해당한다’며 정보공개청구를 거부했다. ‘산재보험료율 결정통지서에는 산재보험특례요율 내용을 알 수 있는 보험수지율과 개별실적요율이 표시돼 있는데 보험수지율은 3년간의 보험료에 대한 3년간 당해 사업장의 산업재해 발생에 따른 산재보험급여액 비율로서 이를 통해 해당 사업장의 산업재해 발생 여부와 근로자 보수총액 규모를 알 수 있다. 이 정보가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경비용역업체나 제3자에게 알려지게 되면 C사가 입찰계약에서 불리한 공격을 당하거나 사회적 비난을 받을 수 있어 이는 법인 등의 경영, 영업상 비밀’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에 입주민 B씨는 “산재보험료율 결정통지서에는 개인정보 또는 영업비밀이라고 볼 만한 내용은 전혀 기재되지 않으므로 이 사건 정보를 공개하더라도 C사가 어떠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없다”며 “거부처분 사유를 명백히 밝히지도 않은 채 단지 본인이 제3자라는 이유만으로 정보 공개를 거부한 것은 위법하다”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은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정보는 공개 대상이 된다고 정하면서 ‘법인·단체 또는 개인의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법인 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수 있는 정보로 규정했다.

이에 관해 대법원은 정보공개요구를 받은 공공기관으로서는 비공개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한 이를 공개해야 하고 거부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대상이 된 정보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 검토해 어느 부분이 어떠한 법익 또는 기본권과 충돌돼 비공개사유에 해당하는지를 주장, 입증해야 하며 그렇지 않고 개괄적인 사유만을 들어 공개를 거부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다.

법원은 “업종만 알아도 역산 가능” 일축

이러한 법리를 토대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가 원고에게 제3자로서 정보공개를 청구하는 이유를 질의 및 보완 요청하고 이후 공개 거부 처분을 하면서 관련 근거로 ‘정보공개법 제9조’ 외에 아무런 이유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며 “사실상 원고의 정보공개청구 자격을 문제 삼아 공개를 거부한 것으로 보이고 이러한 처분사유는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각 호에서 정하고 있는 비공개사유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으므로 이 사유만으로 정보 공개를 거부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나아가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징수 등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이 정한 산재보험요율과 보험수지율의 산정방식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정보가 경영상, 영업상 비밀로서 공개될 경우 C사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꼬집었다.

구체적으로 “산재보험료율 결정통지서에는 사업의 종류별로 공통 적용되는 일반요율 외에 보험수지율 및 이를 근거로 해당 사업장에만 개별적으로 적용되는 ‘개별실적요율의 증감비율’이 포함돼 있는데, 이를 통해 그 사업장의 대략적인 규모와 3년 동안의 산업재해 발생 여부 및 산재보험급여 금액 등을 예측할 수 있기는 하다”며 “그러나 C사와 같은 경비용역업체의 산재보험료율은 용역료 산출의 근거로서 계약 상대방인 입주자대표회의에게 제공되는바 해당 업체의 업종만 알아도 산재보험료율과 고용산재보험료징수법 시행령을 통해 대략적인 보험수지율 역산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또 C사가 법원에 ‘이 사건 정보가 영업비밀에 해당하고 이를 공개할 경우 공정한 입찰이 되지 못할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사실조회회신을 한 사실이 있으나, 산재보험료 자체가 용역료(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 미만으로 크지 않고 보험수지율로 인한 개별실적요율의 증감비율이 C사의 경우 최대 20%에 불과한 점 등에 비춰 재판부는 이 사건 정보를 공개하더라도 향후 C사가 입찰 등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보지 않았다.

C사는 산업재해 발생 여부나 직원 대비 보험료 규모 등이 알려질 경우 경영상 불이익이 발생하고 이 정보를 이용한 다른 업체의 로비나 입주민의 비판 등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보험료 내지 보험수지율이 높은 업체일수록 원가 인상 요인의 압박으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시장경제의 원리상 당연한 것으로 업체가 응당 감수해야 할 불이익으로 볼 수 있을 뿐 경영상 비밀로서 특별히 보호해줘야 할 필요가 있는 정보라 보기 어렵다”며 “다른 업체나 입주민들이 더 낮은 관리비를 근거로 계약변경을 요구하는 것이 부당한 행위라고 볼 이유도 없다”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울러 “C사가 산재보험료율 인상을 근거로 대표회의에 용역비 인상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입주민들 사이에 경비업체 선정과 관련한 분쟁이 발생하기도 했으므로, 이 사건 정보를 공개해 C사의 부당한 사업활동이 있었는지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며 “이 사건 정보가 ‘법인 등의 경영상, 영업상 비밀’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정보공개법에 따른 ‘위법·부당한 사업 활동으로부터 국민의 재산 또는 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에 해당해 공개를 거부할 수 없다고 볼 여지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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