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판결: 대법원 ‘관리규약 문제 삼아’ 파기·환송

전력량계 <아파트관리신문 DB>

하급심 “규정 없어 정당한 방법 판단 모호”
대법원 “관리규약 따른 부담액과 비교했어야”

한전과 단일계약방식의 전기사용계약을 체결했어도 관리규약에 별도 규정 없이 주택용 고압요금단가가 아닌 저압요금단가를 적용해 세대별 전기료를 부과할 수 있을까. 이 사례의 아파트에 대해 1, 2심 법원 모두 관리규약에 세대별 전기료 부과방법을 규정하지 않았다며 입주자대표회의에게 과다징수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이러한 관리규약을 문제 삼아 파기 환송 판결을 내렸다. 대표회의의 입주민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둘러싼 법적 다툼이 벌어진 지 7년 만이다.

대법원 제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대전 유성구 A아파트 입주민 B씨(선정당사자) 등이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는 2심 판결을 뒤집어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지방법원에 환송한다”는 사실상 원고 승소 취지의 판결을 지난달 29일 내렸다.

한국전력이 아파트에 전기를 공급하고 전기요금을 계산, 부과하는 방식에는 단일계약방식과 종합계약방식이 있다.

단일계약방식은 세대별 사용량 및 공동설비 사용량을 포함한 전체 사용량을 세대수로 나눠 평균사용량을 산출하고 이에 대한 기본요금 및 전력량 요금에 세대수를 곱한 후 주택용 고압요금단가를 적용해 전체기본요금 및 전력량요금으로 계산하는 방식이다.

종합계약방식은 세대별 사용량은 주택용 저압요금 단가를 적용하고 공동설비 사용량은 일반용 고압요금 단가를 적용해 요금을 계산한다.

A아파트는 종합계약방식으로 전기를 공급받아오다 지난 2002년 7월 단일계약방식으로 변경해 한국전력과 전기사용계약을 체결했다. 대표회의는 계약일 무렵부터 2014년 7월까지 세대별 전기료는 주택용 저압요금단가를 적용해 각 세대별로 징수하고 공동전기료는 승강기전기료만을 동별로 구분해 승강기 사용 세대수에 따라 배분·징수했다. 나머지 산업용 전기료와 가로등 전기료는 관리비에 포함시켜 징수하지 않았다.

이에 입주민 B씨는 2014년 6월 “세대별 전기료에 주택용 저압요금단가를 적용해 초과 징수한 후 초과 징수된 금액을 공동전기료로 충당함으로써 주택용 고압요금단가를 적용할 때 세대별 전기료 차액 상당의 재산상 손해를 입게 했다”며 대표회의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심과 2심 법원인 대전지방법원은 “단일계약방식에 따른 주택용 고압요금 단가는 피고 대표회의와 한전 사이에 적용되는 전기료 부과 방식일 뿐, 이 아파트 전체에 대해 부과된 전기료를 어떤 기준에 따라 각 세대별 전기료와 공동전기료로 나눠 각 세대별로 분담시킬 것인가에 관해서는 아무런 정함이 없다”며 “피고 대표회의는 주택용 저압단가를 적용해 발생하는 잉여금으로 공동전기료를 납부했고 남은 금액은 가수금 전액명세서에 ‘전기료 차액분’으로 명시해 가수금으로 관리했으며, 한전이 부과한 전기료보다 세대 부과 전기료가 적은 경우 가수금으로 충당했다”면서 B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본지 제1104호 2016년 5월 30일자 게재>

그러나 2016년 4월 2심 판결이 선고된 지 5년만인 지난달 29일 대법원은 “단일계약방식으로 공급된 전기 사용료 납부대행을 위해 세대별 부담액을 산정, 징수함에 있어 주택용 저압요금단가를 적용해 전용부분 전기료를 과다징수하고 그 초과금을 공용부분 전기료에 충당함으로써 입주민들이 손해를 입었다”며 2심 판결을 파기하고 대전지방법원에 돌려보냈다.

구 주택법령에 따르면 의무관리대상 공동주택의 입주자대표회의나 업무집행기관에 해당하는 관리주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구 주택법령 및 관리규약이 정한 사용료 등의 세대별부담액 산정 및 징수, 보관, 예치, 사용에 관한 납부대행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전용부분 전기사용량에 대한 납부대행액과 공용부분 전기사용량에 대한 납부대행액을 구분해 각 납부대행액을 용도 외의 목적으로 사용하면 안 된다.

그런데 이 아파트 대표회의가 세대별부담액 산정에 적용한 주택용 저압요금단가는 한전에서 단일계약방식에 적용한 주택용 고압요금단가에 비해 고액이고 누진율도 높았다. 대표회의가 이 사건 청구기간인 2007년 1월부터 2014년 5월까지 산정한 세대별부담액 합계는 전체 공용부분 전기사용량에 대한 한전의 부과액수를 초과하고 그 초과분은 전용부분 전기사용량이 많은 세대가 부담한 전기료에서 주로 발생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A아파트 관리주체는 사용료를 공용부분과 전용부분에 관한 것으로 구분해 세대에서 개별적으로 사용하는 사용료는 공용부분 관리비용에서 제외함으로써 각 비용별 용도의 목적에 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한전으로부터 단일계약방식으로 전기료를 부과 받은 A아파트는 세대별부담액을 산정, 징수함에 있어 한전으로부터 부과 받은 금액을 단일계약방식의 계산방법대로 역산해 공용부분 전기사용량에 대한 납부대행액과 전용부분 전기사용량에 대한 납부대행액을 구분해 전자는 주택공급면적에 따라 배분하고, 후자는 한전의 전기공급약관에 따라 산정한 세대별 사용량 등을 기준으로 세대별 합리적인 단가를 적용해 배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대표회의가 전용부분 전기사용량에 대해 저압요금단가를 적용한 것에 대법원은 “주택용 저압요금단가를 적용해 세대별부담액을 과다징수한 후 그 잉여금을 전용부분 전기사용량에 대한 납부대행액과는 그 목적 및 성격을 비롯해 관리책임주체와 비용부담재원을 달리하는 공용부분 전기사용량에 대한 납부대행액에 충당했다”며 “이로 인해 원고 및 선정자들은 청구기간 중 관리규약에 따른 정당한 부담액을 초과해 전기료를 부담함으로써 손해를 입었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이에 “원심으로서는 이러한 사정들을 고려해 원고 및 선정자들이 청구기간 중 관리규약에 따라 부담해야 할 정당한 부담액과 실제 부담액의 차액이 존재하는지에 관해 더 심리한 후 피고가 세대별부담액을 산정, 징수, 사용하면서 구 주택법령과 관리규약에 따른 의무를 위반했는지 여부 및 손해가 발생했는지 여부를 살펴봐 손해배상책임을 판단했어야 한다”며 “원심판단에는 구 주택법령에 따른 사용료 등 납부대행액의 성격 및 이에 따른 세대별부담액 산정, 징수 및 사용 방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에 미친 위법이 있다”면서 2심 법원에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할 것을 주문했다.

세대별 전기료 법적 다툼 여럿
별도 방법 규정 두고 의견 갈려

한편, 이와 유사한 사례로 2016년 3월 대구 수성구 C아파트 입주민이 “전기요금 계산 방식을 종합계약방식에서 단일계약방식으로 변경됐음에도 세대별 전기료 징수 시 별도 결의 없이 종합계약방식에 따른 단가를 적용했다”며 대표회의를 상대로 부당이득금을 청구한 사건이 있다.

1, 2심 법원인 대구지방법원은 “단일계약방식을 적용하는 상황에서 세대별 전기료 및 공동전기료를 산출하는 방법의 선택은 결국 절감된 전기료에 의한 이득을 입주자들에게 어떻게 배분할 것이냐의 문제로서, 어떤 방법을 선택하더라도 다른 방법을 선택하는 경우와 비교해 특정 세대는 이득을 보고 나머지 세대는 손해를 보게 된다”며 “특정한 방법을 선택한 것만이 정당한 것이고 다른 방법을 선택한 것은 위법한 것이라고 할 수 없고 요금 단가에 누진제가 적용되는 상황에서 어떤 것이 가장 정당한 방법인지 단정하기 어렵다”면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 역시 2017년 9월 원고 측이 상고를 제기함에 따라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법무법인 산하 김미란 부대표변호사는 “이 사건의 경우 관리규약에 세대별부담액 산정에 관한 규정이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며 “세대별부담액 산정 방법을 정확히 규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납부대행자에 불과한 관리주체나 대표회의가 정책적 판단만으로 전기료를 부과·징수하는 행위를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만 A아파트, C아파트 모두 관리규약에 세대별부담액 산정 규정이 없어 만약 관리규약에 관련 규정이 존재해 한전과의 계약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세대별부담액을 부과, 징수하는 경우에도 위법하다고 판단될지는 알 수 없는 상태다. 관련 판례가 없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소액사건임에도 대법원이 판단을 한 것도 관련 대법원 판례가 없고 다수의 관련 소액사건이 하급심에 계속돼 있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소액사건의 경우 소액사건심판법 제3조에 따라 법률·명령·규칙 또는 처분의 헌법위반 여부와 명령·규칙 또는 처분의 법률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이 부당한 때나 대법원의 판례에 상반되는 판단을 한 때에만 대법원에 상고할 수 있다. 이를 이유로 대법원은 소액사건 상고심에서 판결 이유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대법원은 “소액사건에서 구체적 사건에 적용할 법령의 해석에 관한 대법원 판례가 아직 없는 상황인데 같은 법령의 해석이 쟁점으로 돼 있는 다수의 소액사건이 하급심에 계속돼 있을 뿐 아니라 재판부에 따라 엇갈리는 판단을 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는 경우에는 소액사건이라는 이유로 대법원이 법령의 해석에 관해 판단을 하지 않은 채 사건을 종결한다면 국민생활의 법적 안정성을 해칠 것이 우려된다”며 판단을 이어갔다.

김미란 변호사는 “관리규약에 세대별부담액 산정 방법을 정했더라도 위법한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공동주택관리법령에서 관리규약에 사용료 등의 세대별부담액 산정방법 및 징수, 보관, 예치, 사용절차를 포함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적법하다고 판단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다만, 전기료에 대한 아파트의 사적자치성을 두고 의견이 갈릴 수 있다”고 의견을 전했다.

전국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연합회 김원일 수석부회장은 “규약에 세대별부담액 산정방법을 별도로 정하는 단지는 많지 않을 것”이라며 한전과의 계약에 따라 세대별부담액을 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관리규약에 사용료의 세대별부담액 산정방법을 별도로 정해 한전과의 계약과 다른 방법으로 세대별 사용료를 부과, 징수하는 것에 앞으로 어떤 판결이 내려질지 관심이 모아진다.

저작권자 © 아파트관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