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다녀온 사람에게는 익숙한 ‘마이가리’라는 말이 있다. 예전 군대에서 자주 썼던 기억이다. 그렇다고 이제는 없어졌으리라는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주로 계급장 앞에 붙여 썼다. 과시용으로 실제 자신의 계급보다 높은 계급장을 달고 다니던 군인에게 쓰던 말이다.

이병이 일병 계급장을, 상병이 병장 계급장을, 하사가 중사 계급장을 달고 다녀 ‘마이가리 일병’ ‘마이가리 병장’ ‘마이가리 중사’ 등으로 불렀다. 속칭 ‘나이롱 계급장’이다. 그런데 이는 통상 다른 부대의 상위계급 사병들에게 기죽지 말라는 배려가 있던 말이기도 하다. 휴가를 나가는 후임병을 위해 선임병의 배려가 있던 추억이다. 헌병대나 훈련소 조교들이 자주 이용하는 것이기도 했다. 검문 시, 또는 교육 시 본인의 계급에 위축되지 말라는 업무상 배려 말이다.

이는 일본어 ‘마에가리(前借り, まえがり)’에서 유래했다. 미리 빌리거나 당겨 받는 봉급 따위의 가불, 가지급을 뜻하는 말이다.

마이가리 사례는 비단 군대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사회 곳곳에 널리 퍼져 있고 관용처럼 묵인됐다. 어찌 보면 직급인플레의 또다른 변형이다. 직급 인플레가 가장 심한 곳은 골프장이라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모두 사장이고, 회장이다. 시내 붐비는 거리에서 ‘회장님’하고 부르면 지나가던 사람 열에 대여섯은 뒤돌아본다는 말도 있다.

대형종합병원이야 대표하는 원장이 한 명이지만 개인병의원·한의원의 경우 근무하는 의사들이 몇 명이 됐건 모두 원장이다. 변호사들이 몸담고 있는 작은 법무법인들도 그렇다. 모두 대표변호사다.

최근 관리업계 내에서도 ‘대표이사’가 오·남용되고 있다는 제보가 잇달았다. ‘대표이사’가 단순한 내부의 직위·직책일지라도 사회통념상 인식은 그렇지 않기에 문제다. 이 단어는 회장, 사장 등과는 또 다르다.

대표이사는 대내적으로 업무를 집행하고 대외적으로는 회사를 대표하는 주식회사의 필요적 상설기관이다. 흔히 ‘대표이사=사장’으로 혼용하고 있지만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대표이사는 주식회사에서는 반드시 둬야 하는 대표·집행기관이다. 대표이사는 상법에 따라 원칙적으로 이사회에서 선임하지만, 정관에 의해 주주총회에서 직접 선임할 수도 있다. 대표이사는 회사에 대해 위임에 따른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가 있다. 이사회의 대표이사가 아닌 이상 동일 또는 유사 명칭을 사용해도 회사를 대표할 권한을 갖지 못한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오·남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오인할 수 있는 명칭으로 잘못 사용하더라도 제3자에게는 효력이 있다. 상법에서는 이를 ‘표현대표이사’라는 용어로 쓴다.

법원의 판례에 의하면 회사가 대표이사라는 명칭의 사용을 용인 내지 방임한 경우에는 회사가 이사자격이 없는 자에게 표현대표이사의 명칭을 사용하게 한 경우이거나 이사자격 없이 그 명칭을 사용하는 것을 알고서도 용인상태에 둔 경우와 마찬가지로, 회사는 상법에 의한 표현책임을 면할 수 없다. 회사 책임이라는 말이다. 회사의 명칭사용 승인 없이 임의로 명칭을 참칭한 자의 행위에 대해서도 비록 명칭사용을 알지 못하고 제지하지 못한 점에 있어서 회사에게 과실이 없다고 할지라도 그 회사의 책임으로 돌려 선의의 제3자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다.

모르고 관행처럼 했어도 문제고, 알고 그랬다면 더 큰 문제다. 용어의 엄밀성을 따지지 않고 대충 섞어 쓰는 것은 정말 바람직하지 않다. 어쨌든 이런 것들이 우리나라 직급 인플레의 변형인 듯해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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