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또다시 터진 ‘택배 대란’ 해법찾기

지하주차장 높이 문제로
택배기사들에 저상탑차 요구
갑질 비난에 아파트 “이미 합의”

지난 8일 전국택배노조는 A아파트 택배 차량 지상 출입 금지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진제공=전국택배노조>

[아파트관리신문=고경희 기자]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에서 ‘택배 대란’이 벌어졌다. 지난 1일 강동구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단지 내 지상도로의 차량 통행을 전면 금지토록 결정하고 택배 기사들에게 저상차량으로 지하주차장에 출입하거나 지상도로를 이용할 경우 손수레 등으로 배송을 하라고 통보했다. 이에 반발한 택배 기사들이 아파트 정문에 택배물품을 두고 가면서 택배 기사와 아파트 입주민 간 택배 갈등이 불거졌다.

지난 8일 전국택배노조는 기자회견을 열고 “아파트에서는 1년간 유예기간을 줬다고 하지만 이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지상출입 금지를 결정하고 택배사와 협의한 것일 뿐, 결정과정에서 택배노동자가 완전히 배제됐다”며 A아파트의 결정이 전형적인 ‘갑질’이라고 호소했다.

택배노조에 따르면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택배 차량을 저상탑차로 개조할 경우 허리를 깊이 숙인 채 고중량 물건을 옮기는 작업을 해야 해 근골격계 질환유발이 더욱 빈번해질 우려가 있다. 또 차량에 실을 수 있는 물량이 줄어들면 노동시간과 강도가 증가하게 되고 개조 또는 교체 비용 모두 택배노동자 개인이 부담하게 된다. 손수레 이용 시 배송 시간이 기존보다 3배 가량 증가하며 택배물품 손상이 발생하기 쉽고 손상비용을 택배노동자가 변상해야 한다.

택배노조는 “대표회의가 내세운 대안은 모두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없고 이사차량, 재활용쓰레기 수거차량 등이 지상출입을 하고 있어 택배차량만 지상 출입을 금지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며 A아파트를 개인별 배송불가 아파트로 지정해 14일부터 아파트 입구까지만 배송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파트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A아파트 관계자는 “다른 서비스 차량도 지하주차장을 이용하고 있고 이미 택배 기사들과 저상탑차로 지하주차장을 이용하기로 합의를 봤는데 택배노조 측에서 갈등을 키우고 있다”며 “택배노조가 8일 기자회견에서 아파트에 협의 공문을 보냈다고 말했지만 당시 아파트는 공문을 받은 바 없었고 기자회견 이후에야 이 사실을 알았다”고 전했다.

앞서 지상공원화단지로 설계된 경기 남양주시 B아파트에서 2018년 3월 지상 도로 내 택배차량 출입금지를 결정하면서 ‘다산신도시 택배 갑질’이 화두에 올라 뭇매를 맞은 바 있다.

지상공원화단지는 지상에 차량 통행을 저지해 소음과 매연을 줄이고 입주민의 안전과 쾌적한 환경을 위해 추진된 설계방식으로 2010년 전후로 ‘(지상)차 없는 단지’ 추세가 이어져 신축단지를 중심으로 설계되고 있었다.

그런데 택배 차량의 높이가 2.5~2.7m인 반면 관계법령상 아파트 지하주차장 높이기준이 2.3m 이상으로 정해져 있어 지상공원화단지의 택배 차량 출입 갈등이 이어졌다.

계속되는 택배 갈등에 2019년 1월 16일 국토교통부는 지상공원형 공동주택의 경우 택배·이사 차량의 주차장 진입을 위해 주차장 차로의 높이를 2.7m 이상으로 설계하도록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규칙, 공동주택관리법 시행규칙을 개정·시행했고 이 규정은 시행 이후 사업계획승인을 신청하는 경우부터 적용되도록 했다.

하지만 이번에 논란이 된 A아파트는 개정 규정 시행 전 사업계획승인을 신청해 2019년 9월 사용승인을 받은 단지로 지하주차장 차로 높이가 2.3m에 불과해 일반 택배 차량은 지하주차장에 진입할 수 없다. 결국 A아파트와 같이 지하주차장 높이 상향 전에 사업계획이 승인된 아파트들은 지상공원화단지 지속을 위해 택배 갈등에 놓일 수밖에 없다.

A아파트는 저상 택배차량 이용 현수막을 게시했다. <사진=이진우 객원기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수암 선임연구위원은 “지하주차장 높이가 낮은 단지는 결국 택배차량의 지상도로 출입을 허용하거나 아파트 입구에 쌓인 택배물품을 입주민이 직접 가져가는 방법뿐”이라며 “입주민들이 택배차량이 지하주차장을 이용하기 어려운 물리적 환경을 이해하고 서비스차량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며 지상 출입 차량으로부터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입주민의 인식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서비스차량의 단지 내 진입 불가로 발생하는 불편은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또 해결방안으로 떠오른 ‘무인택배함’도 입주민들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방치되고 있는 사례가 많아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꼬집었다.

한편, 택배노조는 A아파트 일부 주민들의 항의와 택배사 압박 등이 이어지면서 16일 중단됐던 '집 앞 배송'을 당분간 재개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파트측이 택배 차량의 지상도로 통행금지 결정을 번복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입주민과 택배노조 간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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