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홍수열 소장

종량제 시행 초반에 형성됐던 분리배출 기준 붕괴 아쉬워
재활용 시장 투자·인프라 구축 게을리한 대가 치르는 중
공동주택 투명페트병 분리배출 평가 이르지만 시행착오 보여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홍수열 소장 <조미정 기자>

[아파트관리신문=조미정 기자] 지난해 12월 25일부터 공동주택 투명페트병 분리배출이 의무화됐다. 지난해 5월부터 시범운영을 시행했고, 의무화가 된 이후에도 올해 6월까지 각 공동주택 및 선별장에 유예를 주고 있다.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홍수열 소장은 공동주택 투명페트병 분리배출 시행에 대해 “아직 평가하긴 이르나 지난 10여년간 망가져온 분리배출 시스템을 단숨에 고쳐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시행착오가 보인다”고 안타까워했다.

환경대학원을 거쳐 2001년부터 2012년까지 쓰시협(현 자원순환사회연대)에 근무하며 쓰레기와 인연을 맺은 홍 소장은 2014년부터 현재까지 1인 연구소를 운영하며 그를 찾는 곳 어디에서나 올바른 분리배출과 순환경제를 얘기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5일부터 투명페트병 분리배출 의무화가 시작됐다.

원래 분리배출이 시행된 초기에는 플라스틱과 페트(PET)병을 분리배출 했었다. 중국이 폐플라스틱 등을 수입하기 시작하면서 재활용 시장이 호황을 이뤘고, 페트병을 포함한 폐플라스틱 가격이 올라감에 따라 사업자들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일종의 서비스 경쟁이 붙어 아파트 입주민들의 편의를 고려해 한꺼번에 배출해도 수거해가는 방식으로 정착한 것이다.

그런데 이게 독으로 작용했다. 주민들 스스로 세분화된 분리배출을 하게끔 홍보하고 잘못된 분리배출에 대해 반복적으로 교육하고 시정했어야 하는데 분리배출에 관용적이었던 시간이 15년 이상 지속되면서 종량제 시행 초반에 형성됐던 분리배출 기준마저 붕괴돼 버렸다.

2018년 폐비닐·폐플라스틱 수거 중단 사태로 인해 현실을 직시하게 된 거다. 그동안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세계의 최대 쓰레기 수입국이었던 중국이 문을 닫아버리니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우리나라는 지난 15년 동안 재활용 시장을 위한 투자나 인프라 구축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분리배출, 선별, 재활용 등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다만 중국이 받아주다 보니 위 과정이 문제가 없다는 착각에 빠졌던 거다.

▶이 제도가 올바르게 정착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현재 시행되고 있는 투명페트병 분리배출과 관련해서 안타까운 것 중 하나가 투명‘음료’페트병으로 홍보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음료병 외에 세제, 샴푸 등 화학물질이 담겼던 투명병과 식용유·올리고당·식초 등 식품류 병이 뒤섞여 배출되고 있는데, 이러면 첫째, 이물질 제거 및 관리가 힘들어 재생원료 질이 떨어진다. 

두 번째는 최근 유색페트병을 투명페트병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많은데 예를 들어 자동차첨가제 같은 화학제품을 투명페트병으로 바꾸는 건 재활용에 치명적이다.

투명페트병 분리배출의 궁극적인 목표는 Bottle to Bottle, 즉 페트병을 다시 페트병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병들이 뒤섞여 음료병으로 재탄생하면 그걸 사용할 수 있을까. 플라스틱 분자구조가 아무리 촘촘하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구멍이 있고 내용물이 당연히 스며든다. 화학물질을 담았던 병은 물론이고, 식초·식용류 등도 재생페트병의 원료가 될 수 없다. 실제로 EU나 미국FDA에서는 재생페트병에 쓰일 원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화학물질과 접촉한 페트병이 절대 섞이지 않았다는 것을 공정에서 입증해야 한다. 재생원료 자체만 보는게 아니라 쓰임새에 따라서 과정을 철저히 심사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투명페트병을 계속 구분 없이 분리배출하면 우리나라 환경부에서 식품에 접촉하는 페트병에 재생원료를 쓸 수 있도록 추진한다 해도 식약처에서 허가가 나지 않을 것이다. 쓴소리지만 이번에 ‘투명음료페트병’을 ‘투명페트병’으로 홍보한 건 보다 철저하게 준비하지 못한 환경부의 실수라고 생각한다.

한편, 페트병으로 옷 만드는 것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재생섬유로 만든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페트병 재생원료 품질이 낮다는 방증이고, 저부가가치 상품으로 재활용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마저도 지금과 같이 뒤섞인 페트병으로 만든다면 피부에 닿는 옷인데 좋을리 없다. 

▶분리배출 하는 과정에서 소비자가 헷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분리배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어떤 면에서는 정보의 과잉이 된다. 불필요하거나 잘못된 분리배출 정보가 넘쳐난다. 배달음식 포장용기에 비닐이 완벽히 뜯어지지 않을 때, 이걸 끝까지 제거해야 한다, 그냥 일반쓰레기로 버려야 한다 등 의견이 분분하다. 포장용기 주요성분은 폴리프로필렌(PP)이라는 플라스틱의 종류다. 비닐은 폴리에틸렌(PE)인데 PP보다 녹는점이 낮다. 두 성분은 쉽게 말해 사촌 간이다. 즉, 재생원료 순도는 조금 떨어지겠지만 현재 PP재활용 용도에서는 큰 문제없이 재활용된다. 잔여물 등 오물은 최대한 제거해야 하지만 색깔배임은 상관없다. 단, 스티로폼과 헷갈리면 안 된다. 라면용기 등 스티로폼은 색깔별 선별을 하므로 색이 배이면 재활용할 수 없다.

플라스틱도 원래는 색깔별로 선별하는게 유리한데 PP는 이미 색깔이 너무 다양해서 색깔별 선별이 불가능하다. 재활용 과정을 거쳐 정화조, 땅에 묻는 파이프 등 저부가가치 상품으로 재사용된다. ‘가치가 떨어지는 물질의 재활용’을 다운사이클링(Downcycling)이라고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투명페트병에 우선 집중하는 거다. 배출량이 가장 많고, 특히 투명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색깔별 선별이 가능하고 재생원료 가치가 높다. 투명음료페트병을 새로운 음료 페트병으로 ‘새활용’(Upcycling)하는 것이 관건이다.

가정에서 분리배출된 폐기물들은 어쨌든 선별과정을 거치게 된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바람직한 분리배출이란 선별장에서 선별하기 용이한 배출이다. 선별장에서 일일이 손으로 골라내기 때문에 부피가 큰 게 좋다. 빨대같이 작은 플라스틱은 선별되지 않고 일반쓰레기로 버려진다. 알루미늄 캔은 밟지 않고 그대로 버리는 게 좋다. 알루미늄은 자석에도 붙지 않아서 찌그러뜨리면 손으로 선별하기 어렵다. 소비자는 선별장에 가기 전까지 폐기물 내용물을 잘 비우고 깨끗이 세척해 배출하는 것까지만 하면 된다.

▶업사이클링에 따른 산업 변화가 클 것 같다.

석유를 이용한 신재료보다 업사이클링에 사용되는 재생원료 값이 더 비쌀 수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싸더라도 더이상 신재료로 만들어 폐기물이 될 가능성이 높은 플라스틱 생산을 줄이자는 것 아닌가. 제품의 질, 비용, 공정률 등을 떠나 무조건 재생원료를 쓰도록 밀어붙이는 상태가 지속되면 기업의 비교기준도 달라지게 된다. 어느 회사 재생원료가 가격도 싸면서 품질이 좋은지 비교하게 되고 재생원료로 경쟁하며 산업의 경쟁력을 갖는 것이 ‘순환경제’다. 우리나라 산업계나 정부에서 이런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하루빨리 인식하게 되길 바란다.

▶일반쓰레기로 배출되는 플라스틱을 소각하는게 탄소중립에 역행하는 것은 아닌가.

현재의 기술과 시스템상 재활용하기 어려운 플라스틱을 태울 때의 에너지를 회수할 방법과 소각할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환경오염물질을 어떻게 줄일지 고민해야 한다. 태울 때의 에너지 회수는 소각시설의 기술적인 문제이고, 오염물질 배출을 줄인다는 것은 소각로에 투입되는 플라스틱의 재질을 바꾸는 것과 관련 있다. 석유플라스틱을 바이오플라스틱 혹은 식물플라스틱으로 대체해야 한다.

사실 탄소배출 이슈는 플라스틱 성분보다 더 큰 변화가 필요하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해야 2100년까지 지구 온도상승을 1.5℃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게 국제사회의 합의인데, 전세계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려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2010년 400억톤의 절반인 200억톤으로 줄여야 한다. 그런데 2019년 기준 온실가스 배출량은 524억톤이었다. 2030년까지 200억톤으로 낮추기 위해선 매년 8% 이상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지난해 코로나로 인한 온실가스 감축량을 8% 정도로 본다. 즉, 코로나 정도의 경제 충격을 매년 겪어야 할 정도로 어려운 과제라는 거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우선, 지자체 동의하에 환경부가 제작하고 운영하는 온라인 분리배출 정보제공 시스템과 분리배출 기준 위원회 등을 만들어 전국적이고 공식적인 기준을 제공해야 한다.  쓰레기 문제는 워낙 복잡하다. 물질의 종류도 많고 이해관계자의 수도 많기 때문에 단일한 주체가 중심이 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분리배출 가능 여부를 해당기관 담당자 몇몇에게 맡길  일은 아니라는 거다.

무엇보다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해 관심을 갖고 노력하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담배꽁초, 껌, 일회용 비닐봉투, 빨대 등 미국에서는 이런 세분화된 쓰레기 연구 단체가 아주 많다. 우리도 다양한 쓰레기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사람이 곳곳에 많아지길 바란다.

또, 기업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소비자다. 소비자가 회초리를 들어야 정부도 기업을 쉽게 규제할 수 있다. 소비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기업이 변할 수 있도록 자발적인 활동이 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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