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파기환송 판결] “전체 아닌 부녀회 총유 재산”

잡수입 임의 사용 ‘횡령’
인정됐던 부녀회장
상고심서 판결 뒤집혀

부녀회가 재활용품
처리 등 맡으며 얻은 잡수입
입대의 귀속 여부 판단 엇갈려

[아파트관리신문=서지영 기자] 아파트에서 발생한 재활용품처리비용, 게시판 광고 수입 등을 부녀회 운영비 등으로 사용해 횡령죄에 따른 징역형의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던 부녀회장에 대해 대법원이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항소심 기사 본지 제1165호 2017년 9월 11일자 8면 게재>

대법원 제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최근 횡령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부산 동래구 B아파트에서 1997년경부터 2014년 12월경까지 부녀회장을 맡았던 A씨는 2010년 12월부터 4년간 재활용품처리비용, 세차권리금, 게시판 광고 수입, 바자회 수익금 등 아파트 잡수입금 7100여만원을 임의로 소비해 횡령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A씨는 부녀회 전 총무가 자신을 모욕 및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과 관련한 변호사 비용   등으로 총 883만6300만원을 부녀회비에서 사용한 혐의도 받았다.

A씨는 오랜 관례에 따라 부녀회에서 아파트 잡수입에 관한 수입·관리·지출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과 2심 재판부는 A씨가 사용한 재활용품처리비용 등이 B아파트 입주민들 전체에 귀속되는 잡수입에 해당된다고 보고 A씨의 횡령 혐의를 인정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개정 주택법 시행령에서 잡수입을 ‘재활용품의 매각 수입, 복리시설의 사용료 등 공동주택을 관리하면서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수입’으로 정의하고 있는 점과 아파트 관리규약에서도 ‘입주자·사용자가 함께 적립에 기여한 잡수입’으로 재활용품 판매에서 발생한 잡수입, 광고판 게시 등에서 발생한 잡수입 등을 들고 있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면서 “이러한 잡수입은 주택법 시행령과 아파트 관리규약에 따라 100분의 2 범위 내에서 예비비로 처리하고 남는 잔액을 장기수선충당금으로 적립해야 한다”며 “피고인 A씨가 사용한 각 돈은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관리해야 할 잡수입으로 타인 소유의 재물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항소심 재판부 “잡수입
용도 외 사용 안 돼” 판단

아울러 재판부는 “아파트 관리규약은 2014년 11월 10일 개정을 통해 관리주체로 하여금 잡수입을 대표회의 의결을 거쳐 공동체 활성화와 주민자체활동 촉진을 위해 필요한 비용으로 우선 지출할 수 있다는 예외규정을 뒀을 뿐, 개정 전에는 잡수입 사용에 관한 예외규정을 두지도 않았다”며 잡수입을 장기수선충담금 외 용도로 사용한 것이 횡령죄의 불법영득의사를 실현한 것이 된다고 밝혔다.

또한 재판부는 “A씨와 부녀회는 잡수입의 수입·관리·지출을 전적으로 도맡아왔는데, 이는 주택법령, 관리규약에 위배되는 것”이라며 “A씨를 비롯한 부녀회의 잡수입 반환 거부로 인해 잡수입의 수입·지출에 관한 입주민들의 투명한 감시가 불가능하게 됐다”고도 지적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입주자대표회의 소속이 아닌 주부들이 자생적으로 결성한 부녀회가 활동하며 올린 수입금은 입주민 전체가 아닌 부녀회의 것이므로, 이를 부녀회 운용비 등으로 사용했어도 횡령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아파트 관리규약에 부녀회의 공동주택 관리활동으로 인한 수입을 입주자대표회의의 수입으로 귀속시키는 내용을 정한 바가 없고, 부녀회와 입주자대표회의 사이에 그 수입을 입주자대표회의에 귀속시키는 내용의 합의를 한 적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따라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부녀회의 공동주택 관리활동으로 인한 잡수입은 그 법률원인인 관리활동의 적법 여부를 떠나 부녀회원들의 총유로 귀속되고, 이와 같은 부녀회원들의 총유재산인 잡수입금이 주택법 시행령이 정한 잡수입으로서 입주자대표회의의 소유로 의제된다고 볼 수도 없다”며 부녀회가 활동해 얻은 잡수입의 성격을 명확히 했다.

“모든 수입이 일률적으로
잡수입 되는 것 아냐”

재판부는 “주택법에서 말하는 잡수입은 공동주택 관리주체가 공동주택을 관리하면서 발생한 것으로서 그 수입이 입주자들 전체에 귀속되는 것이어야 한다”며 “모든 수입이 일률적으로 잡수입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고, 입주자들 전체에 귀속되는 수입에 한해 잡수입 항목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그동안 부녀회는 아파트 입주민들이 내놓은 재활용품의 처리·판매 업무, 아파트 내 세차업자의 선정 및 계약과 그 관리, 아파트 내 게시판 광고 수주와 관리, 아파트 단지 내 장소를 활용한 장터 또는 바자회를 개최하는 활동 등을 지속해왔으며, 이러한 공동주택 관리활동을 통해 얻은 수입은 경비원 및 청소원 보조금, 경로당 지원비용 등으로 지출해왔다.

재판부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이 같은 부녀회 활동과 재정 운영에 관해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채 이를 용인해 온 점도 무죄 판단 근거로 삼았다.

이와 함께 2004년 12월 제정된 이 아파트 관리규약은 부녀회 설립과 지원에 관한 규정을 두지 않았고, 부녀회를 자생자치단체로 칭하면서 ‘공동주택 관리와 관련 있는 부녀회의 운영기준’을 입주자대표회의의 의결사항으로만 정한 점도 지적했다.

또 재판부는 A씨가 변호사비용 등에 부녀회비를 쓴 것 역시 문제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속한 부녀회는 2005년 11월 입주자대표회의와 독립해 법인 아닌 사단으로서 실체를 갖게 됐으므로 부녀회가 회원들로부터 징수한 부녀회비는 입주민 전체 총유로 귀속되는 것이 아닌 부녀회 회원들의 총유재산”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원심이 부녀회비와 잡수입금이 입주자대표회의에 그대로 귀속되거나 입주민들 전체의 총유로 귀속된다는 전제에서, 이 사건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판단한 데에는 법인 아닌 사단의 성립요건 및 부녀회비와 공동주택 관리로 인한 수입의 소유권 귀속, 나아가 횡령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법무법인 린 최승관 변호사는 이번 판결에 대해 “2010년 7월 주택법 시행령 개정 이후 잡수입의 정의가 구체화되면서, 이전에는 부녀회 수익으로 보던 재활용품 판매대금 등이 입주자대표회의 관리로 넘어갔다”고 설명한 뒤, “부녀회의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은 1심, 2심과 달리 대법원은 독립성을 인정해 쇠퇴했던 아파트 부녀회 활동이 다시 부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의견을 전했다.

그러면서 “다만 주택법 시행령 개정 전·후의 잡수입 사용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다퉈볼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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