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파트는 살기 좋은 곳과는 별개로 종종 부동산 가치로만 평가받는다. 그렇지만 이런 삭막한 풍토에서 공동체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는 부녀회의 활동은 아파트가 삭막한 단어 대신 따뜻하고 사람 사는 공간임을 일깨운다. 살기 좋은 아파트 단지를 가꾸는 데는 헌신적인 부녀회의 역할이 크다.

얼마 전 부산 모 아파트에서는 각 동 엘리베이터에 ‘뽑기판’을 설치하고 거기서 당첨된 과자를 가져가는 행사를 해 화제가 됐다. 이 행사를 주도한 곳이 이 아파트 부녀회였다. 이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이런 곳이 진짜 명품 아파트’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부녀회는 즐거우려고 한 일이 화제가 될 줄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부녀회의 역할이 이런 것이다. 감초 같은 존재다.

아파트별로 부녀회의 활성화에 차이가 있다. 부녀회 조직을 만드는 것은 법으로 규제하지 않는다. 많은 아파트의 원활한 운영에는 부녀회 등 활발한 자생조직이 있고, 이들의 활발한 활동을 입주자대표회의는 관리규약에 따라 지원하고 있다. 관리규약에는 지원금의 한도, 지원절차, 관리, 감독 등이 규정돼 있다.

법 규정 이전에 한참 활발했던 각 아파트 부녀회의 활동이 크게 위축된 계기가 있다. 관리수익 중 ‘잡수입’ 정의와 운영규정 때문이다. 2010년 7월 주택법 시행령 개정 이후 잡수입의 정의가 구체화됐다. 이전에는 부녀회 수익으로 보던 재활용품 판매대금 등이 입주자대표회의 관리로 넘어갔다.

구 주택법 시행령(제2224호)에서는 잡수입을 ‘금융기관의 예금이자, 연체료 수입, 부대·복리시설의 사용료 등 공동주택 관리로 인해 발생하는 수입’으로 규정하고, 개정 주택법 시행령에서 잡수입을 ‘재활용품의 매각 수입, 복리시설의 사용료 등 공동주택 관리하면서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수입’으로 정의하고 있다. 시행령 규정의 전체 취지는 관리비 이외에 공동주택 관리로 인해 발생하는 수입을 통틀어 잡수입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이어받은 공동주택관리법 제21조에는 공동체 생활의 활성화에 대한 규정이 있다. 이 조문에는 필요한 활동을 자율적으로 실시할 수 있고, 조직 구성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입대의 또는 관리주체는 공동체 생활의 활성화에 필요한 경비의 일부를 재활용품의 매각 수입 등 공동주택을 관리하면서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수입에서 지원할 수 있으며, 이에 따른 경비의 지원은 관리규약으로 정하거나 관리규약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에서 입대의 의결로 정하도록 했다.

명확한 규정 이후 실제로 많은 부녀회가 직접 수익이 줄어 운영의 어려움으로 해체됐다. 그렇지만 관리규약에 따른 보조를 받으며 건전하게 잘 운영하는 아파트도 여전히 많다.

법원은 그간 “아파트 단지 내 알뜰시장, 광고물 수입, 헌옷 처분으로 인한 수입 등 잡수입은 아파트 관리규약에 따라 입주자대표회의 의결을 거쳐 일정 범위 내의 예비비로 지출, 적립하거나 장기수선충당금으로 적립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아파트 잡수입 관리와 관련한 대표회의 의결이 공식적으로 있지 않고, 아파트 관리에 필요한 경비가 아닐 경우 ‘횡령’으로 보고 불법행위로 판결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최근 아파트에서 발생한 재활용품 처리비용, 게시판 광고 수입 등을 부녀회 운영비 등으로 사용해 횡령죄에 따른 징역형의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던 부녀회장 A씨에 대해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했다.

조금은 어리둥절하다.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이번 대법원의 판결이 아파트 부녀회의 활동을 보다 활발하게 되는 또 다른 계기가 될까. 아니면 법리의 오해일까.

관련기사

저작권자 © 아파트관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