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판결...하자담보책임기간 지났어도 손배 청구 가능

“소화수 정체 배관에
M형 동관 사용 시 부식 우려”

[아파트관리신문=고경희 기자] 아파트 스프링클러 배관 누수 하자에 대해 시행사인 LH가 하자담보책임기간 도과를 이유로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배관 하자가 부적절한 자재인 M형 동관을 사용하도록 설계해 발생했으므로 하자담보책임기간의 제한 없이 아파트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사용검사 전 하자’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서울고등법원 제22민사부(재판장 기우종 부장판사)는 최근 경남 진주시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36억5422만여원을 지급하고 나머지 청구를 기각한다”는 1심 판결을 인정, LH의 항소를 기각했다.

A아파트는 2011년 9월 사용검사를 받았는데 시공사 B사가 설계도면에 따라 시공해야 할 부분을 시공하지 않거나 부실하게 또는 설계도면과 다르게 변경해 시공함으로써 공용부분과 전유부분에 각종 하자가 발생했다. 대표회의는 사용검사일 이후부터 LH와 B사에게 하자보수를 요청했으나 여전히 스프링클러 누수 등 하자가 남아있다.

이에 대표회의는 “LH는 하자에 갈음하는 손해배상금 67억1563만여원을 지급하고 B사는 LH와 공동해 금원 중 10만원을 지급하라”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에 따르면 A아파트 스프링클러 배관에서 나타난 누수와 공식(pitting corrosion) 등의 현상은 피고 LH가 스프링클러 배관 자재로 적절하지 않은 동관(M형)을 사용하도록 한 설계상 잘못으로 인해 발생했고 이 하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모든 세대에 걸쳐 발생했다.

이 아파트 스프링클러 누수배관에는 동관 내 소화수에 산화물들이 구리표면에 미세하게 침전돼 구리의 산화피막이 파괴됨으로써 공식 형태의 부식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누수가 발생했다. 이러한 공식은 금속표면의 손상된 부분에서 아주 미세한 반구형 모양의 구멍을 내는 국부적인 부식으로 부식속도가 특히 빨라서 금속 내부로 깊이 뚫고 들어가는 위험한 형태의 부식이다.

일반적으로 세대 내부 배관에 사용되는 동관의 경우 두께에 따라 K형(1.65㎜), L형(1.27㎜), M형(0.89㎜)로 나뉘는데 LH는 2004년 스프링클러 자재의 설계기준을 직경 25㎜ 동관 중 두께가 가장 얇은 M형으로 변경했다.

또 동관의 재료인 구리는 부식에 관한 열역학적 경향이 낮고 일반적인 대기환경이나 비산화성 액체 환경에서 상당히 큰 내식성을 갖는 성향이 있어 스프링클러 배관 재료로 많이 사용되고 있으나, 배관 내 물이 지속적으로 흐르는 급수, 급탕용 배관이 아니라 소화수가 정체돼 있는 스프링클러의 배관으로 사용할 경우 부유물의 침전이 유발되고 침전물의 산성화로 인해 배관 부식이 발생할 우려가 높다.

2009년을 기점으로 LH가 분양한 아파트들에서 스프링클러 누수 하자가 발생하기 시작해 2012년 하자 발생이 크게 증가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 LH가 스프링클러 자재 설계기준을 동관 M형으로 변경한 것은 2004년이지만 기준 변경이 설계에 반영돼 현장에 시공되고 이후 소화수에 의해 동관이 부식돼 실제 누수가 발생되는 기간 등을 고려하면 피고 LH의 스프링클러 자재 설계기준 변경과 피고가 시행사였던 아파트들의 스프링클러 누수 하자 발생 사이에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면서 A아파트 전 세대에 대해 스프링클러 배관 전체를 철거하고 동관 L형으로 재시공하는 공법에 소요되는 비용을 기준으로 하자보수비를 46억9058만여원으로 인정했다.

또한 “배관 부식이 광범위하게 상당한 정도로 진행되면서 다발적으로 누수가 발견되고 있으며 향후에도 누수가 발견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지금까지 누수가 발견된 세대들의 배관만 교체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으므로 배관 전체를 철거하고 재시공하는 것이 적정한 하자보수 방법이라는 감정인의 감정 결과가 불합리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들이 주장하는 에어샌딩 갱생공법(배관 내부 부식을 제거하는 에어샌딩을 통한 연마 과정을 거쳐 에폭시 도장을 하는 갱생공법) 등으로 보수를 할 경우 배간 내구성이 감소해 화재 진압 기능에 어떠한 문제를 초래할지 알 수 없어 적절하지 않다”고 못 박았다.

법원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노화현상 등을 고려해 LH의 손해배상책임 범위를 채권양도세대 전유부분 하자보수비 4억1885만여원과 스프링클러 하자보수비 등 합계 65억3735만여원 중 60%로 제한했다.

다만, B사의 부실시공으로 하자가 발생한 점은 인정하면서도 LH가 변론종결 당시 무자력(채무초과)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어 대표회의는 B사에 대한 손해배상채권을 행사할 당사자적격이 없다면서 각하했다.

이 같은 판결에 LH가 항소를 제기했으나 2심 재판부도 같은 판단을 해 항소를 기각했다.

LH는 “스프링클러 배관 누수가 하자로 인정되더라도 구 집합건물법(2012년 12월 18일 개정 전) 및 구 주택법(2015년 8월 11일 개정 전)에서 정한 3년의 하자담보책임기간이 적용되므로 이 아파트 사용승인일인 2011년 9월로부터 3년이 지난 2014년 9월 하자담보책임기간이 도과했고 여전히 공식 발생 가능성이 있는 동관 L형으로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소방용합성수지배관인 CPVC 배관으로 교체하는 비용을 하자보수비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이 아파트 스프링클러 배관에서 나타난 누수와 공식 등의 현상은 피고가 적절하지 않은 동관 M형을 사용하도록 한 설계상 잘못으로 인해 발생했으므로 이 같은 설계상 하자는 사용검사 전 하자”라고 재차 강조하며 “원고는 개정 주택법 시행령에서 정한 하자담보책임기간의 제한 없이 개정 집합건물법에 따라 하자보수에 갈음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일축했다.

아울러 “동관 L형 대신 CPVC 배관으로 교체하는 것이 적정한 보수방법이라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면서 LH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편 이번 판결은 LH가 상고를 제기하지 않으면서 그대로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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