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고법 판결

관리업체, 배관 직접점유자로
입대의보다 책임 우선돼

“누수 이유” 등 주장했지만
장기간 잠금 잘못 지적

[아파트관리신문=서지영 기자] 아파트 스프링클러 배관 누수를 이유로 공용부 알람 밸브를 잠궈 둔 상태에서 세대 내 화재가 발생, 결국 화재 확산을 막지 못 해 입주민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유가족들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업체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는 입주자대표회의의 책임을 물었지만 2심에서는 대표회의가 아닌 관리업체에 책임이 있다고 판결을 변경했다.

대전고등법원 제3민사부(재판장 허용석 부장판사)는 지난 2018년 1월 20일 대전시 A아파트 세대 내 화재로 사망한 B씨의 부모와 언니 등 유가족 4명이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업체 C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피고 C사는 원고 D씨(부)에게 9651만여원, 원고 E씨(모)에게 9501만여원, 원고 F씨(언니)와 G씨(언니)에게 각 35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들의 피고 입주자대표회의에 대한 청구 및 C사에 대한 나머지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앞서 1심 재판부는 대표회의와 C사의 연대 책임을 묻는 유가족들의 청구에 대표회의의 책임만을 물었는데, 유가족들과 대표회의의 항소 제기로 진행된 2심에서 책임 주체가 뒤바뀐 것이다. 

배관 누수로 밸브 잠근 채 방치

재판부에 따르면 2018년 1월 20일 오전 9시 38분경 미상의 점화원이 주방의 플라스틱 쓰레기통이 위치한 지점에 있던 음식물과 종이류 쓰레기 부분에 떨어져 화재가 발생, B씨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치료를 받다가 그해 4월 14일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A아파트 여러 세대들 내부에 설치된 스프링클러 배관에서는 2013년 8월 20일경부터 지속적으로 누수가 발생했고 B씨가 살던 세대에서도 2016년 4월 4일경부터 누수가 발생했다. B씨 세대를 비롯한 일부 세대원들은 자신들의 비용으로 누수가 발생하는 배관을 보수했으나, 지속적으로 이 아파트 개별 세대에서 누수가 발생하자 대표회의는 2017년 12월경 전유부분으로 돼 있는 개별 세대의 스프링클러 배관을 공용부분으로 변경하기로 하고 2018년 1월 19일 회의에서 누수 발생으로 보수가 필요한 33세대에 대해 장기수선충당금으로 보수공사를 시행하기로 의결했다.

또 관리소장 H씨는 스프링클러 배관에 대한 보수공사를 시행하기 위해 2017년 10월 20일경부터 A아파트의 스프링클러 공용부 알람 밸브(이하 ‘이 사건 밸브’)를 잠갔으며, 이에 따라 B씨 세대의 화재 발생 당시에도 세대 내부에 설치된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아 화재가 확산됐다고 보고, 입주자대표회의가 이 사건 밸브의 점유자로서 D씨 등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판단했다.

관리소장 H씨가 이 사건 밸브를 잠근 상태로 둔 것에 대해서는 B씨 또는 유가족들에 대한 불법행위라 단정할 수 없다며 따라서 C사가 H씨의 불법행위에 대한 사용자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H씨가 밸브를 잠근 상태로 둔 것이 스프링클러의 점검·정비를 위한 조치의 일환이라고 판단했으며, 대표회의 지시 없이 누수 발생 세대의 스프링클러 배관에 대해 선제적으로 보수공사를 시행할 것까지 요구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그러나 이러한 1심 판결과 달리 항소심 재판부는 대표회의가 아닌 C사에 손해배상 책임을 물었다.

재판부는 먼저 관련 법리로 “민법 제758조 제1항의 공작물 점유자라 함은 공작물을 직접적·구체적으로 지배하면서 사실상 점유·관리하는 자로서,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상의 하자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공작물을 보수·관리할 권한 및 책임이 있는 자를 말한다”면서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상의 하자로 인해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에 그 공작물의 점유가 대리점유 관계에 있을 때에는 직접점유자가 1차적인 배상책임을 지고 직접점유자가 손해방지에 필요한 주의를 해태하지 않은 때에 비로소 간접점유자에게 그 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판부는 공동주택 위탁관리계약에 따른 주택관리업자의 역할과 책임 등에 비춰, 관리주체인 C사가 이 사건 밸브의 직접점유자이고 대표회의는 간접점유자에 해당한다며 C사의 점유가 대표회의의 점유보다 직접적, 구체적이라고 밝혔다. 이에 “이 사건 아파트 공용부분의 관리 하자로 인해 발생할 수 각종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이를 보수·관리할 1차적 권한 및 책임은 피고 C사에 있다고 봄이 타당하고, 결국 민법 제758조 제1항의 1차적인 배상책임을 지는 자는 C사”라며 “C사는 이 사건 화재에 관해 손해방지에 필요한 주의의무를 해태했음이 인정되므로 원고들의 대표회의에 대한 민법 제758조 제1항에 기한 손해배상청구는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이유 없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관리소장 H씨가 2017년 10월 20일경부터 이 사건 화재 당시까지 상당한 기간 이 사건 밸브를 개방하지 않고 잠근 상태로 둔 과실이 있고, 이로 인해 B씨 세대에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아 화재가 조기에 진압되지 못하고 피해가 확대됐으므로 화재 당시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못하도록 방치한 과실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피고 C사는 H씨의 사용자로서 원고들에게 민법 제756조 제1항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밝혔다.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소방시설법’)에 따르면 A아파트 같은 특정소방대상물의 관리소장 등 관계인은 소방시설인 스프링클러를 유지·관리하면서 스프링클러의 기능과 성능에 지장을 줄 수 있는 폐쇄(잠금 포함)·차단 등의 행위를 하면 안 된다. 그런데 재판부에 따르면 H씨는 2017년 10월경 대표회의 등이 대전중부소방으로부터 일부 세대의 누수로 인한 스프링클러 잠금 상태를 개방하도록 시정요구를 받았고, 아파트 소방안전관리자 등을 통해 이 사건 밸브를 개방해야 함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화재 발생일까지 3개월 동안 밸브를 잠근 상태로 방치했다. 

점검 등 위한 폐쇄·차단,
최소한의 필요 시간만 허용

C사는 이 사건 밸브를 잠근 상태로 둔 것이 누수가 발생한 스프링클러 배관을 보수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관련 규정의 입법취지 등에 비춰 “소방시설법 제9조 제3항 단서에 의해 허용되는 소방시설의 점검·정비를 위한 폐쇄·차단은 그 점검 등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 내지 기간 동안 이뤄지는 폐쇄·차단을 의미한다고 봐야 하고, 이 사건과 같이 소방시설의 점검·정비를 이유로 장기간 소방시설을 폐쇄·차단하는 경우까지 포함한다고 볼 수 없다”며 C사 주장을 일축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세대가 스프링클러 배관 누수에 대한 자체 선보수를 실시했어야 함에도 이를 방치했으며, 대표회의 지시 없이는 C사나 H씨가 스프링클러 배관에 대해 선제적으로 보수공사를 직접 시행할 수 없었고, 전용부분이던 스프링클러 배관을 공용부분으로 변경해 대표회의로 하여금 수리·관리하도록 아파트 관리규약의 개정절차를 진행했다는 사정 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특정소방대상물의 관계인인 관리소장 H씨로서는 이 사건 세대에 대해 스프링클러 배관의 보수공사를 촉구하면서 일정 기간까지 보수공사를 완료하지 않으면 이 사건 밸브를 개방할 수밖에 없음을 안내한 후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이 사건 밸브를 실제로 개방하는 등 스프링클러의 정비를 위한 잠금 상태를 최소한의 기간 동안만 유지했어야 한다”며 “그러나 B씨는 위와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3개월 동안이나 이 사건 밸브를 잠근 상태로 뒀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다만 이 사건 화재 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이 세대 내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점과 함께, 일부 세대의 스프링클러 배관 누수 공사를 해당 세대들이 이행하지 않고 있던 상황에서 H씨가 위 누수공사를 완료해야 스프링클러 배관을 개방할 수 있다는 판단하에 스프링클러 배관을 공용부분으로 변경하고, 이 부분에 대한 공사를 대표회의 의결을 거쳐 장기수선충당금으로 시행하려던 중이었고, 그 과정 중에 이 사건 화재가 발생한 것인 점 등에 비춰 C사의 책임을 30%로 제한했다.

이 판결은 양 측이 상소를 제기하지 않아 지난해 말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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