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부지법 판결

“인원 부족, 관리 하도급”
항변 받아들여지지 않아

[아파트관리신문=서지영 기자] 아파트 화재 발생 시 울린 주경종을 오작동으로 판단해 작동을 정지시킨 경비원들과 소속 경비업체, 아파트 관리업체에 법원이 입주민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물었다. 관리업체는 방재실 직원 인원이 부족하고 관리업무를 대부분 하도급한다며 주경종 등 미작동에 대해 관리업체 책임이 없고 모두 경비업체 책임이라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2민사부(재판장 김선일 부장판사)는 지난 2018년 세대 내 화재로 부상을 당해 입원 치료를 받고 가족을 잃은 서울시 A아파트 입주민 B씨와 그의 자녀 C씨가 이 아파트 관리업체 D사, 경비업체 E사, 경비원 F씨·G씨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D사, E사, F씨, G씨는 공동해 원고 B씨에게 5억5569만여원, 원고 C씨에게 2억2258만여원을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에어컨 제조업체 H사, 도어락 제조업체 I사에 대한 청구는 기각했으며, B씨 등의 과실비율을 따져 B씨와 C씨가 청구한 각 손해배상액 7억6478만여원, 3억319만여원을 일부 감액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B씨 가족이 세대 내에서 자고 있던 2018년 8월 10일 새벽 3시 26분경 거실에 있던 에어컨 실내기 하부 전선에서 발생한 화염이 에어컨 주변에 있던 커튼, 요가매트 등 주변 가연물로 옮겨 붙어 연소 확대되는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아파트 경비실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던 F씨와 G씨는 경비실에 설치된 화재수신반에서 B씨 세대의 화재발생 신호가 감지돼 주경종이 울리자, 이를 오작동으로 판단하고 주경종을 정지시켰다.

한편 위 화재수신반은 화재신호 감지 시 경비실의 주경종을 울림과 동시에 자동으로 화재신호가 감지된 해당 아파트에 화재경고 방송을 송출하고 복도에 설치된 지구경종을 울리는 기능이 있는데, 이 사건 화재 당시에는 지구경종 정지 스위치가 임의로 조작돼 위 기능이 차단된 상태였다.

B씨 자녀 C씨는 문틈으로 독한 연기가 들어오자 잠에서 깨 119에 신고를 한 후 발코니 측 창문을 넘어 밖으로 탈출, 경비원 F씨와 G씨에게 화재 발생 사실을 알린 뒤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려고 했으나 도어락 번호판이 눌러지지 않아 열지 못했다.

이후 신고를 받고 도착한 구조대가 현관문을 강제 개방해 B씨와 그의 배우자 J씨, 자녀 K씨를 구조해 이들을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K씨는 입원 치료 중 그해 8월 24일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숨졌고, J씨는 손목 및 손의 심재성 2도 화상, 폐와 후두 및 기관을 침범한 화상 등으로 입원 치료를 받다가 그해 12월 17일 폐렴, 간부전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망했다. 또 B씨는 폐와 후두 및 기관을 침범한 화상을 입고 사고일인 8월 10일부터 다음해인 2019년 11월 6일까지 입원치료 및 통원 치료 등을 받았으며 C씨도 화재 피해로 8월 10일부터 13일까지 입원 치료를 받았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피고 D사 소속의 관리소장 L씨는 아파트 소방시설을 적정하게 관리하지 않은 과실이 있고, 이로 인해 화재 신고·구조가 지연됨으로써 원고 B씨 가족에게 중대한 피해가 발생·확대되게 한 불법행위책임이 성립한다”며 “피고 D사는 사용자로서 민법 제756조 제1항에 따라 위 불법행위로 인해 원고들 가족에게 발생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관리소장 L씨는 아파트 소방시설 관계인으로서 이 사건 화재 당시 적발된 지구경종 스위치 임의 조작을 이유로 소방시설법 등에 따른 과태료 80만원 부과처분을 받았다.

또 재판부는 “D사 소속 방재실 직원 M씨가 이 사건 화재가 있기 전월인 2018년 7월 6차례에 걸쳐 화재수신반 관련 교육을 실시했고, 그중 하루는 경비업체 측에 화재수신반의 지구경종 정지 스위치를 조작하지 말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를 통해 관리소장 L씨와 방재실 직원 M씨 등 D사 소속 직원들은 경비원들이 빈번히 지구경종 정지 스위치를 조작하는 사실을 인식했거나 쉽게 인식할 수 있었던 상황임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D사는 아파트 관리업무의 현실적 한계를 내세우며 “D사 직원들로서는 소방시설안전관리 및 경비업무에 관한 용역계약을 체결한 업체들을 통해 소방시설을 관리하고 경비원들에게 소방교육을 함으로써 소방시설의 관리에 관한 의무를 다했다”는 취지로, “교육 내용을 무시한 경비업체 E사 측에 모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 D사 직원들은 경비원들이 소방교육대로 소방시설을 관리하고 있지 않는 것을 인식했거나 인식할 수 있었으므로, 형식적인 교육으로 소방시설 유지·관리에 관한 책임을 경비용역업체에 전가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소방시설이 적정히 관리되고 있는지 점검하거나 경비업체에 경비용역계약에 정한 책임을 추궁하는 등으로 소방시설의 유지·관리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조치를 했어야 함에도, 관리소장 L씨는 방재실 직원 M씨에게 경비원들을 교육시키라고 지시하고 그로부터 보고를 받은 외에는 아무런 조치를 한 바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재판부는 “방재실 근무 인원이 부족하다거나 아파트 관리업무는 대부분 하도급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등의 사유로는 피해를 입은 아파트 주민들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경비원 F씨, G씨가 주경종을 정지시키고 아무런 화재 대응도 하지 않은 불법행위책임이 있으므로 B씨 가족에게 발생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고, 이들이 소속된 E사는 사용자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망인들과 원고 B씨로서도 주거 내 비상상황 발생 시 대응 방법을 숙지해 화재 발생을 인식한 후에는 유독가스를 흡입하지 않도록 국민행동요령 등 알려진 지침에 따라 대응할 의무가 있는데 그러지 못한 과실이 있으므로, 망인들과 원고 B씨의 과실비율을 30%로 정하고 그에 대한 피고 D사, E사, F씨, G씨의 책임범위를 70%로 제한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재판부는 B씨 가족이 A아파트에 이사할 당시 자격이 없는 개인사업자를 통해 에어컨을 설치하면서 실내기와 실외기 전선이 꼬임접속 방식으로 연결됐는데, 이 경우 결선 부위의 발화 위험이 증가하는 점 등을 고려해, 에어컨 결함에 따른 H사의 책임을 묻는 B씨 등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울러 B씨 등은 “화재 당시 이 사건 도어락이 고온 발생 시 경보음을 내고 자동으로 잠금장치를 해제시키는 고온경보 안전시스템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현관문이 자동으로 개방되지 않아 화재 피해가 발생했거나 확대됐다”며 도어락 제조업체 I사의 책임도 물었지만 이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 배터리 교체 후 정상 작동이 확인됐고, 약 63℃ 이상의 온도에서 열림 동작이 확인된 사실 ▲화재 당시 구조 소방관이 현관문 강제 개방 시 내부로부터 나오는 열기를 느끼지 못했다고 한 사실 ▲화재현장보고서에는 외부로 통하는 창문이 닫혀 있는 상황에서 산소부족으로 한동안 무염(훈소) 화재가 지속돼 일산화탄소 발생량이 많았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기재된 사실 등에 비춰, “이 사건 화재 당시 이 사건 도어락이 잠김 상태였던 점, 피고 C씨가 외부에서 출입문을 열려다가 실패한 것으로 보이는 점만으로는 이 사건 도어락이 통상적으로 지녀야 할 품질이나 요구되는 성능 또는 효능을 갖추지 못해 하자가 있다고 추단할 만한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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