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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란 칼럼] 아파트 내 부당 갑질의 폐해, 이제는 끊어내야
승인 2020.11.18 09:33|(1317호)
법무법인 산하 김미란 변호사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참 많아졌다. 여럿이 모여 사는 그 공간에서 또 참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한다. 아파트 단지 곳곳을 쓸고 닦는 미화 용역 근로자, 입주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생활의 편리를 위한 각종 업무를 담당하는 경비 용역 근로자. 그리고 관리비 부과, 징수, 집행과 예치를 비롯해 시설 안전, 각종 회계·법률 등 공동주택 안팎의 모든 살림을 관장하는 관리사무소장. 입주민들의 쾌적하고 안락한 주거 환경을 위해 애쓰는 이들의 일터는 과연 어떨까.

입주민의 갑질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비원과 관리사무소장, 폭언에 시달리다 결국 형사고소까지 감행하게 된 관리사무소장의 사연 등, 안타깝게도 이런 보도들은 오래된 이야기도, 낯선 이야기도 아니다. 최근에는 입주민의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민원 제기로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한 관리사무소장에 대해 판결을 통해 산업재해가 인정되기도 했다(서울행정법원 2020. 9. 18. 선고 2019구합 62826 판결 참조).

관리사무소도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환경 정도는 돼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가 묵살되고, 부당 갑질, 악성 민원의 무덤으로 전락한 상황을 사실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해묵은 갑질의 악습은 공동주택관리 업무 종사자들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공동주택 관리 전문가가 아닌 함부로 부려도 되는 아랫사람, ‘하인’, ‘하수인’, 심지어 ‘종놈’ 발언까지 나올 정도니 근본적인 인식 개선이 절실하다.

공동주택 관리 현장이 아무리 암울하고 참담한 상황이라 해도 누군들 상상이나 했을까. 관리사무소 안에서 자행된 살인 사건이라니, 듣고도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고, 보고도 눈이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오전 10시가 넘어 누구나 한창 일하고 있을 그 시간, 300세대가 채 되지 않아 회계 감사 의무도 없는 아파트였지만 무슨 사연 때문인지 자청해 받고 있는 회계 감사가 한창이었다는 그 시간, 입주자대표회장이 무참하게 휘두른 칼날에 여성 관리사무소장은 목숨을 잃었다.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갑자기 다른 사람도 아닌 입주자대표회장이 관리사무소를 들이닥쳤을 때, 그 손에 들려 있는 것이 다름 아닌 흉기라는 사실을. 피할 곳도 없이 막다른 코너에 자리한 관리사무소장 자리에 앉아 무방비로 공격당했을 때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

이 참혹한 사건에 대해 자극적인 제목을 단 기사들이 쏟아졌다. ‘입주자대표, 운영 다툼 끝에 관리소장 살해’, ‘관리비 갈등이 부른 살인 사건’ 등. 그러나 이 사건 어디에도 ‘다툼’이나 ‘갈등’으로 불릴 만한 일은 없다. 비상식적이고 위법한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거부하는 것은 법을 준수하는 상식적인 행동이며 관리사무소장의 당연한 의무이니 말이다. 피해자를 범죄를 저지른 자와 동일 선상에 두고 ‘갈등’이나 ‘다툼’을 한 사람처럼 다룰 수는 없는 일이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관리비 통장의 인감을 입주자대표회장 단독 인감으로 바꾸고, 업무 추진비를 올려 달라는 부당한 요구가 계속됐다고 한다. 공동주택관리법 제64조 제5항에 따르면 관리사무소장은 업무 집행에 사용할 직인을 신고해야 한다. 이렇게 신고한 관리사무소장의 직인은 관리주체가 입주자대표회의가 지정하는 금융기관에 관리비 등을 예치해 관리할 때 해당 계좌에 사용하게 되는데, 관리사무소장의 직인 외에 입주자대표회장의 인감을 복수로 등록할 수 있다(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제23조 제7항). 즉, 관리비 계좌에 입주자대표회장의 인감을 관리사무소장의 인감과 함께 복수 등록할 수 있다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 사항인 것이다. 이와 달리 관리사무소장의 신고된 직인을 아예 빼고, 입주자대표회장의 직인만 단독으로 날인한 관리비 계좌 개설은 위법이라는 뜻이다. 입주자대표회장이 통장을 몇 번이나 분실했다면서 입주자대표회장의 직인만 날인된 계좌를 개설해 재발급 받은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지옥에 다녀온 것처럼 모골이 송연했다는 고인은 그저 배운 대로, 법대로 업무를 진행했을 뿐이다.   

업무추진비는 어떠한가. 관리규약에 규정돼 있는 회장의 업무추진비를 관리사무소장이 무슨 수로 임의로 올릴 수 있단 말인가. 관리규약 개정 절차를 거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안 될 일이다. 오히려 이런 위법한 요구를 수용했다가는 관리사무소장은 업무상 횡령·배임의 죄책을 지게 될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고, 입주민들의 재산을 지켜야 할 관리사무소장의 소명을 저버리는 일이 된다. 그러니 어찌 이런 무례하고 위법한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왜 그런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는지 거듭 사정을 설명했을 것이다.

변호사들도 소위 악성 의뢰인·진상 의뢰인을 겪는다. 이런 의뢰인들의 사건이 힘든 이유는 맡긴 업무 자체가 힘들어서가 아니라 비상식적인 태도와 돌출된 행동, 도저히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들, 아무리 설명해도 의뢰인에게 가 닿지 않는 것 같은 상황 등 때문이다. 사람을 참 피 말리듯 힘겹게 만든다. 회사에서 이런 의뢰인들을 사전에 가려 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미리 알아채기가 쉽지도 않다. 그러니 상황이 발생했을 때의 적절한 후속 처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악성의 진상 의뢰인이 변호사들을 속에서부터 곪게 놔둬서는 안된다. 사건 담당 변호사가 이런 문제를 혼자 떠안고 고민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팀장 변호사, 부대표 변호사, 대표 변호사 등 선배 변호사에게 진상을 알리고 함께 해결 방법을 모색하도록 지원하고, 직접 말하지 않아도 사건 관련 고충을 알 수 있도록 늘 지켜보면서 든든한 버팀목이 돼야 한다.

이 아파트 관리 현장은 어땠을까. 이 소장님은 어땠을까. 지극히 상식적인 관리사무소장의 설명이 몰상식한 요구를 해온 자를 납득시킬 수 없었을 때, 상식과 법을 아무리 설명해도 못 알아듣는 그 상대방이, 업무적으로 늘 만날 수밖에 없는 ‘갑’인 입주자대표회장일 때, 관리사무소장은 얼마나 좌절했겠는가. 이런 좌절과 고충을 회사에 털어놓았을까. 털어놓지 않았다면 어째서 회사에 기대어 지원받을 생각을 못했을까. 기댈 곳이 회사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소속 관리사무소장이 현장에서 겪는 고충에 회사가 가장 예민하게 반응해 주길 기대한다. 끔찍한 비극에 국민적 공분이 일어난 지금, 이 분노가 가시기 전에 이번에야말로 공동주택 관리 업무 종사자들에 대한 인식 개선과 부당 갑질의 폐해를 방지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이 이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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