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판결: 법원 “일방적 폭언이 사망에 영향”

“근로복지공단
산재 불인정 처분 취소”

[아파트관리신문=고경희 기자] 아파트 입주민의 잦은 민원에 시달리다 “힘들다” 호소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관리소장에 대해 법원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서울행정법원 제3부(재판장 유환우 부장판사)는 최근 관리소장 유가족 B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유가족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A씨는 2011년 5월부터 경남 양산시 소재 국민임대아파트에서 근무했다. A씨는 아파트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대응 및 입주민 민원처리를 총괄하는 업무를 수행했는데 시설물 민원처리 외에는 A씨가 담당했다.

이 아파트는 2007년부터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국민임대아파트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부녀회장과 통장 등 입주민 사이의 갈등이 발생했고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단지 내 가건물 철거, 노인정 난방비 공동부담, 동대표 선출 과정 등의 문제로 갈등이 지속됐다.

관리과장에 따르면 A씨는 관리비 체납 입주민의 집에 단수를 하거나 승강기 공사가 통장을 주체로 해 진행됐음에도 완공 후 하자를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부분에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입주민 C씨는 입주 이후 1년 8개월 간 수시로 관리사무소 방문 및 전화를 해 층간소음 등 민원을 제기하고 해결을 요구했다. A씨는 입주자들의 민원을 받기 위해 개인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줬는데, C씨는 지속적으로 민원 전화를 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LH에도 직접 층간소음 민원을 제기, LH는 최상층 끝집으로 이사하도록 해주겠다고 제안했으나 C씨는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LH는 민원 해결을 위해 A씨에게 층간소음관리위원회 구성을 지시했다.

그해 7월 A씨는 관리업체 대표에게 전화해 층간소음 민원이 있다고 보고하면서 통장과 민원인을 만나 이야기한 후 다시 연락하겠다고 전했고, C씨와 1시간 가량 대화를 나눴다.

CCTV에는 대화 장면이 촬영돼 있었는데, 대화를 나누는 동안 C씨는 LH 직원으로부터 안내를 잘못 받은 부분에 대해 A씨를 질책하며 삿대질을 하고 윽박질렀고 A씨는 머리를 긁으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날 A씨는 소속 관리업체 대표에게 “사장님 죄송합니다. 몸이 힘들어서 내일부터 출근하기 힘듭니다. 소장 대체 부탁합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업체 대표로부터 “내일부터 당장 되겠습니까. 내일 금요일이니까 연차든 휴가든 며칠 쉬고 이야기 하시죠”라는 답장을 받은 후 1시간 일찍 퇴근, 그 다음날에는 출근하지 않았다.

그 주 토요일 새벽 A씨는 산책하고 오겠다며 외출했고, 자택 부근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A씨의 모습이 행인에게 발견됐다.

한편, A씨는 2017년 7월 정신건강의학과에 내원해 진료를 받았고 ‘혼합형 불안 및 우울장애, 비기질성 불면증’ 진단을 받은 바 있다. 상담기록에 따르면 A씨는 부동산 사기 추정으로 인한 불면, 불안을 호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A씨의 배우자인 B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으나, 공단은 A씨 개인의 경제적 문제, 정신적 취약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판단하고 부지급 결정 처분을 했다. B씨는 이에 불복해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에 재심사 청구를 했으나 이마저도 기각됐다.

이에 B씨는 “A씨는 입주민들 간의 갈등 중재, 민원처리 문제로 장기간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아왔고 사망 직전 악성민원인으로부터 층간소음 민원처리와 관련해 부당하고 모욕적인 항의를 받기도 했다”며 “이러한 스트레스로 인해 불안 및 우울장애가 유발·악화돼 자살에 이르게 됐다”면서 근로복지공단의 부지급 처분 취소를 구했다.

공단의 판단과 달리 재판부는 A씨의 사망과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C씨가 제기한 민원이 주로 층간소음 문제여서 A씨로서는 쉽게 해결하기 어려움에도 수시로 민원을 넣어 2주 이상 해결을 요구했다. 그밖에도 주차장 CCTV 사각지대로 인해 자신의 차량이 훼손되면 누가 책임질 것이냐고 항의하는 등 합리적인 민원 제기로 보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며 “C씨가 층간소음 문제로 LH에 직접 민원을 제기하고 LH에서도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주택 이전을 제안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는데, LH의 감독과 지시를 받는 A씨의 입장에서 민원의 존재는 상당한 부담이 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C씨가 근무시간 외에도 휴대전화번호로 연락을 해 민원을 제기한 점과 1시간 동안 공개된 장소에서 A씨에게 일방적으로 질책과 폭언을 한 점, C씨가 A씨보다 10살 어린 점, LH의 업무처리 문제를 A씨에게 항의한 점 등이 A씨에게 극심한 스트레스와 자괴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으로 판단했다.

B씨의 진술에 의하면 C씨로부터 폭언을 들은 A씨는 사직 의사를 표시하고 퇴근한 후 다음날까지 식사를 거의 하지 못했고 잠도 자지 못했으며, 계속 불안감을 호소했다. 이에 비춰 재판부는 “당시 A씨는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돼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결국 C씨의 민원 제기가 A씨의 사망 전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만약 정신과 상담기록에 있던 부동산 사기 문제로 인해 경제적 문제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불안 및 우울장애의 특징적인 증상에 비춰 A씨가 실제 사실보다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과도하게 걱정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또 상담기록에 포함된 ‘직장을 다니고 있는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자려고 누워 있으면 주위 사람들이 나를 이용해 먹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혹시 내 이런 문제로 인해 직장 생활을 못해서 잘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는 내용에 대해 “불안 및 우울 증상으로 인해 업무 수행에 어려움을 겪었고 직장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며 불안이 가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재판부는 ‘주위 사람들이 나를 이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 부분이 입주민 민원처리를 담당하는 A씨의 업무와 관련성이 있다고 봤으며, C씨와 대화한 당일 일찍 퇴근한 A씨가 B씨에게 ‘모든 사람이 나를 모함하는 것 같아 불안하다’고 말한 점도 판단의 근거로 들었다.

아울러 “A씨가 과거 공황장애 치료를 받은 개인적 소인이 있지만 2006년부터 2017년 6월 사이에는 정신과 치료를 받은 기록이 확인되지 않았는데, 2017년 7월 2차례 내원해 치료를 받았음에도 급격히 불안 및 우울장애 증상이 심화돼 사망에 이르렀다”며 “그 무렵 상당히 증가한 업무상 스트레스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개인적 소인의 발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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