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의 회장이 ‘관리운영 갈등’으로 소장 살해···법원, 도주 우려에 구속 영장 발부

피해 관리소장 C씨가 근무했던 아파트 단지에 추모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인천=고경희 기자>

주택관리사협회 침통···"비탄한 마음 금할 수 없어"
동료소장-주택관리사들 근무 단지서 '촛불 추모식'

[아파트관리신문=고경희 기자] 매년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에 대한 입주민의 폭언·폭행, 부당지시 등 갑질 행위가 화두에 올랐다. 그런데 최근 관리 불신 및 관리 분쟁으로 입주자대표회장이 6년간 아파트를 관리해 온 관리소장을 살해하는 전례 없는 사건이 벌어져 관리 현장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인천 서부경찰서는 인천 서구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 B씨를 관리소장 C씨 살해 혐의로 30일 구속했다.

B씨는 지난 28일 오전 10시경 관리사무소에 혼자 있던 관리소장 C씨의 목을 흉기로 여러 차례 찌른 뒤 달아났다가 약 1시간 30분 만에 경찰서에 자수했다. 흉기에 찔려 쓰러진 소장 C씨는 40여분이 지나서야 우편물을 전달하러 온 관리직원에게 발견돼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사망했다.

인천지법은 30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할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앞서 B씨는 경찰 조사에서 “도장을 찍었다가 잘못되면 돈을 갚아줘야 하는 등 책임을 지는 것이 두려웠고 아파트 관리 운영 방식이 맞지 않았으며, C씨가 나를 무시해 화가 났다”면서 범행 동기를 밝혔다.

고인 C씨는 동료 소장들과의 단체 대화방에서 대표회장 B씨의 괴롭힘 사례를 전달했다.

대표회장의 계속된 통장 재발급
동료소장들 “피해 소장, 괴롭힘에 힘들어해”

평소 C씨와 가깝게 지내던 동료소장들은 지난 10월부터 C씨가 대표회장 B씨의 관리 불신으로 인한 괴롭힘에 힘들어 했다고 입을 모았다. C씨와 동료소장들의 단체 메신저 대화에도 C씨의 고충이 그대로 드러났다.

지난 13일 메신저 대화에서 C씨는 “우리 회장이 나를 못 믿겠으니 통장 인감을 다시 한 번 바꾸자고 해 아픈 다리로 은행에 갔다 왔다. 은행에서 5일부터의 입출금 내역을 다시 뗐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튿날에도 “회장이 도장을 잃어버려 통장을 또 바꿨다. 그러면서 출금 시 본인한테 문자오게 하랬다. 은행에서도 이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토로했으며, 26일에는 회장의 통장 분실신고로 인한 고통 호소에 이어 “회장이 나(C씨)를 믿게 집으로 자기를 초대하란다. 집을 가봐야 나를 믿겠다고 한다”면서 황당함을 전하기도 했다.

동료소장 및 A아파트 관리직원에 따르면 관리비 통장 인감을 소장, 대표회장 등 복수로 찍어야 함에도 최근 B씨가 C씨에게 대표회장 단독 인감으로 변경하라고 지시하고 명확한 이유 없이 ‘통장 비밀번호를 변경해야 한다’, ‘관리비 통장 및 인감을 분실했으니 재발급을 받아야 한다’면서 여러 차례 은행에 가 재발급을 받으라고 요구했다. 또 대표회의 활동비를 올려달라고 말했음에도 C씨가 ‘관리규약 개정 없이 어렵다’며 거절하자 괴롭힘이 더해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사실은 C씨와 동료소장의 통화 녹취록에서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녹취록에서 C씨는 “대표회장이 사업자등록증 사본과 회의록을 달라고 해 이유를 물었더니 대뜸 화를 내기에 어쩔 수 없이 줬다. 이후 5일 회장이 ‘인감도장을 잃어버려 통장을 재발급 받는데 소장이 힘들까봐 내가 바꿔왔다’고 말해서 확인해보니 관리비 통장을 싹 다 재발급 받아 왔다”며 “재발급한 통장의 인감은 하나였고, ‘이러면 회장님이 의심 받는다’고 달래 복수도장으로 다시 재발급했다”고 사연을 전달했다.

녹취록에 의하면 C씨는 통신사 방침으로 아파트 통신비 자동이체를 신청했다. 자동이체 내역이 B씨의 휴대전화로 전송되자 B씨가 C씨의 횡령을 의심해 인감도장을 새로 만들었고 또 다시 통장을 바꾸게 됐다. 이에 더해 통장 비밀번호를 알려달라는 요구에 C씨가 불응하자 B씨는 “나를 의심하냐”며 분노를 표출했고, 이에 C씨는 다른 단지에서 통장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고자 동료소장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동료와의 통화에서 C씨는 타 단지의 대표회의 운영비 사례도 물었다.

B씨가 지속적으로 관리비 사용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자 C씨는 이를 부인하면서 결국 직접 감사기관에 외부회계감사를 의뢰, 28일부터 29일까지 감사가 진행됐다.

이런 고충에도 C씨는 친한 소장들에게 하소연만 했을 뿐 주택관리사협회나 소속 관리업체에 피해사실을 전하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혼자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경비원 등 함께 일한 직원들도 C씨의 고충을 구체적으로 알진 못했다.

관리업체 관계자는 “대표회장이 괴롭힌다는 사실을 다른 소장들로부터 얼핏 전달받은 것 외에 본인에게 직접 들은 적 없다”고 말했으며, 경비원은 회장 B씨가 그런 일을 벌일 줄은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29일 고인 C씨가 근무한 아파트 단지에서 주택관리사 등 관리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촛불 추모식이 진행됐다. <인천=고경희 기자>

단지 분향소에 주택관리사들 추모 물결
'재발 방지' 동참 호소···'청와대 청원'도

고인이 숨진 지 하루가 지난 29일 A아파트 단지 내에 분향소가 마련돼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 인천시회가 마련한 분향소는 일부 입주민의 반대로 난항을 겪기도 했으나, 또 다른 입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관리동 옆에 설치될 수 있었다.

이날 저녁 6시 반경 열린 추모식에서 C씨의 동기인 ‘주택관리사 13회 모임’ 동료소장들과 인천시회 등 관리 관계자들은 촛불을 들고 C씨를 추모했으며, 추모발언을 통해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한 국민적 관심을 호소했다. 동료소장들의 추모 발언이 이어지자 결국 추모식 현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이 자리에서 C씨와 친하게 지냈던 동료소장들은 “며칠 전에 함께 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이 영정사진이 됐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또한 “단지를 둘러보면 알겠지만 조경이 굉장히 잘 관리돼 있고 노후 단지임에도 깨끗하게 정리돼 있다. 그 작은 몸으로 아파트를 이렇게나 열정을 쏟아 관리해 왔다”며 “그런데 열심히 관리한 결과가 죽음이라는 것이 황망하다”고 말했다.

동료들은 10년 전 주택관리사 자격을 취득한 C씨가 평소 작은 체구와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더욱 관리에 힘썼다고 전했다. 실제로 C씨가 근무한 A아파트는 300세대에 가깝지만 관리사무소 근무자는 C씨, 관리직원 1명, 경비원 2명, 미화원 2명 총 6명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관리직원은 주로 밖에서 단지를 돌며 관리업무를 하고 있어 사무실을 비우는 시간이 많았고, 경리직원이 없던 탓에 회계업무도 C씨의 몫이었다. 또 관리소장의 3개월 단기계약이 성행해 고용문제가 대두되고 있음에도, C씨는 A아파트에서 6년째 근무하고 있었으며 위탁관리업체의 재계약을 성사시켜 관계자들의 인정을 받아 왔다.

추모식 참석자들은 “C씨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주택관리사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부당함에 지지 않고 해야 할 일을 다 할 수 있도록, 그리고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분들이 이번 사건을 잊지 말고 처우개선에 동참해 달라”고 강조했다.

또 추모식에 참석한 주관협 인천시회 강기웅 차기회장 당선인은 “우리가 폭언, 폭행, 부당지시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경우는 있어도 주택관리사 30년 역사에서 이런 사건은 없었다. 이렇게 백주대낮에 업무공간에서 무참하게 살해까지 당했다”고 분개하며 “여성 소장들이 받았을 정신적 충격이 우려된다. 오늘의 촛불이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정치권을 움직여 비극적인 사건이 다시 발생하지 않길 바란다”고 전했다.

아울러 주관협 황장전 회장은 성명서를 통해 “이 사건을 접하고 끓어오르는 분노와 비탄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갑질 철폐를 외치기 시작한지 3년여가 지나가고 있음에도 정부나 각계의 미온적인 태도로 인해 열악한 주택관리현장이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벌어진 사건으로 전국의 6만여 주택관리사들이 분개하고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면서 주택관리사에 대한 정부의 미흡한 보호정책을 규탄했다.

한편, 주관협은 협회 홈페이지에 사이버 분향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협회 회원들은 동료의 안타까운 죽음에 추모글을 올려 명복을 빌고, 관리소장의 처우개선을 위해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참했다.

아파트 내에 설치된 분향소 <인천=고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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