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산하 김미란 변호사

법률 자문을 맡고 있는 위탁관리회사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평소에도 안부를 묻곤 하던 임원의 다급한 목소리로 짐작하건대, 꽤 급한 일인 것 같았다. 최근 자치관리에서 위탁관리로 전환하게 된 아파트의 관리를 맡게 됐는데, 전체 직원들을 고용 승계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일부 직원이 위탁관리로 전환되는 것에 반대하면서 기존 근로계약의 만료 예고 통지 수령도, 새로이 관리를 맡게 된 회사와의 근로계약 체결도 모두 거부하고 있다는 사연이었다. 자칫 부당해고 분쟁으로 비화될 조짐이 보이니 여간 공교로운 게 아닌 모양이었다.

관리 방법의 결정과 변경은 공동주택관리법령에 상세한 절차가 규정돼 있다. 입주자대표회의의 의결 또는 전체 입주자 등의 10분의 1 이상이 제안하고, 전체 입주자 등의 과반수가 찬성하면 된다(공동주택관리법 제5조, 동법 시행령 제3조). 관리 방법을 변경하는 과정에 직원들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내용은 없다. 그런데 어째서 관리 방법의 변경을 둘러싸고 직원들의 부당해고 분쟁이 불거지는 것일까? 아파트 관리 방식을 자치관리에서 위탁관리로 변경하는 과정이라 하더라도 근로자의 의사에 반해 고용 관계를 종료하는 상황이 초래된다면 정리해고가 됐든, 통상해고가 됐든 근로기준법에서 정하고 있는 해고의 요건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관리 방법을 변경하면서 경비원들을 해고한 것이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봐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사건의 1심 판결이 항소심에서 뒤집어졌다. 무엇이 법원의 판단을 달리하게 된 결정적 이유였을까?

해당 사건의 아파트는 주차공간이 협소해 경비원들은 통행에 장애가 되는 차량을 직접 운전해 이동시키는 방식으로 주차관리 업무를 수행했다. 경비원들은 이 업무 때문에 휴게 시간을 보장 받지 못했다면서 야근 근로 수당을 포함한 체불 임금을 지급해 달라는 진정도 하고, 소송도 제기했다. 이렇게 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위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경비 업무를 기존 자치관리에서 위탁관리방식으로 변경하기로 의결한 것이다.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어떤 경위로 관리 방법을 변경하게 된 것인지 그 속내야 알 수 없지만 근로자들과 법적 분쟁에 휘말리게 되면서 분쟁의 당사자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지는 않았으리라 감히 짐작해 본다. 어찌 됐건 위탁관리로 전환하게 되면 입주자대표회의는 ‘사용자 지위’에서 벗어나게 되니 인사·노무의 복잡한 관계에서 놓여나는 쉬운 방법이 아닐 수 없으니 말이다.

입주자대표회의는 관리 방법 변경을 이유로 경비원 근로자들에게 해고 통지를 했고, 새로이 관리를 맡게 된 위탁관리회사가 이들과 고용계약을 체결한 후 경비용역을 제공하게 됐다. 그러나 경비반장 A만은 회사와의 고용계약을 거부하며 해고의 효력을 다투었고, 입주자대표회의는 A에게 재차 경영상의 이유로 해고한다고 통지했다(이하 ‘본건 해고’라 약칭). A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구제신청을 해 기각됐으나, 중앙노동위원회 재심에서는 인용 판정을 받았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중앙노동위원회위원장을 상대로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했고, 1심은 부당해고로 판단했었다(서울행정법원 2019. 9. 26. 선고 2018구합 7747판결). 패소한 입주자대표회의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고, 최근 선고된 항소심 판결은 1심과 달리 본건 해고는 적법하다면서 입주자대표회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서울고등법원 2020. 8. 13. 선고 2019누 61610 판결).

관리방식의 변경 과정에서 근로자의 의사에 반해 고용 관계가 종료되는 상황이 생긴다면 이는 결국 해고의 문제다. 정리해고라면 근로기준법 제24조에 정한 ‘긴박한 경영상 필요’,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의 기준을 정해 대상자를 선정’하는 등의 요건을 갖춰야 한다. 법원의 판단은 바로 이 요건 가운데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었는지 여부에서 갈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심은 입주자대표회의 성격이나 업무의 내용, 아파트 관리의 특성, 위탁관리방식이 노무관리나 업무 효율이 좋다는 정도만으로는 긴급한 경영상 필요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반면 2심은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에 따른 경비 업무 관리 운영상의 어려움, 입주자대표회의의 전문성 부족과 관리능력 결여, 최저임금 인상과 퇴직금 부담 증가 등 비용상 문제를 이유로 관리 방식을 위탁관리로 변경함에 따라 시행된 본건 해고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다고 봤다. 또한 입주자대표회의가 위탁관리업체 선정 시 기존 근무자 고용에는 연령 제한을 받지 않도록 했고, 이들의 전원 고용 보장을 조건으로 제시해 업체가 수용한 점, 위 회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잔존 직원을 위해 근로계약 체결 시한 유예를 요청한 점 등이 입주자대표회의의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으로 인정됐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위탁관리 방식으로 관리 방식을 변경하면서 경비원 전원을 해고하고, 이들 전부의 고용 보장을 조건으로 했다는 점 역시 해고 기준에 아무런 차별이 없어 해고의 기준 또한 합리적이고 공정했다고 판단됐음은 물론이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이렇게 결론이 달라서야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는 분들도 계시리라. 그러나 법원의 결론이 달라졌다 하더라도, 그 판단의 전제가 되는 기본 법리만은 그대로. 특히 관리 방식의 변경 그 자체가 사업 폐지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 따라서 정리해고의 요건은 갖춰야 한다는 점은 1, 2심 법원 모두 같은 판단을 하고 있다. 그저 사실관계 중 어떤 면이 더 드러나고 부각되는지에 따라 똑같은 법리를 적용하고도 다른 결론이 도출됐을 뿐이다.

그러니 이 사건 1심 판결의 내용만 믿고 관리방식의 변경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모든 해고가 부당해고라고 단정할 수도, 2심 판결의 논리로만 모든 해고가 적법하다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각 사안마다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살펴 해고의 적법 여부를 판단할 일이다.

자문을 요청했던 임원의 고민을 덜어주는 검토의견을 줬다. 보내온 관련 자료들을 엄밀하게 살펴보니, 근로계약 체결을 거부하고 있는 해당 근로자의 주장은 여러 면에서 온당치 못했다. 기간제 근로자로서 2년이 채 되기 전에 근로관계가 종료됐고 근로계약의 갱신기대권도 인정되기 어려웠다. 기다리던 답을 들은 임원의 목소리가 한결 가볍다. 덩달아 잠시 들떴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당부 말씀을 덧붙였다. 이 사안의 경우가 그렇다는 것이고, 관리 방법 변경 과정에서의 해고 문제가 늘 적법한 해고라는 뜻은 아니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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