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결정

대법원

[아파트관리신문=서지영 기자] 아파트 관리직원들에게 임차인 회의 내용을 몰래 녹음하도록 지시한 관리소장에 대해 징역형의 집행유예와 자격정지를 선고한 1심을 유지한 원심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서울 마포구 A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재직했던 B씨는 통신비밀보호법위반 혐의로 기소돼 서울서부지방법원 제11형사부(재판장 조병구 판사)로부터 “피고인 B씨를 징역 6월 및 자격정지 6월에 처하며, 다만 이 판결 확정일부터 1년간 위 징역형의 집행을 유예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이에 B씨는 항고를 제기했지만 2심에서 기각됐고, 상고 또한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대법원 제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형사소송법 제383조 제4호에 의하면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가 선고된 사건에 한해 원심 판결에 중대한 사실의 오인이 있어 판결에 영향을 미쳤음을 이유로 상고할 수 있다”고 설명한 뒤, “따라서 피고인에 대해 그보다 가벼운 형이 선고된 이 사건에서, 심리미진, 사실오인, 공모에 관한 법리오해를 내세우며 실질적으로 원심의 증거 선택 및 증명력에 관한 판단 내지 이에 기초한 사실인정을 탓하거나 원심이 인정한 사실과 다른 사실관계를 전제로 법리오해를 지적하는 취지의 주장은 모두 적법한 상고이유가 되지 못한다”며 상고 기각 이유를 밝혔다.

1심 재판부에 따르면 B씨는 누구든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해서는 안됨에도, A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재직 중이던 2017년 3월경 아파트 관리실에서 직원들에게 아파트 내 문고에서 개최되는 임차인 회의장에 미리 녹음기를 설치하고 이를 녹음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직원들은 문고 천장 틈새에 녹음기를 설치해 임차인 6~7명이 참석한 회의에서 이뤄지는 대화를 녹음했다. 재판부는 “이로써 피고인은 관리실 직원들과 공모해 2017년 3월 31일, 4월 3일, 4월 10일, 4월 14일, 4월 20일 총 5회에 걸쳐 임차인 회의에서 이뤄지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했다”고 범죄사실을 밝혔다.

B씨와 변호인은 “위 일시에 임차인 회의 내용이 녹음된 것은 사실이나 이는 분양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인 C씨의 지시에 따른 것일 뿐, 피고인이 관리실 직원들에게 녹음을 지시하거나 공모한 사실은 없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B씨와 C씨의 공모 여부와 관계 없이 B씨의 혐의는 인정된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B씨의 지시에 따라 임차인 회의 내용을 녹음하기 위해 녹음기를 설치했다’는 관리직원들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피고인이 관리실 직원들에게 임차인 회의 내용을 녹음하도록 지시함으로써 이 사건 범행에 본질적으로 기여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B씨의 불법 녹음 제보 경위도 유죄의 사정과 부합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 B씨는 대표회장 C씨와 재직 기간이 장기간 일치하고, 막역한 사이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뒤, “피고인이 증인 D씨에게 임차인 회의에 대한 불법 녹음을 제보하게 된 경위 및 시기, 동기 등에 석연치 않은 면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D씨는 법정진술에서 “B씨는 ‘2017년 10월 경 C씨의 지시로 임차인 회의 내용이 불법 녹음됐다’고 제보했고, B씨가 관리소장 직위에서 해고되는 당시에 C씨와 대립이 있었는데, C씨가 갑자기 9월 초에 B씨를 해고시켰으며, 해고를 당한 후 억울해하던 B씨가 C씨의 문제점 및 고충을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이에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신이 불법녹음을 지시하고 그 과정에 개입했더라면 D씨에게 불법녹음 사실을 고지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고 주장하나 제반 사정을 볼 때 피고인은 C씨에 대한 반감을 갖고, 선제적으로 공익 제보 형식을 취해 임차인 측에 불법녹음 사실을 알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은 책임을 면할 수 있으리라고 봤을 여지도 없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판부는 “피고인은 임차인 회의에 대한 불법녹음이 오로지 C씨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나 D씨에게 불법녹음에 대해 제보한 경위 및 그 시기, 관리실 직원들의 각 진술 내용, 피고인의 지위 및 경력 등에 비춰 볼 때, 피고인이 위 불법녹음에 직접적으로 가담했음은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며 “한편, 피고인의 주장처럼 임차인 회의에 대한 불법녹음에 C씨의 지시나 공모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 실행 단계에서 주도적으로 관리실 직원들에게 구체적 녹음을 지시한 것으로 보이는 피고인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한 B씨는 “임차인 회의 내용이 C씨의 비리에 관련된 것이었으므로, 본인이 위 회의를 녹음할 어떠한 동기나 이유도 없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 또한 배척했다.

재판부는 “임차인 회의 내용이 C씨의 비리에만 집중됐다고 보이지도 않고, 설령 위 회의에서 C씨의 비리가 중요 의제로 다뤄졌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은 문제에 있어서 피고인도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피고인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피고인이 C씨와 임차인 회의를 녹음할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었을 가능성이 충분하므로 피고인에게 불법녹음의 동기가 없다거나 제보자라는 이유로 범행에 가담했을리 없다는 취지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명시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B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6월을 선고하며 양형이유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관리소 직원들에게 지시해 임차인들의 공개되지 않은 대화를 녹음했다는 점에서 그 죄질이 좋지 않고, 제3자 간의 대화를 도청하는 행위는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어서 그 죄책도 가볍지 않은 점 ▲그럼에도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을 내세우며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관리소 직원이었던 E씨에 대해서는 협박조로 불이익을 언급하면서 수사기관에서의 진술 번복을 종용하기도 한 점 ▲이 사건 처벌조항이 국가기관 등에 의한 ‘우편물의 검열 또는 전기통신의 감청’과 사인에 의한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 녹음 또는 청취’를 행위 태양이나 죄책 경중의 구별 없이 동일하게 1년 이상이라는 징역형의 하한과 자격정지의 필요적 병과로 정해 규율하고 있어 책임원칙 및 비례원칙에 입각해 볼 때 양형상 고려할 측면도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B씨는 항고를 제기했지만 2심 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 제1형사부(재판장 정준영 판사)는 “원심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사실오인이나 법리오해의 잘못이 없으며, 원심의 형이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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