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결정: 서울중앙지법·광주지법 ‘엇갈린 판단’

위임계약 시
해지사유 등 약정했다면
마음대로 계약 해지 ‘불가’

[아파트관리신문=서지영 기자]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위탁관리업체 간 맺는 위·수탁관리계약에 대해 법원은 기본적으로 “민법상의 위임계약은 본질상 각 당사자가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위임계약은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 대해 사무의 처리를 위탁하고 상대방이 이를 승낙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기는 것으로, 위·수탁관리계약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위임계약에 대해 민법 제689조 제1항은 각 당사자가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같은 조 제2항은 당사자 일방이 부득이한 사유없이 상대방의 불리한 시기에 계약을 해지한 때에는 그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고 있다.

최근 대표회의가 낙찰자로 선정된 관리업체에 한 위·수탁 관리계약 해지와 관련해 위 민법 규정의 적용 여부가 갈리는 법원 결정이 나와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법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1민사부(재판장 한경환 판사)는 주택관리업체 A사가 서울 종로구 B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제기한 입찰절차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사건에서 최근 A사의 신청을 기각하는 결정을 내렸다.

A사는 지난 2월 B아파트 주택관리업자 선정을 위한 입찰에서 낙찰자로 선정돼 3월 27일 B아파트 대표회의와 아파트에 관한 도급관리계약(이하 ‘이 사건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대표회의는 해당 계약이 내부 결의 없이 체결돼 무효라 주장하며 4월 16일 A사에 계약 무효(해지)를 통보했고, 이후 새로이 입찰을 진행해 6월 15일 C사를 주택관리업자로 선정키로 의결했다.

이에 대해 A사는 “이 사건 계약은 여전히 유효하므로 A사는 여전히 B아파트의 주택관리업자”라며 “B아파트 관리업자 지위 확인 본안 소송 판결 확정 시까지 대표회의가 A사에 대해 한 관리업체 선정 계약 해지의 효력을 정지하고, 주택관리업자로 C사를 정한 결의의 효력을 정지해야 하며, 대표회의는 위 본안 사건 판결 선고 시까지 C사와 용역계약을 체결하거나 계약을 이행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신청취지와 같은 가처분을 명할 피보전권리와 보전의 필요성이 충분히 소명되지 않는다”며 A사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그 이유로 먼저 국토교통부 고시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에 따라 입찰공고 전 입찰의 종류 및 방법 등 입찰 관련 중요사항에 대해 입주자대표회의의 의결을 거쳐야 하는데, B아파트 대표회의는 그러한 의결을 거쳤다는 점이 충분히 소명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이 사건 계약에 대해 민법 제689조 제1항이 적용돼 해지 효력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설령 위와 같이 대표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은 것이 대표회의의 내부 사정일 뿐이므로 제3자인 A사와의 관계에서는 이 사건 계약을 무효로 할 사유라고 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계약은 민법상 위임계약으로, 대표회의는 민법 제689조 제1항에 따라 특별한 이유 없이도 언제든지 이 사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기에 대표회의가 이미 새로운 입찰을 진행해 6월 15일 아파트 주택관리업자로 C사를 선정한 점을 더해 보면, A사의 주장과 같이 이 사건 계약이 대표회의의 4월 16일자 무효 또는 해지 통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민법 제689조 임의규정에 불과
약정으로 달리 정할 수 있어

위 중앙지법 결정과 달리 아파트 위·수탁관리계약 해지에 민법 제689조의 위임계약 해지 가능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법원 결정도 있었다. 해당 아파트 위·수탁관리계약에서 해지사유 등을 달리 정했던 것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광주지법

광주지방법원 제21민사부(재판장 심재현 판사)는 최근 주택관리업체 D사가 광주시 동구 E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제기한 위탁관리계약해지 효력정지 등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 “E아파트 대표회의가 6월 9일 D사에 대해 한 공동주택관리업무 위·수탁관리계약 해지 의사표시는 본안판결 확정 시까지 그 효력을 정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본안판결 확정 시까지 대표회의의 주택관리업자선정 절차 진행을 정지하고, 이를 위반해 주택관리업자 선정 절차를 진행하는 경우 그 위반행위 1일당 500만원을 D사에 지급하게 해달라는 신청은 타사가 이미 새 주택관리업자로 선정돼 있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D사는 4월 20일 E아파트 대표회의와 위·수탁관리계약을 체결하면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사유로 ▲을이 재무상태, 보유한 주택관리사, 기술인력 및 장비 등의 서류를 거짓으로 작성해 제출한 때 ▲을이 금품제공 등 부정한 행위로 계약을 체결한 때 등을 따로 정했다.

이에 재판부는 먼저 “이 사건 계약이 긴급 입주자대표회의의 의결을 거치지 않고 체결됐고, 감사의 계약참여권을 침해하는 등 사업자 선정지침이 정한 절차를 위반해 체결됐다는 대표회의의 해지사유는 위 계약에서 정한 해지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판부는 “이 사건 계약은 민법 제689조 제1항, 제2항에 규정된 바와 다른 내용으로 해지사유 및 절차, 손해배상책임을 정하고 있고, 계약기간을 2020년 5월 1일부터 2023년 4월 30일(3년간)까지로 정하고 있음을 인정할 수 있고, 위 민법 규정이 이러한 약정과는 별개 독립적으로 적용된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을 인정할 자료가 없으므로, 이 사건 계약에서 정한 해지사유 및 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라며 이 사건 계약에서는 민법 제689조의 해지권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이 사건 계약의 해지사유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대표회의의 계약 해지통보는 효력이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민법 제689조 제1항, 제2항에 대해 “이는 임의규정에 불과하므로 당사자의 약정에 의해 위 규정의 적용을 배제하거나 내용을 달리 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당사자가 위임계약의 해지사유 및 절차, 손해배상책임 등에 관해 위 민법 규정과 다른 내용으로 약정을 체결한 경우, 이러한 약정은 당사자에게 효력을 미치면서 당사자 간의 법률관계를 명확히 함과 동시에 거래의 안전과 이에 대한 각자의 신뢰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라고 볼 수 있으므로, 이를 단순히 주의적인 성격의 것이라고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재판부는 “당사자가 위임계약을 체결하면서 위 민법 규정과 다른 내용으로 해지사유 등을 정했다면, 위 민법 규정이 이러한 약정과는 별개 독립적으로 적용된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약정에서 정한 해지사유 및 절차에 따라 계약을 해지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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