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판결

근태관리 및 업무평정 등
관리업체에 받아···
실질적 사용자 지위 인정 안 돼

[아파트관리신문=서지영 기자] 위탁관리를 하고 있는 아파트의 근로자들에 대한 사용자가 관리업체와 입주자대표회의 중 어느 쪽인가에 대한 논란은 공동주택 관리업계에서 오래 지속돼 온 문제다. 원칙적으로 근로자들이 소속된 위탁관리업체가 사용자로서 임금 지급 및 임면 등 책임을 지고 있으나, 입주자대표회의가 임금 결정 등 많은 부분에 관여할 경우 실질적인 사용자로 인식돼, 근로자가 임금 지급이나 해고 등 책임을 입주자대표회의에 물으며 소송 등을 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관리업자의 대리인인 관리소장이 근로자들과 계약을 맺은 경우, 입주자대표회의를 근로자의 실질적 사용자로 보기 위해서는 해당 근로계약이 얼마나 형식적이었는지와 입주자대표회의가 구체적인 업무 지휘권을 행했는지 여부 등을 엄밀하게 따지고 있어 주의할 필요가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판사 박연주)은 지난해 서울 동작구 A아파트에서 전기반장으로 근무했던 B씨가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 조정청구 소송에서 최근 B씨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B씨는 대표회의에 “A아파트에서 일하며 미지급받은 전기검침비 및 연차수당에 대한 지연이자, 초과근무수당, 해고예고수당, 미지급 퇴직금, 특별수리이익 등 합계 4562만여원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관리업체 C사와 위·수탁관리계약을 체결했다가 이를 해지하고, 지난해 3월 26일경 D사와 위·수탁관리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기존에 C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했던 B씨는 그해 4월 30일 D사와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보통 관리업체가 바뀌어도 관리직원들은 그대로 해당 아파트에서 계속 근무를 하며 소속 업체만 바꾸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B씨도 그렇게 계약을 새로 하게 된 것이다.

B씨의 계약기간은 3개월이었으며, D사와의 근로계약서에는 ▲대표회의 의결로 직제개편과 임원감축이 결정된 경우 근로계약은 종료된 것으로 한다 ▲급여는 매 임금 지급일에 대표회의 명의의 관리비 계좌에서 이체해 지급한다는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B씨는 재판부에 “본인이 비록 형식적으로는 C사나 D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했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대표회의가 본인을 비롯한 관리사무소 직원의 관리업무를 지휘·감독했다”며 “따라서 본인과 대표회의 사이에는 묵시적인 근로계약이 성립돼 대표회의가 본인의 실질적 사용자라 할 것이므로, 대표회의는 본인에게 미지급한 수당 등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원고 B씨가 주장하는 사정이나 제출한 사정만으로는 피고 대표회의가 실질적으로 원고 B씨에 대해 사용자의 지위에 있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이와 다른 전제에 선 원고 B씨의 주장은 나머지 점에 관해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이유 없어 B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대표회의는 C사 또는 D사와 위·수탁관리계약을 체결해 아파트를 위탁관리하고 있고,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한 사용사업자가 아닌 점 ▲근로계약서에 사용자로 D사가 기재돼 있고, B씨와 D사는 직접 근로계약서에 사용자 및 근로자로서 서명·날인을 한 것으로 보이는 점 ▲B씨는 D사로부터 임금을 지급받았고, 근태관리 및 업무평정 등도 D사로부터 받은 것으로 보이며, 달리 대표회의가 B씨의 채용절차에 관여했다거나 업무상 지휘·감독 등을 했다고 인정할 만한 자료가 없는 점 등을 들었다.

또한 재판부는 관련 법리로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사이에 위·수탁관리계약을 체결한 아파트 관리업자의 대리인인 관리소장이 관리사무소에서 근무하게 된 직원들과 근로계약을 체결했다면 그 직원들은 아파트 관리업자의 피용인이라고 할 것이므로, 아파트 관리업자와 위·수탁관리계약을 체결했을 뿐인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직원들에 대해 임금지급의무가 있는 사용자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그 직원들이 관리소장을 상대방으로 해 체결한 근로계약이 형식적이고 명목적인 것에 지나지 않고, 직원들이 사실상 입주자대표회의와 종속적인 관계에서 그에게 근로를 제공하며, 입주자대표회의는 그 대가로 임금을 지급하는 사정 등이 존재해 관리사무소 직원들과 입주자대표회의와 사이에 적어도 묵시적인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돼 있다고 평가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입주자대표회의가 관리업자와 체결한 위·수탁관리계약상의 지위에 기한 감독권의 범위를 넘어 일부 직원의 채용과 승진에 관여하거나 관리사무소 업무의 수행상태를 감독하기도 하고, 또 관리직원들의 근로조건인 임금, 복지비 등의 지급수준을 독자적으로 결정해 오기는 했으나, 관리업자 혹은 그를 대리한 관리소장이 근로계약 당사자로서 갖는 관리직원들에 대한 임면, 징계, 배치 등 인사권과 업무지휘명령권이 모두 배제 내지 형해화돼 그 직원들과 체결한 근로계약이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없고, 또 대표회의가 관리직원들의 업무내용을 정하고 그 업무수행 과정에 있어 구체적·개별적인 지휘·감독을 행하고 있다고 볼 수도 없는 경우, 대표회의가 그 관리직원들과 근로계약관계에 있는 사용자라 볼 수 없다”고 밝혔다.

B씨는 재판부의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했으며 피고를 추가지정하고 청구 취지를 변경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편 지난 2018년 6월 21일 서울행정법원 제12부(재판장 홍순욱 부장판사)는 서울 송파구 E아파트에서 관리소장으로 일했던 F씨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피고로, E아파트 대표회의와 위탁관리회사 G사를 피고 보조참가인으로 해 제기한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 청구소송에서 “대표회의가 F씨의 실질적인 사용자”라며 “사용자인 대표회의가 해고절차를 지키지 않고 부당해고를 했으므로 이에 대한 구제신청을 기각한 중앙노동위의 재심판정은 위법해 취소해야 한다”는 이례적인 판결을 낸 바 있다.<본지 2018년 8월 6일자 제1208호 2면 게재>

해당 판결에서 재판부는 대표회의가 관리소장 F씨의 사용자인 이유로 ▲근로관계의 본질적 요소인 임금을 대표회의가 직접 결정해 지급하고, G사와의 관리계약에서 ‘연차수당 및 퇴직금, 각종 보험료 및 교육비, 기타 피복 및 후생복리비용’의 지급의무도 대표회의에 있다고 정한 점 ▲대표회의가 G사로부터 관리소장 후보를 복수 추천받아 동대표들이 참여한 인사위원회 면접을 거쳐 F씨의 채용을 결정한 점 등을 들었다.

또 관리업체인 G사를 사용자로 볼 수 없는 이유로 ▲G사가 F씨에게 업무상 지시를 내리고 근태관리를 했다거나 F씨가 G사에 업무상 보고를 했다는 등 G사가 F씨를 상당한 정도로 지휘·감독했다고 볼 자료가 전혀 없는 점 ▲G사가 대표회의로부터 받은 위탁관리수수료는 월 20만원 남짓한 금원으로, 아파트 한 단지에 대한 위탁관리수수료라기보다 F씨를 대표회의에 소개하는 대가의 성격이 더욱 짙은 점 등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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