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아파트 입주민 갑질에 관리소장 피해 잇따라

아파트 관리사무소(사진은 기사와 무관) <서지영 기자>

폭언·폭행, 흉기협박에
반복 민원·책임 떠넘기기 등
정신적 괴롭힘도 적지 않아

[아파트관리신문=서지영 기자] 공동주택 경비원들이 당하는 갑질 사건이 계속해서 사회적 큰 이슈가 되면서 경비원들의 권익 개선을 위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관리소장과 관리사무소 직원들도 경비원 못지않게 입주민들의 괴롭힘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아 전체 근로자를 위한 제도 마련 등이 요구된다.

지난해 민경욱 전 국회의원이 주택관리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공공임대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입주민들로부터 주취폭언과 폭행, 흉기협박 등 괴롭힘을 당한 사례는 2015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5년간 총 2923건에 이른다. 분양아파트의 피해사례까지 합하면 그 피해 수는 훨씬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매년 많은 아파트에서 입주민이 관리소장 등에게 폭언·폭행 등을 가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으며, 고소·고발하기 애매한 간접적인 협박과 습관적 민원 제기 등 정신적 괴롭힘을 지속적으로 가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이 지시했거나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의결된 사항임에도 입찰이나 공사과정 등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모든 책임을 관리소장에게 떠넘기는 경우도 많다.

올해만 해도 지난 4월 경기 부천시 중동의 한 아파트에서 관리소장 A씨가 입주민들의 민원 등 업무상 스트레스로 추정되는 원인에 의해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발생했었다.<본지 2020년 6월 1일자 제1295호 1·2면 게재>

당시 현장에서는 미완성의 사직서가 발견됐고, A씨의 거주지에서 발견된 업무수첩에 ‘공갈협박죄’, ‘배임행위’, ‘문서손괴’, ‘잦은 비하 발언’, ‘빈정댐’ 등 단어가 적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극단적 선택의 배경에 관심이 모아졌다.

이 아파트는 4월 초 아파트 공용 급수 및 급탕배관 전면교체공사를 시작했는데 공사 시기를 입주민 대표와 소장이 회의해 정했음에도 관리사무소에 공사 시기와 관련한 입주민들의 불만 제기가 적지 않았으며, 유족들도 경찰 조사에서 “A씨가 최근 아파트 관련 민원이 많아 업무상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무 스트레스로 극단 선택도

대한주택관리사협회가 조사한 공동주택 종사 근로자 각종 사건 사례를 살펴보면,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극단적 선택과 사망(과로사, 심근경색 등) 사례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폭행과 상해 사건 사례로는 지난 5월 전남 순천에서 입주민이 관리소장에게 특정 경비원의 재계약을 요구하며 목덜미를 잡아 넘어뜨린 사건, 2018년 3월 경기 부천에서 입주민이 아파트 현수막에 본인의 요구사항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관리소장과 관리과장을 폭행한 사건, 2016년 5월 서울 서초구에서 대표회장이 관리소장에게 ‘종놈’ 발언을 하며 부당한 업무지시를 한 사건, 2012년 1월 부산 해운대구에서 입주자대표회의 부회장이 관리비 미납으로 단전이 되자 용역직원 9명을 동원해 관리소장을 집단 폭행한 사건 등이 있었다.

경기 안양시의 한 아파트 입주민 B씨는 “동대표 출신 등 일부 입주민이 자신들의 요구나 지시에 잘 따르지 않는 소장이 있으면 일부러 입주민들 사이에 악성 허위 소문을 내거나 관리업체에 소장 교체를 요구해 1~2년 사이에 관리소장이 몇 차례나 바뀐 적이 있다”며 “동대표들이 바뀌어도 자신들 편의 사람을 동대표로 내세워 관리소장을 마음대로 주무르려고 해 곁에서 보기 안타깝다”고 전했다.

서울 강서구 소재 아파트 관리소장 C씨는 “우리 아파트뿐만 아니라 많은 아파트에서 입주민들이 관리사무소로 찾아와 여러 불만을 제기하면서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불법주차로 인해 붙인 스티커에 항의를 하며 떼내라고 지시하거나 주민 대다수 찬성으로 결정된 건에 대해 반대하는 일부 입주민이 몰려와 항의하는 경우 등이 있고, 동대표들 지시가 위법한 사항이라 거절을 했을 때 잘라버리겠다고 협박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이 아파트에서는 지난달 22일 술에 취한 입주민이 관리사무소 출입문을 부수고 건물 2층으로 도망간 관리직원을 쫓아가 위협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해당 입주민은 1주일쯤 뒤 다시 관리사무소를 찾아와 C씨와 직원에게 욕설을 퍼붓다 경찰에 연행됐다.

C씨는 “반복 민원 제기나 협박 등 사소한 괴롭힘부터 폭언 등까지 입주민들의 갑질과 괴롭힘이 끊이지 않지만 입주민들을 계속 마주해야 하기 때문에 일일이 고소·고발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다”며 “규모가 큰 관리업체에서는 순환 보직을 시켜줄 수 있지만 작은 관리업체에서는 그것이 힘들어 입주민이 항의하면 퇴사를 종용할 수밖에 없고, 관리직원들의 어려움 호소에는 그냥 참으라고 하는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C씨는 “관리소장을 입주민 한두 사람 마음대로 자르지 못하게 입주민 동의 조건을 두고, 계약기간 등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택관리사협회는 관리소장을 비롯한 아파트 관리직원들이 당하는 갑질을 방지하기 위해 지난 6월 6만여명의 주택관리사 일동 명의로 발표된 ‘아파트 근로자의 부당한 처우 개선을 위한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호소문에서 주관협은 정부와 국회에 ▲‘아파트 근로자가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에 필요한 현실적이고 실효성 있는 내용의 ‘갑질 방지 법률’ 마련 ▲‘입주민의 안전이 담보되는 아파트 근로자 인력 배치 기준’ 마련 등을 요구했다.

이와 함께 주관협은 아파트 근로자의 갑질 피해 구제 및 재발 방지를 위해 ▲입주민, 근로자 등 아파트 구성원과 지역 사회가 참여하는 서명 운동 전개 ▲갑질 대응 매뉴얼 작성 및 관리 현장 배포 ▲갑질 피해 예방 포스터 제작 및 배포 ▲국회 정책 토론회 진행 등을 추진하고, 이를 토대로 정부와 국회 등에 각종 대책 마련과 제도 개선 등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 천준호 의원 등이 공동주택 경비노동자를 비롯한 근로자들을 입주민 등의 부당한 지시와 폭언·폭행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공동주택관리법 등 개정안을 잇따라 발의했다.

이에 주관협 관계자는 “공동주택 관리 종사자들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법안들이 통과될 수 있도록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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