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지법 판결

[아파트관리신문=고경희 기자] 아파트 세대 내 스프링클러 배관 누수 보수공사를 위해 관리소장이 밸브를 잠근 가운데 세대 내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스프링클러 미작동으로 화재가 확산됐고 입주민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치료를 받던 중 사망에 이르렀다. 이에 법원은 밸브의 점유자인 입주자대표회의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으나, 관리소장의 과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관리업체에 손해배상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대전지방법원 제12민사부(재판장 이종록 부장판사)는 최근 대전 동구 A아파트 세대 화재로 사망한 입주민의 가족들이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업체 F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 대표회의는 원고 B씨에게 1억여원, 원고 C씨에게 9501만여원, 원고 D·E씨에게 각 3500만원을 지급하고 원고들의 피고 대표회의에 대한 나머지 청구 및 피고 F사에 대한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2018년 1월 A아파트 한 세대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입주민 G씨는 화재에 따른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치료를 받다가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A아파트 여러 세대들 내부에 설치된 스프링클러 배관에서는 2013년 8월부터 지속적으로 누수가 발생했고 G씨 가족이 거주하던 세대의 스프링클러 배관에서도 2016년 4월부터 누수가 나타났다. G씨 가족은 자신들의 비용으로 누수 배관을 보수했으나 지속적으로 개별 세대에서 누수가 발생했고, 입주자대표회의는 2017년 전유부분으로 돼 있는 개별 세대의 스프링클러 배관을 공용부분으로 변경해 관리하기로 의결했다. 2018년 1월 열린 회의에서는 누수가 발생해 보수가 필요한 세대에 대해 장기수선충당금으로 보수공사를 하기로 의결했다.

관리소장은 누수 스프링클러 배관 보수공사를 시행하기 위해 2017년 10월부터 스프링클러 공용부 알람 밸브를 잠갔고 이 사건 화재 당시에도 세대 내 스프링클러는 작동하지 않았다.

이에 망자 G씨의 가족들은 “2017년 10월부터 스프링클러 알람 밸브가 잠겨 있는 상태여서 화재 당시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는데, 이는 공작물은 밸브의 설치·보존에 하자가 있는 경우”라며 “대표회의는 밸브의 점유자이자 소유자로서 화재로 인한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관리소장이 밸브를 잠가 화재 당시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고 화재경보가 울린 지 17분이 지나서야 화재 현장에 도착해 화재진압이 지연됐으므로 관리소장의 사용자인 관리업체 F사도 손해를 배상하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화재 당시 잠겨 있던 밸브에는 설치 또는 보존상의 하자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 대표회의는 하자 있는 공작물인 밸브의 점유자로서 원고들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 대표회의는 구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구 소방시설법)에 따라 소방시설인 스프링클러를 유지관리하면서 기능과 성능에 지장을 줄 수 있는 폐쇄·차단 등의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며 “그러나 피고 대표회의는 이를 위반해 2017년부터 밸브를 잠근 상태로 뒀으며 대전중부소방서로부터 밸브를 개방하도록 시정요구를 받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대표회의는 “화재가 발생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세대 소유자의 보존상 하자이므로 대표회의는 G씨 가족들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고 반박했으나, 재판부는 밸브가 잠겨 화재가 발생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화재 확산의 이유가 됐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울러 대표회의는 ▲스프링클러 배관 누수 현상은 시공상 하자여서 시공사가 손해 배상 ▲밸브를 잠근 것은 보수공사 시행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 ▲관리업체 F사에 관리업무 위탁해 밸브 관리책임 소멸을 주장했으나 모두 기각됐다. 또 스프링클러 배관 누수 민원을 제기한 세대가 있었다고 해 3개월간 밸브를 잠근 상태로 둔 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점이 지적됐다.

다만, 재판부는 “이 사건 화재는 세대 거주자 중 누군가가 주방 쓰레기통 쪽에 방치한 점화원이 음식물과 종이류 쓰레기 부분에 떨어져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점을 고려하면 화재는 원고의 책임 영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피고 대표회의는 여러 세대 내 스프링클러 배관의 누수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고 밸브를 잠금 것도 보수공사를 위한 과정에서 이뤄진 조치”라면서 대표회의의 손해배상책임을 30%로 제한했다.

이와 함께 관리업체 F사의 손해배상책임에 대해 “스프링클러 배관 보수를 위해 배관에 물이 공급되는 것을 차단할 필요가 있어 관리소장이 밸브를 잠근 것은 스프링클러 점검·정비를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평가되고 검사도 같은 취지로 소방시설법 위반 혐의에 혐의없음의 불기소처분을 했다”며 “아파트 주민들이 스프링클러 누수로 민원제기를 해 관리소장이 밸브를 잠근 것이었는데, 피고 F사에게 피고 대표회의 지시 없이도 누수가 발생한 개별 세대의 스프링클러 배관에 선제적으로 보수공사를 시행할 것까지 요구하기는 어렵다”고 일축했다.

관리소장의 화재 현장에의 지연 출동에 대한 책임에도 화재 발생 15분 후 현장에 도착한 것이 지연출동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지연출동이더라도 관리사무소 직원의 고의 또는 과실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관리소장 및 관리직원들이 G씨 가족들에게 화재와 관련한 불법행위책임을 부담한다고 볼 수 없다며 “피고 F사도 원고들에게 사용자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고 봤다.

한편, G씨 가족들과 대표회의는 이 같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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