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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란 칼럼] 위임계약해지의 자유 규정, 전가의 보도 아니다
승인 2020.06.19 09:33|(1297호)
법무법인 산하 김미란 변호사

위임(委任)이란 사무처리를 타인에게 맡겨 책임지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 응당 위임인과 수임인 사이에는 신뢰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믿고 맡길 만한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면 두터워야 할 신뢰 관계에 금이 가고, 맡긴 업무와 책임 역시 회수할 수밖에 없다. 그런 연유로 위임 계약은 양 당사자 모두 얼마든지 중도에 해지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우리 민법상 위임 관련 조항은 이와 같은 위임의 법적 성질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민법 제689조는 ‘위임계약은 각 당사자가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고(제1항), 당사자 일방이 부득이한 사유 없이 상대방의 불리한 시기에 계약을 해지한 때에는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제2항)’고 규정하고 있다. 즉 얼마든지 계약을 해지하고, 그로 인해 상대방이 손해를 입더라도 원칙적으로는 배상할 책임이 없는 것이다. 오직 부득이한 사유 없이 상대방이 불리한 시기에 계약을 해지한 경우에 한해 배상하면 그뿐 인 것이다.

하지만 이 위임계약의 해지를 둘러싼 분쟁은 끊이지 않는다. 아파트 관리 현장에서 가장 빈번하게 이뤄지는 계약은 위·수탁 관리계약이고, 그 법적 성질은 통상 위임에 해당하니 그만큼 빈번한 분쟁이 바로 위·수탁 관리계약의 해지를 둘러싸고 발생하는 것이다. 늘 해지당한 쪽은 위법한 일방적 해지라고 주장하며 1차적으로는 해지의 무효를, 2차적으로는 만약 해지가 인정되더라도 손해는 배상하라고 주장한다.

반대로 계약을 해지하는 쪽은 아무 이유 없이 해지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업무를 잘 처리하지 못한 탓, 즉 상대방의 채무불이행을 문제 삼으며 오히려 자신들이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위임계약의 해지가 만고불변의 진리라면, 민법 제689조 제1항이 강행규정이라면 이런 논란이나 분쟁은 없었을 것이다. 해지를 둘러싼 분쟁의 존재 자체가 위임계약 해지의 자유 규정이 결코 전가의 보도가 아니라는 반증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수탁 관리계약 해지를 둘러싼 법적 분쟁에서 법원은 대체로 이 위임의 일반적 법리를 그대로 따르는 판결을 선고해 왔다. 관리주체에게 채무불이행 등 해지사유가 있어서 해지한 것이라는 아파트 측 주장이 허위로 밝혀져도, 해지절차상의 문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위임계약 해지 자유 법리를 그대로 인정해 임의해지로서의 효력은 인정하곤 했다. 게다가 위·수탁 관리계약 상 일방적 해지를 금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배상하기로 약정했던 것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과다하다면서 감액하기 일쑤이다. 그야말로 위임 계약 해지의 자유가 널리 인정됐다. 

그러나 위임계약 해지의 자유를 규정한 민법 제689조는 임의규정에 불과하다. 임의규정은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배제되거나 변경이 가능한 규정으로서 당사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행되는 강행규정과는 다르다. 즉, 당사자는 약정에 의해 얼마든지 해지의 자유를 규정한 위 민법 규정의 적용을 배제할 수 있고, 그 내용을 달리해 정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아파트 위·수탁 관리계약의 해지가 문제된 것은 아니나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이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와 체결한 계약의 해지가 문제된 사안에서 대법원은 위임계약 해지의 자유에 대해 경종을 울린 바 있다. 문제된 계약이 민법상 위임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도록 돼 있으나 당사자가 해지 사유 및 절차, 손해배상 책임 등에 관해 민법 제689조와 달리 약정했다면 이를 단순히 주의적인 성격의 것이라고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한 것이다(대법원 2019. 5. 30. 2017다53265 판결 참조).

대법원은 위 사안에서 일정한 사유가 발생해 계약을 이행할 수 없는 경우와 같이 채무불이행에 관련한 해지 사유를 열거하고 있고, 충분한 계약이행 기간을 정해 서면으로 통보한 후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해지절차를 규정하고 있는 점, 계약을 일방적으로 종료시키는 경우를 손해배상 책임의 발생 원인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도 민법 제689조와는 양립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봤다.

결국 위임계약은 양 당사자 간 신뢰가 근간이 되므로 원칙적으로 해지의 자유가 있으나 임의규정에 불과하므로 약정에 의해 이를 배제할 수 있고 일정한 경우에만 해지할 수 있도록 얼마든지 정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최근 아파트 위·수탁 관리계약 해지가 문제된 사안에서 해지의 자유가 제한된다는 취지의 판결이 선고됐다(서울남부지방법원 2020. 4. 16. 선고 2019나53042 판결). 견고한 방패 같던 위임계약 해지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위·수탁 관리계약상 당사자가 약정에 의해 해지의 자유를 제한했기 때문에 임의규정에 불과한 민법 제689조 제1항이 배제된다는 논리는 아니었다.

법원은 이 사건에서 입주자대표회의와 주택관리업자 사이의 법률관계는 민법상 위임에 해당하고, 민법 제689조 제1항은 위임계약의 각 당사자는 언제든 이를 해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공동주택관리방법의 결정, 위탁 관리 시 주택관리업자의 선정은 아파트 입주자 등 이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위임계약 역시 위임이 위임인의 이익과 함께 수임인의 이익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경우 민법 제689조에 따른 해지 역시 제한된다고 판시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임의로 위 계약을 해지하려면 입주자대표회의의 의결 또는 전체 입주자 등 10분의 1 이상의 제안과 전체 입주자 등 과반수 찬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공동주택관리법상 관리방법을 결정하거나 주택관리업자를 선정하기 위한 절차를 거친다면 입주자대표회의는 여전히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위임계약 해지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는 민법 제689조 역시 임의 규정에 불과하므로 얼마든지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배제되거나 변경이 가능하다. 위 사안에서도 계약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해지할 수 있는 사유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해지 사유 없이 일방적으로 해지할 수 없도록 규정하면서 이를 어긴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시키고 있다.

이는 민법 제689조와는 양립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 판결은 위·수탁 관리계약 역시 임의해지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면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관리방법 또는 주택관리업자를 선정하기 위한 절차를 거친다면 임의 해지가 가능하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어 아쉬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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