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문제로 입주민의 지속적 폭언·폭행 피해 경비원, 결국 유서 남기고 스스로 목숨 끊어

입주민들 “가해자 철저히 수사해달라”
경비실 분향소에 추모 발길 이어져

입주민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린 경비원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에 입주민들은 경비실에 분향소를 마련해 경비원을 추모했다. <고경희 기자>

[아파트관리신문=고경희 기자] 아파트 입주민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린 경비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해 공분을 사고 있다.

10일 서울 강북경찰서에 따르면 강북구 소재 아파트에서 일하던 경비원 A씨가 자신의 집에서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A씨는 지난달 21일 아파트 지상 주차장에 이중 주차된 차량을 밀어서 옮기던 중 차주 입주민 B씨와 시비가 붙었다. 그날 이후로도 B씨는 A씨를 CCTV가 없는 사각지대인 경비실 내 화장실로 끌고 가 폭행했고 A씨는 지난달 28일 경찰에 B씨를 고소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파트 동대표, 입주민들과 관리소장 등은 경비원 A씨를 돕기 위해 대책회의를 하고 사건일지를 기록하는 등 고소 과정을 함께 했다.

하지만 A씨는 B씨의 계속된 협박성 문자메시지에 결국 지난 10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가 남긴 유서에는 “억울하다”면서도 자신을 도와준 입주민들에게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한 입주민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경비원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며 청원을 올렸다.

청원을 올린 입주민은 “경비아저씨는 입주민들에게 매번 가족인 것처럼, 자기 일인 것처럼 희생하는 성실한 분으로 아침마다 먼저 인사를 해 출근길에 웃음을 주는 비타민 같은 존재였다”며 “이번 사건을 철저히 수사해 경비아저씨의 억울함을 풀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경비원도 한 가정의 사랑받는 할아버지, 남편, 아빠”라며 “입주민의 갑질은 없어져야 하고 오히려 아파트를 위해 고생하고 있는 경비원들에게 응원을 해야 한다”면서 모두가 경비원을 보호해달라고 호소했다.

한 입주민이 경비원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청원을 올렸다.

경비원 A씨의 안타까운 죽음에 입주민들은 A씨가 생전에 근무한 경비실에 분향소를 마련했다. 분향소에는 입주민이 두고 간 국화꽃, 막걸리, 배 등이 놓여 있었으며,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곳에선 편안하시길 바랍니다” 등 입주민들의 추모가 담긴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분향소를 방문한 한 입주민은 “좋은 분이었는데 이렇게 떠나 너무 슬프다. 가해자가 꼭 제대로 된 처벌을 받기 바란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동료 경비원 C씨는 A씨에 대해 “참 착한 사람이었다”며 “입주민 B씨와의 주차 사건 이후 A씨가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아 지속적인 괴롭힘이 있는지 이제야 알았다. 경비업무가 자치관리로 운영돼 경비업체에 소속된 것도 아니어서 참는 것 말곤 방법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어 “경비실에 CCTV가 없어 폭행 사실이 어떻게 밝혀질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A씨를 도왔던 입주민은 “A씨가 병원에 입원한 후 동대표들이 대책회의를 갖고 병원비 지원과 함께 계속 아파트에서 일할 수 있도록 힘쓸 예정이었다”며 “경비원 처우개선을 위한 제도도 필요하지만 아파트에서 문제 입주민을 처리할 방법이 없으므로 정확한 수사와 함께 입주민의 인식개선을 위한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11일 오후 7시에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경비원 A씨를 추모하고 이번 갑질 사건에 모든 입주민들이 반성하자는 의미의 추모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입주민들은 A씨를 위한 추모시를 낭독하고 ‘갑질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12일에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권리사업단 등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만든 추모모임이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권 사각지대에 관심을 가져달라”며 사망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와 가해 주민의 사과, 아파트 경비노동자 관련 제도 정비 등을 요구했다.

한편, A씨를 폭행한 입주민 B씨는 이웃들 앞에서 모욕을 당했다며 지난달 28일 A씨를 경찰에 고소한 바 있다.

매년 경비원 대상 갑질 사건 발생
“대책은 입주민 인식개선뿐”

분향소에 입주민들이 경비원을 추모하는 내용의 포스트잇을 붙였다. <고경희 기자>

이와 같이 경비원을 대상으로 한 입주민의 갑질은 매년 발생해 안전 사각지대인 경비원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지난해 9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미래통합당 민경욱 의원이 주택관리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전국 임대아파트에서 경비근무자에 대한 입주민의 폭언·폭행 건수는 15배 급증했다.

2015년과 2016년에는 단 2건이던 폭언·폭행 신고건수가 2017년에는 11건으로 증가했고 2018년에는 31건으로 급증했으며, 지난해 7월까지 27건이 발생했다.

2018년 11월 층간소음 민원을 해결해주지 않는다며 만취 상태인 입주민에게 폭행을 당한 경비원이 끝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법원은 경비원 사망에 대한 미필적 고의를 인정해 해당 입주민에 징역 18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또 경기도 아파트에서 주차 차단기를 빨리 열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주민이 경비원에게 ‘개가 주인에게 짖는다’며 폭언과 폭행을 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지난해 2월에는 서울 강남구 아파트에서 주차 차단봉이 늦게 열렸다는 이유로 입주민이 경비원을 10여분간 폭행하는 등 경비원을 대상으로 한 입주민의 폭언·폭행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 그동안 공동주택 관리업계 및 경비업계 관계자들은 고령 경비원들을 위한 안전장치가 없어 입주민으로부터의 폭행 등 범죄에 쉽게 노출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긴밀한 방범체계 마련 등 대책 마련을 촉구해왔다.

2018년 10월 시행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사업주는 고객응대 노동자에 대한 고객의 폭언 등 행위 예방 및 보호조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제도를 아파트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는 목소리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 임한수 법제권익국장은 “경비원을 직접 고용하는 경우 사용자인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직원들을 입주민의 폭언 및 폭행 괴롭힘으로부터 보호해야 하지만 문제 입주민이 계속 거주하고 있는 이상 해결이 어렵고, 관리소장의 직원 상담으로는 갑질 문제를 해결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경기 용인시 소재 아파트의 관리소장은 “관리소장과 동대표들이 경비원이 부당한 대우를 받을 경우 적극적으로 경비원을 보호해야 하지만, 사실상 입주민의 인식개선에만 기댈 수밖에 없어 답답하다”며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위한 다각도의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김선기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교육선전국장은 “24시간 교대근무, 주차관리 등 많은 업무를 맡고 있는 경비원의 근로환경도 원인”이라며 “다른 직종은 노동조합을 통해 해결할 수 있지만 경비원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관공서의 역할이 중요하다. 일시적인 캠페인만으로는 매번 반복되는 경비원 상대 갑질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입주민이 자녀들과 함께 경비원을 추모하고 있다. <고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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