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결···“변호사 없이 공판개정 위법”

[아파트관리신문=고경희 기자] 아파트에서 새 입주자대표회장이 선출됐으나, 선거 효력을 다투는 과정에서 전 회장이 대표회장 권한으로 사업자등록, 통장개설을 신청한 것에 1심과 2심 모두 자격모용 혐의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에서 고령자인 피고인에게 변호사가 없음에도 공판을 개정해 위법하다며 사건을 다시 돌려보냈다.

대법원 제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인천 중구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이 새로 선출된 후에도 회장 권한으로 사업자등록신청서, 통장개설신청서를 작성한 혐의로 기소된 전 대표회장 B씨에 대한 자격모용사문서작성, 자격모용작성사문서행사 상고심에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인천지방법원 본원 합의부에 환송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B씨는 2009년부터 2012년 6월 19일까지 입주자대표회장으로 선출돼 직무를 수행해 왔다. 그런데 관리비 인상과 관련해 C씨를 비롯한 A아파트 입주민들의 진정이 제출돼 인천 중구청 공무원의 중재 아래 B씨와 C씨가 새 대표회장 선출을 위한 선거일자 등을 협의했다. 협의사항에 따라 2012년 6월 19일 실시된 선거에서 C씨가 단독 출마해 새 대표회장으로 선출됐다.

새 회장으로 선출된 C씨는 B씨에게 아파트 관리장부 원본 등 문서 인도를 요구했으나 B씨는 선거실시과정에서의 절차 등을 문제 삼아 이에 응하지 않았다. 대표회의는 B씨를 상대로 문서인도 청구 소송을 제기했는데 법원은 ‘C씨는 과반수 이상 득표해 적법한 절차에 따라 대표자로 선출됐으므로 B씨는 대표회의 관련 문서를 인도하라’는 내용의 판결을 선고했다. 이에 B씨가 항소해 항소심 진행 중에 조정에 회부됐고 B씨와 대표회의 사이에 2014년 12월 5일 대표회장을 선출하는 내용의 조정이 성립됐으며, D씨가 단독 출마해 대표회장으로 선출됐다.

C씨는 대표회의를 상대로 D씨가 대표자지위에 있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대표자지위부존재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2016년 7월 ‘2014년 12월 5일 선거는 E씨의 후보자 자격이 부여되지 않은 채 선거공고를 하고 선거가 실시돼 중대한 하자가 있으므로 D씨를 대표자로 선출한 것은 위법해 효력이 없다’며 D씨가 대표자 지위에 있지 않음을 확인한다는 내용의 판결을 선고했다. 대표회의가 항소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이 가운데 B씨는 2013년 2월 사업자등록신청서 용지의 대표자 란에 본인의 이름을 기재하고 도장을 찍은 다음 인천세무서에 제출했다. 또 같은 달 은행에서 입주자대표회의 명의의 통장개설을 신청하면서 신청인에 본인 이름을 적고 대표회의 직인을 찍었다.

이로써 B씨는 ‘권한 없이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대표 자격을 모용해 권리의무에 관한 사문서인 사업자등록신청서와 통장개설신청서를 작성한 후 행사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피고인 B씨를 벌금 100만원에 처한다”며 유죄 판결을 내렸다.

1심 재판부인 인천지방법원은 “피고인 B씨는 C씨가 새 회장으로 선출됐음을 알면서도 사업자등록신청서와 통장개설신청서를 작성해 행사했으므로 자격모용사문서작성 및 행사의 고의가 있었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 사유로 “2012년 6월 선거는 피고인 B씨와 C씨 사이의 협의사항에 따라 진행된 것으로 피고인 B씨가 후보자 등록을 하지 않아 C씨가 단독 출마했고 거주세대 39세대 중 22세대가 투표해 찬성 21세대, 반대 1세대로 C씨가 회장으로 선출됐다”며 “문서인도 청구 판결에 의하더라도 C씨는 과반수 이상 득표해 적법한 절차에 따라 대표자로 선출됐다는 것인데, 이 선거가 불공정하게 진행됐다는 사정이나 투표에 위법이 있었다는 사정이 발견되지 않고 피고인의 주장 및 증거만으로는 회장 선거가 무효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한 “피고인 B씨는 선거 과정 및 효력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선거 효력을 소 제기 등의 방법으로 다투는 등의 조치를 하지 않은 채 사업자등록신청서와 통장개설신청서를 작성했는데, 피고인 B씨가 자신과 관련된 법률관계가 확정되기 전에 대표회의 업무를 처리해야 할 급박한 사정이 있었다고 보이지 않고 문서 작성 시 대표회의 동의 또는 의결을 거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B씨는 “선거 과정에 문제가 있어 효력을 인정할 수 없고 내 임기가 원래 2013년 12월까지며 대표회의 구성원들이 나에게 계속 대표를 하라고 요구해 회장 권한이 계속 유지됐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C씨가 새 회장으로 유효하게 선임됐고 이를 둘러싼 다툼이 있다고 해 이전 회장인 피고인 B씨가 회장으로서의 권한을 가진다고 할 수 없고 이를 오인했음을 정당화하거나 뒷받침하는 객관적 자료도 없다”고 꼬집었다.

B씨는 이 같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했으나 2심은 1심과 같은 이유로 B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하지만 상고심에 이르러 대법원은 “피고인 B씨는 원심 공판 진행 당시 70세 이상이었으므로 형사소송법에 따라 변호사 없이 개정할 수 없는 ‘필요적 변호사건’에 해당하고 항소심도 마찬가지”라며 “그런데 원심은 피고인 B씨가 변호인을 선임한 적이 없는데도 국선변호인을 선정하지 않은 채 개정해 사건을 심리한 다음 피고인 B씨의 항소를 기각했으므로 소송절차가 형사소송법을 위반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면서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하고 원심판결을 파기, 원심법원에 환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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