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안타까운 소식이 들렸다. 서울 노원구 A아파트에서 ‘거액의 관리비 증발’ 사건이 벌어져, 경리직원과 관리소장이 잇달아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파트의 피해금액도 7억여원에 달하는 ‘역대급’ 횡령 사건이다. 아파트 수도관 교체공사를 하던 중 관리소장이 경리직원에게 공사업체에 중도금 지급을 지시했으나 공사비가 입금되지 않았다는 업체의 연락을 받고서야 문제의 사실이 드러났다. 아파트 노후화를 막기 위해 적립하는 장기수선충당금 보관 통장에서 7억여원이 사라진 것이다.

해당 아파트 입주민들은 바로 비상주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수습에 나섰다. 그렇지만 관련 실무·책임자인 경리직원과 관리소장이 잇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선택을 함에 따라 사건 파악에 어려움이 큰 상태다.

이 사고와 관련해 아파트 비대위는 사망한 두 사람을 포함해, 또 다른 전직 경리직원과 동대표 등 7명을 이미 고소한 상태다. 현재 수사가 진행 중에 있고, 관할 지자체인 서울시와 노원구도 진상파악에 나섰다. 사건의 전모 파악에는 시간이 걸릴 듯하다.

가히 ‘역대급’이라 할 수 있는 이번 관리비 횡령사고는 왜 일어난 걸까. 도대체 회계 관리 시스템은 왜 구멍이 난 것일까.

업계 관계자들은 ‘관리 담당자 및 관련자들이 원리와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했다. 업무처리에 있어 관행에 따른 온정주의, 개인에 대한 신뢰에 기반해 관리의 원리와 원칙을 저버렸다는 것이다.

해당 아파트의 경우 오랫동안 자치관리를 해오면서 담당 소장과 경리직원에 대한 개인 차원의 의지가 컸고, 관행에 의거 편법으로 업무처리를 해온 것 같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공동주택 회계의 업무처리 과정은 관리주체의 사업계획 수립·예산편성부터 의결, 종료 후 감사까지 매 단계 엄밀하게 돼 있다. 정상적으로 프로세스마다 원칙대로 점검하고 체크하면 큰 문제가 발생할 이유가 없다.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라 개별 공동주택들은 입주자대표회의 구성원을 4명 이상으로 하도록 규정하면서 감사를 2명 이상 두도록 내부 감시·감독도 강화하고 있다. 또한 300세대 이상 공동주택은 외부회계감사도 매년 1회 이상 받도록 규정돼 있다. 게다가 이 아파트는 2018년까지 받은 외부회계감사에서 모두 ‘적정’ 의견을 받았음이 확인됐다.

누가, 언제 범행을 저질렀고, 이런 일이 왜 일어났으며, 뒤늦게 드러났는지 지금으로서는 확정할 수가 없다. 일각에서는 이 아파트 관리방식이 ‘자치관리’라서 감시·감독이 소홀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감시·감독 역할을 대표회의에만 맡길 수밖에 없어 이런 일이 터졌고, 사건이 일어나고도 수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감사시스템은 공동주택 회계처리기준, 외부회계감사, 지자체 감사, 내부감사까지 촘촘하다. 그런데도 대규모 회계부정이 의심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전문가들은 대책의 하나로 적절한 긴장이 유지되도록 수시 감사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관리와 관련한 여론의 불신도 커지고 있다. 모든 아파트들이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돌아볼 때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우리 아파트는 문제없는지.

하나 확실한 것은 모든 행위의 기본은 ‘원칙대로 하는 것’이다. 기본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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