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

연말연시 신문, 방송, 온라인 등을 통해 너무나 많이 들었던 어휘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약칭 공수처 설치 법안과 관련해서 지난해 내내 온 나라가 들썩였다. 공수처와 검찰 등을 상호 견제토록 함으로써 견제와 균형 원칙을 지키게끔 한다는 것이다.

건강한 권력 분산의 물꼬를 텄다는 찬성 주장부터 그 반대로 권력의 비대와 집중을 꾀할 것이라는 말까지 논란이 컸다. 변화를 주장하는 측이나, 변화를 막고자 하는 측이나 모두 이 원리를 주장의 논거로 삼고 있다. 시간이 흐른 후, 지금을 돌아보면 어느 주장이 옳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견제와 균형은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이자, 권력분립의 기본 원리다. 서로가 견제를 통해 독주를 막고, 경쟁을 통해 시스템을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원리는 개인 간에도 작동하며, 사회에서도 작동한다. 이는 국가질서의 균형 있는 안정을 이루도록 하는 통치원리이기도 하며, 국제관계에서도 통용되는 이론이다.

이 말이 실제로 제도화된 것은 200년 전의 미국에서다. 여기에는 미국 헌법의 정신이 잘 담겨있다. 미국 헌법은 권력을 철저히 불신하고, 권력을 가진 개인 또는 조직이 ‘선의’와 ‘절제력’으로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단호히 거부했다. 권력은 오직 또 다른 권력에 의해서만 억제될 수 있을 뿐이라고 봤다.

이는 현실에서 나름 타당하다고 인정받아 왔고, 많은 국가들이 이 ‘견제와 균형의 원칙’을 근간으로 하는 헌법을 운영하고 있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말은 건축토목 분야에서도 많이 쓰인다. 이 용어는 건물 또는 토목 구조물의 특정 부문에 힘이 집중되지 않도록 구조체에 작용하고 있는 힘들이 상호 균형을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 건축물의 완성까지 이 원리는 기본으로 작용한다. 설계부터 시공, 감리가 서로 협력과 견제 관계에서 지어져야만 제대로 설 수 있고, 안전이 확보될 수 있다.

‘견제와 균형’ 기능이 없으면 건축물의 공공성과 안전성 확보도 어렵다. 현장의 안전시설이 미흡하거나 부실시공이 우려될 경우 감리자나 현장소장이 이를 확인해야 하나, 걸러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발주자는 책임감리에 모든 것을 떠맡기고 책임회피에 급급하다. 이럴 때 부실이 발생하는 것이다.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견제와 균형이 적절히 작동해야 한다. 그리고 협력해야 한다.

공동주택 관리 분야에서도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작동하고 있으며, 이 원리를 통한 평형은 지극히 중요하다.

입주자대표회의 등 의결주체와 관리사무소장, 관리회사 등 관리주체는 두 개의 수레바퀴와 같이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만약 무게중심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 가동되면 앞으로 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겉돌게 된다. 아울러 견제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관리의 질은 떨어지고, 부패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연말에 서울 노원구 A아파트에서 ‘관리비 횡령 의혹’ 사건으로 경리직원과 관리소장이 잇달아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우울한 얘기가 전해졌다. 수사중인 사건이라 내용을 예단할 수는 없지만 건강한 견제와 균형 원리가 작동되는 곳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하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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