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아파트관리신문=고경희 기자] 혼합주택단지에서 경비용역계약을 두고 입주자대표회의와 임차인대표회의의 갈등이 발생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임차인대표회의와 단독으로 계약을 체결한 경비원들을 상대로 가처분 신청을 해 ‘결정권한이 없는 임차인대표회의와 체결한 계약은 무효’라는 점을 인정받았다. 이후 임차인대표회의가 ‘입주자대표회의가 임대사업자와 협의 없이 체결한 계약은 무효’라는 법원의 판결을 받음에 따라 양측의 계약 모두 무효가 됐으나, 여전히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6민사부(재판장 김지철 부장판사)는 최근 분양·임대 혼합주택단지인 서울 강남구 A아파트 임차인대표회의가 이 아파트 경비업체 B사와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제기한 계약무효확인 청구소송에서 “피고 입주자대표회의와 피고 B사 사이에 체결된 경비용역 계약은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A아파트는 11개동 169세대로 분양세대는 55세대, 임대세대는 114세대로 구성돼 있다. 입주자대표회의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는 2018년 2월 공동주택 관리업체 C사와 위탁계약을 체결했다. C사는 계약일 무렵 D씨, 2019년 3월 E씨를 관리소장으로 임명했다.

2016년 12월 경비업체 F사와 사이에 경비인원 3명, 계약기간을 2017년 1월부터 2018년 12월까지로 하는 경비용역계약이 체결됐다.

그러다 2018년 12월 대표회의 의결을 거쳐 관리소장 D씨가 B사와 사이에 경비인원 4명, 계약기간 2019년 1월부터 12월까지로 하는 경비용역계약이 체결됐다. 이 계약 체결 과정에서 임대사업자인 SH공사와의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 가운데 임차인대표회의는 F사 소속으로 근무한 경비원 G, H씨와 경비용역계약을 체결해 계약 유무효를 두고 임차인대표회의와 입주자대표회의 사이에 갈등이 발생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경비원 G, H씨를 상대로 경비실 퇴거 등 가처분 신청을 했고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혼합단지의 임차인대표회의는 아파트 관리와 관련해 임대사업자와 사전 협의할 권한이 있을 뿐 결정 권한은 대표회의와 임대사업자에게 있어 임차인대표회의와 경비원 G, H씨 사이에 체결한 계약은 무효”라며 대표회의의 손을 들어줬다.<본지 2019년 7월 15일자 제1253호 게재>

특히 “입주자대표회의가 SH공사와의 동의 없이 체결한 경비용역계약이 무효라고 하더라도 임차인대표회의에 경비용역계약을 체결할 권한이 생긴다고 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임대사업자와 협의 없이 계약, 법 위반
혼합단지 합의주체 두고 갈등 여전

이 같은 판결에 임차인대표회의는 “경비용역계약 체결 여부는 혼합단지 관리 사항으로서 공동주택관리법 및 시행령에 따라 입주자대표회의와 임대사업자가 공동으로 결정해야 함에도 입주자대표회의는 독단적으로 경비용역계약을 체결해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임차인대표회의의 주장을 받아들여 입주자대표회의가 SH공사와의 동의 없이 체결한 경비용역계약은 무효라고 봤다. 이로써 입주자대표회의와 임차인대표회의가 각각 체결한 경비용역계약 모두 효력이 없게 됐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임차인대표회의는 관리 사항을 함께 결정할 주체가 아니라 단순히 결정 주체 중 하나인 임대사업자와 사전협의를 할 수 있는 자에 불과하므로 경비용역계약 무효에 관해 확인의 이익이 없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원고 임차인대표회의가 경비용역계약 체결 여부를 결정할 주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 계약으로 인해 가중되는 관리비 부담은 원고의 구성원인 개별 임차인에게 돌아가게 된다”며 “경비용역계약은 단순히 관리비를 집행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입주민의 안전 및 주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므로 누구와 경비용역계약을 체결하는지 여부는 입주민에게 중요한 사안”이라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어 “경비용역계약은 기존의 계약에 비해 경비료가 증액됐고 원고 임차인대표회의는 계약 무효 여부를 확인함으로써 경비업무를 둘러싼 법적 지위에 현존하는 위험과 불안을 제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원고의 이 사건 소는 확인의 이익이 있다”고 일축했다.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은 혼합주택단지 관리에 관해 ▲관리방법의 결정 및 변경 ▲주택관리업자 선정 ▲장기수선계획 조정 ▲장기수선충당금 및 특별수선충당금을 사용하는 주요시설 교체 및 보수 ▲관리비 등을 사용해 시행하는 각종 공사 및 용역에 관한 사항을 입주자대표회의와 임대사업자가 공동 결정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또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및 시행령은 임차인대표회의와 임대사업자로 하여금 ▲민간임대주택 관리규약 제정 및 개정 ▲관리비 ▲민간임대주택의 공용부분·부대시설 및 복리시설의 유지·보수 ▲임대료 증감 ▲하자보수 ▲공동주택 관리에 관해 임대사업자와 임차인대표회의가 합의한 사항에 관해 협의하고, 임대사업자는 임차인대표회의가 협의를 요청하면 성실히 응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SH공사에 경비용역계약 체결을 위한 의견을 수차례 요청했음에도 아무런 의견을 표시하지 않았고 계약 체결 이후에야 반대 의견을 발송했으므로 이는 묵시적 동의’라고 반박했으나 재판부는 이 주장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에 따르면 입주자대표회의는 2018년 12월 3일 SH공사에 B사를 새 경비용역 사업자로 선정하기로 의결했다는 통보를 했고 그달 12일 SH공사는 입주자대표회의 등에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에 따른 관리비에 관한 사항을 의결할 때 단독으로 집행되는 일이 없도록 협의하라는 통보를 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경비용역계약 체결 이후 SH공사에 “2018년 12월 31일까지 기다렸으나 회신이 없어 기존 경비회사와 신규경비회사 경비업무 인수인계를 하고 경비용역계약을 체결한 것이고, 임차인대표회의와 협의를 하라는 귀사의 조치는 부당하며 귀사가 임차인대표회의와 협의한 후 의견을 달라”고 통보했다.

SH공사는 2019년 1월분 경비용역비가 B사에 지출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경비용역계약 변경에 대해 동의한 사실이 없고 관리주체 단독으로 체결된 계약은 무효이며, 관리주체가 선정한 B사에 경비용역비가 집행될 수 없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SH공사는 경비용역계약 반대 의사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며 “설령 명시적인 반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를 묵시적 동의에 해당한다고 보려면 SH공사가 경비용역계약 체결에 관해 이의를 유보하지 않고 계약 체결 및 경비용역 집행 등을 장기간 수용했을 정도에 이르러야 하나 이러한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에 따라 “이 경비용역계약은 공동주택관리법 및 시행령을 위반해 피고 입주자대표회의가 단독 체결했으므로 효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이 같은 판결에 입주자대표회의는 항소는 하지 않기로 하면서도, “공동 결정의 주체인 SH공사는 입주 후 지금까지 입주자대표회의의 의결사항을 통지 받고 대부분 찬반의견을 내지 않아 우리 측에서는 SH공사의 구체적인 반대 의견이 없으면 묵시적 동의로 보고 관리업무를 진행해왔다”며 “전례에 비춰 경비용역업체 계약 당시에도 수차례 가부 의견을 요청했으나 SH공사가 공식적인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 않아 경비업무에 공백이 없도록 기존 업체와의 계약 만료일에 신규 업체와 계약을 체결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현행법에 따라 입주자대표회의가 소유자이면서 거주민의 대표로서 단지 관리에 있어 책임을 져야 하는 구조인데도, 소유만 하고 있는 임대사업자가 거주민을 대표하지 못하면서 관리업무의 합의 주체가 돼 있다”며 혼합단지 관리에 대해 법과 현실에 괴리가 있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반면, 임차인대표회의 측은 “임차인도 관리비를 내고 있는데, 왜 관리에 관한 합의 권한이 임차인대표회의가 아닌 SH공사에게 있냐”면서 입주자대표회의와의 합의 주체는 임대사업자가 아닌 임차인대표회의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번 판결에 대해 입주자대표회의와 B사 모두 항소를 제기하지 않아 지난 19일 그대로 확정됐으나, 현재 경비업체 B사 소속 경비원, 임차인대표회의와 별개 계약을 체결한 경비원 G·H씨의 인건비 미지급 문제가 불거져 갈등은 현재 진행 중이다. 이번 판결로 관리사무소에서 자의적으로 비용 집행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대신 B사가 소속 경비원에 인건비를 지급했고 경비원 G·H씨는 여전히 인건비를 받지 못하고 있어 추후 인건비를 둘러싼 법적 다툼이 예상되고 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미지급금으로 보관하고 있던 경비용역비를 지급하겠다고 밝혔으나, 임차인대표회의는 판결 결과에 따라 모든 인건비 미지급에 입주자대표회의의 책임이 있다며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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