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지법 판결...“위임기관인 대표회의가 새로운 지출항목 창설 안 돼”

[아파트관리신문=고경희 기자]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님에도 퇴직위로금을 받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에게 법원이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 대표회장은 퇴직위로금 지급이 입주자대표회의 의결을 거친 것이어서 정당하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위임기관인 대표회의가 정해지지 않은 새로운 지출항목을 창설할 수는 없다고 일축했다.

청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윤성묵 부장판사)는 최근 관리비를 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할 수 없음에도 관리비에서 퇴직위로금을 지급받은 충북 청주시 A아파트 전 입주자대표회장 B씨에 대한 업무상배임 항소심에서 “피고인 B씨를 벌금 300만원에 처한다”는 1심 판결을 인정, B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A아파트 관리규약에 따르면 관리비 및 사용료의 집행은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승인받은 예산에 따라 관리비를 집행할 업무상 임무가 있으며, 관리비 등은 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

2017년 7월 B씨는 2011년부터 2016년 9월까지 대표회장으로 재직하면서 활동비 명목으로 월 90만원씩 지급받은 돈이 과세대상으로 확정돼 근로소득세 680만원을 납부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이에 B씨는 대표회의 임원 5명과 관리비에서 퇴직위로금을 지급해 근로소득세를 보전하기로 공모했다.

B씨와 임원들은 그달 운영위원회회를 소집해 ‘B씨 퇴임 관련 퇴직위로금 지급 건’에 대해 B씨 퇴직 후 800만원을 지급하기로 의결했고 이를 가결시켜 같은 달 관리비 계좌에서 800만원을 인출해 B씨에게 지급했다.

이에 검사는 “B씨는 대표회의 임원들과 공모해 업무상 임무를 위배해 800만원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고 아파트에 손해를 가했다”면서 B씨를 기소했다.

B씨는 “800만원은 퇴직금 또는 퇴직위로금 등의 성격으로 정당하게 취득한 것”이라고 반박했으나 1심 재판부는 “피고인 B씨를 퇴직금을 지급받을 근로자로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피고인 B씨의 업무집행에 대한 퇴직위로금 등 성격의 보수로 보더라도 관리규약에서 정한 대표회의 예산승인 등 정당한 절차를 거쳤다고 보기 어렵다”며 3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 같은 판결에 B씨는 “대표회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매월 지급받은 활동비에 대해 근로소득세 부과처분을 받아 본인은 근로자라고 할 것이어서 퇴직금을 지급받을 권리가 있고 이에 대해 대표회의 결의까지 거친 이상 부당한 이득을 취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항소를 제기했으나, 2심 재판부도 같은 판단을 했다.

2심 재판부는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르면 입주자대표회의는 입주자 등의 선거로 선출된 동대표들로 구성되고 공동주택의 관리에 관한 주요사항을 결정하는 자치 의결기구로, 구성원인 동대표들은 입주자 등으로부터 일정한 사무처리를 위임받고 있는 것이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근로를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고용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고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또한 “소득세법에 따른 근로소득은 지급형태나 명칭을 불문하고 성질상 근로 제공과 대가관계에 있는 일체의 경제적 이익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근로 대가 외에도 근로를 전제로 밀접히 관련돼 근로조건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 급여도 포함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임금과는 개념이나 범위를 달리한다”며 “대표회장이 관리규약에 따라 지급받은 월정 활동비가 근로소득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회장이 근로자인지 여부와는 논의의 평면을 달리하는 것이며, 과세관청이 피고인 B씨에게 지급된 활동비를 과세대상으로 파악해 근로소득세를 부과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 B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거나 오인할 만한 근거가 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대표회의는 공동주택관리법 및 관리규약이 정한 바에 따라 관리주체의 관리비 등에 관한 예산 수립과 집행 및 결산 등을 감독하는 위임기관에 불과할 뿐, 관리규약으로 규정되거나 수립된 예산의 지출 항목으로 편성된 바도 없는 새로운 지출항목을 스스로 창설해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비춰 재판부는 “대표회장인 피고인 B씨는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근로기준법상의 퇴직금 청구권이 인정되지 않고, 그밖에 공동주택관리법이나 관리규약 또는 승인된 예산안에도 대표회장에 대해 퇴직금을 지급할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다”며 “피고인 B씨가 자신에게 부과된 근로소득세를 보전 받기 위해 다른 구성원들과 공모해 퇴직위로금 명목으로 800만원을 지급받은 행위는 업무상 배임행위에 해당하고 설령 그에 관해 아무런 권한이 없는 대표회의의 결의절차를 거쳤다고 해도 이 행위가 정당화되거나 배임 범의가 부인될 수 없다”고 못 박으면서, B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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