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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란 칼럼] 관리계약 해지, 언제나 자유롭게 할 수는 없다
승인 2019.08.29 09:34|(1258호)
법무법인 산하 김미란 변호사

법리(法理)란 법률의 원리, 즉 법적인 이치를 뜻한다. 법적인 판단은 응당 법리를 따져 논리적인 결론에 다다르는데, 간혹 같은 사안인 듯 보이는데도 달리 판단되는 것처럼 느껴져 혼란스럽기도 하다. 같은 법리를 적용하고도 결론이 다르다면 그것은 언뜻 같아 보여도 사실은 전혀 다른 사안일 테지만 그 판단이 참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아파트 관리 현장에서 가장 빈번하게 이뤄지는 계약은 바로 위·수탁 관리계약일 것이다. 그만큼 빈번한 것이 위·수탁 관리계약의 해지고, 이를 둘러싼 분쟁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런 분쟁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당한 쪽에서 부당한 해지라며 다투게 마련이고, 일방적인 계약해지를 당하는 쪽은 대체로 주택관리업자다. 계약을 해지하는 측에서는 늘 상대방의 채무불이행을 문제 삼는 것도 대부분의 사안에서 비슷하게 반복된다. 비슷한 유형의 분쟁이 계속되다 보면 판례 역시 같은 법리를 적용해 비슷한 판결을 쏟아낸다.

최근에도 한 주택관리업자가 입주자대표회의의 일방적인 계약의 해지는 위법하다면서 소를 제기했다. 아파트의 위·수탁 관리계약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주택관리업자에게 아파트를 위탁해 관리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는 것으로서 법적 성질은 민법상 위임계약에 해당한다. 민법 제689조는 ‘위임계약은 각 당사자가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고(제1항), 당사자 일방이 부득이한 사유 없이 상대방의 불리한 시기에 계약을 해지한 때에는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제2항)’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위임계약의 성질을 갖는 위·수탁 관리계약은 언제든지 당사자가 이를 해지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상대방이 손해를 입더라도 배상할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오직 상대방이 불리한 시기에 부득이한 사유 없이 해지한 경우에 한해 손해를 배상할 의무를 지게 되기 때문이다.

위 사안은 입주자대표회의의 주장과 달리 주택관리업자에게는 채무불이행 등 해지사유가 없었고, 최고조차 없어 절차상으로도 위법한 해지였다는 점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심 법원은 위임계약 해지의 자유 법리를 그대로 적용해 임의해지로서는 적법한 해지고, 약정된 손해배상 역시 과다하다며 감액했다(인천지방법원 2019. 5. 31.선고 2018가합57277판결 참조).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파트는 주택관리업자의 채무불이행을 주장하며 계약을 해지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설사 채무불이행이 아니라고 밝혀져도 임의해지로서는 적법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불리한 시기에 부득이한 사유 없이 해지한 때에만 손해를 배상하면 그뿐이다. 해지는 자유롭다.

그러나 위임계약 해지의 자유를 규정한 민법 제689조는 임의규정에 불과한 만큼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며 전가의 보도인양 함부로 쓰여서도 안 될 것이다. 임의규정은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배제되거나 변경이 가능한 규정으로서 당사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행되는 강행규정과는 다르다. 즉, 당사자는 약정에 의해 얼마든지 해지의 자유를 규정한 위 민법 규정의 적용을 배제할 수 있고, 그 내용을 달리해 정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대법원은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이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자와 체결한 계약의 해지가 문제된 사안에서 위 계약이 민법상 위임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도록 돼 있으나 당사자가 해지 사유 및 절차, 손해배상책임 등에 관해 민법 제689조와 달리 약정했다면 이를 단순히 주의적인 성격의 것이라고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대법원 2019. 5. 30. 2017다53265 판결 참조).

이러한 약정은 당사자에게 효력을 미치면서 서로간의 법률관계를 명확히 함과 동시에 거래의 안전과 이에 대한 각자의 신뢰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이므로 민법 제689조 제1항, 제2항이 위 약정과 별개 독립적으로 적용된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 약정에서 정한 해지사유 및 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계약을 해지할 수 없고,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당사자 간 법률관계 역시 약정에 따라 규율된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위 사안에서 일정한 사유가 발생해 계약을 이행할 수 없는 경우와 같이 채무불이행에 관련한 해지 사유를 열거하고 있고, 충분한 계약이행 기간을 정해 서면으로 통보한 후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해지절차를 규정하고 있는 점, 계약을 일방적으로 종료시키는 경우를 손해배상책임의 발생 원인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도 민법 제689조와는 양립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봤다.

결국 대법원은 위 계약에 포함된 당사자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약정에 의해 임의규정인 민법 제689조 제1항, 제2항의 적용이 배제됐는지 여부에 대해 아무런 심리도 하지 않은 채 위 민법 규정을 그대로 적용한 원심 판단은 임의규정 적용을 배제하기로 하는 당사자의 의사표시 해석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원심 법원으로 환송했다.

위임의 성질을 갖는 계약은 양 당사자 간 신뢰가 근간이 되므로 원칙적으로 해지의 자유가 있다. 그러나 이는 임의규정에 불과하므로 약정에 의해 이를 배제할 수 있고 일정한 경우에만 해지할 수 있도록 정할 수 있다. 이것이 위임계약의 해지를 둘러싼 법리이다.

앞선 본 사안은 어땠을까? 문제된 위·수탁 관리계약에도 채무불이행에 준하는 해지사유는 정해져 있었고, 30일 전에 서면으로 통보하는 등 해지 절차도 있었으며, 계약 만료 전에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는 상당한 손해를 배상하도록 약정돼 있었다. 그러나 1심 법원은 위임계약에 해지사유가 정해져 있다는 사정만으로 위임인이 해지권을 포기하기로 약정하거나 해지권 남용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리는 같다. 결론은 반대다. 과연 정말 사안이 다른 것일까?

위·수탁 관리계약이 위임계약이라는 미명하에 일방적인 해지를 당하지 않으려면 해지사유와 해지 절차, 손해배상책임을 어떻게 약정해야 할지 많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이런 고민을 안긴다는 것만으로도 수범자 입장에서 사법부의 판단은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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