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확정 판결

[아파트관리신문=고경희 기자] 건물 앞 통행로에 설치된 자동차 진입억제용 말뚝에 차량을 피하려던 보행자가 걸려 상해를 입은 것에 대해 말뚝의 높이, 재료가 보행자 안전에 적합하지 않다며 입주자대표회의에 일부 책임이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2민사부(재판장 박영호 부장판사)는 서울 강남구 A집합건물 주차장 진입로에 설치된 말뚝에 걸려 넘어져 다쳤다며 이용객 B씨가 이 건물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피고 대표회의가 원고 B씨에게 1428만여원을 지급하도록 한 제1심 판결 중 720만여원을 초과해 지급을 명한 피고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이에 해당하는 원고 B씨의 청구와 피고 대표회의의 나머지 항소를 기각한다”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A건물 앞에는 통행로가 있고 통행로를 가로질러 도로에서 이 건물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있었는데, 진입로 양쪽에는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차량이 인도에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높이 약 30㎝의 길말뚝 2개가 설치돼 있었다.

2016년 1월 B씨는 식사를 마치고 A건물 통행로를 지나던 중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차를 피하려다가 말뚝에 걸려 넘어져 슬개골 골절 등의 상해를 입었다.

이에 B씨는 “피고 대표회의가 보행자들이 제대로 볼 수 없게 30㎝ 돌로 된 말뚝을 통행로에 설치함으로써 관리책임이 있는 시설물을 제대로 설치·관리하지 못한 과실이 있고 본인이 차량을 피하려다가 말뚝에 걸려 넘어져 상해를 입었으므로 손해배상책임이나 통행로 및 말뚝의 설치·보존상의 하자에 대해 점유자로서 책임을 부담한다”며 대표회의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대표회의는 “사고는 B씨와 차량의 공동과실에 의한 것이고 말뚝에 어떠한 하자가 있다고 볼 수 없으며, 설령 하자가 있더라도 사고와 하자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사람이 많이 다니는 좁은 통행로에 눈에 잘 띄지도 않고 단단한 돌로 된 길말뚝을 설치한 것은 보행자의 안전에 매우 위험한 장애물이 되므로 피고 대표회의의 설치 및 보존상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도 “원고 B씨도 차량을 피할 때 주위를 잘 살펴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야 함에도 그렇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으므로 일부 책임이 있다”며 대표회의의 과실을 70% 인정했다.

이러한 판결에 대표회의는 항소를 제기, 2심 재판부는 대표회의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대표회의의 책임을 30%로 제한했다.

우선 재판부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시행규칙은 보행안전시설물의 구조 시설기준 중 자동차 진입억제용 말뚝의 높이를 80~100㎝로 하고 보행자 등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되, 속도가 낮은 차량의 충격에 견딜 수 있는 구조로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피고 대표회의에 법률이 그대로 적용된다고 볼 수는 없으나 법률 및 시행규칙에서 정한 보행안전시설물의 구조 시설기준은 말뚝 하자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이를 토대로 “A건물 말뚝 높이는 30㎝ 정도로 보행자가 쉽게 말뚝을 보지 못할 가능성이 존재해 보행자의 안전을 최대한 고려해 설치됐다고 보기 어렵고 재질도 보행자 등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재료로 보기 어렵다”며 “피고 대표회의는 통행로 및 말뚝을 설치·보전하면서 방호조치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설치 또는 보존상의 하자는 적어도 원고 B씨가 입은 상해의 원인이 됐으므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한 시간은 대낮으로 원고 B씨가 말뚝을 보는데 시야의 방해가 될 수 있는 다른 사정이 존재하지 않았고 좀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으로, 말뚝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원고 B씨의 부주의가 사고의 주된 원인으로 보인다”며 “말뚝 설치 당시 건축주는 행정기관의 지도에 따라 말뚝을 설치하고 건물 사용승인을 받았으며, 당시 자동차 진입억제용 말뚝의 규격, 높이, 재질 등에 관한 기준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사고 경위 등의 사정을 고려해 치료비 등 B씨의 재산상 손해에 대한 대표회의의 책임을 30%로 제한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피고 대표회의는 원고 B씨에게 손해배상으로 재산상 손해액 220만여원과 위자료 500만원을 합한 720만여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한편, 이 판결은 B씨와 대표회의 모두 상고를 제기하지 않아 지난달 7일 그대로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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