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북부지법 판결

서울북부지법

[아파트관리신문=서지영 기자] 아파트 잡수입으로 입주민들을 위한 잡곡을 사들이면서 더 싸게 구입할 수 있었음에도 한 업체와 수의계약해 시중 가격보다 비싸게 산 아파트 관리소장과 임차인대표회장 등이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북부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이헌숙 부장판사)는 업무상배임 혐의로 기소된 서울 노원구 A아파트 전 관리소장 B씨, 전 임차인대표회장 C씨, 전 임차인대표회의 총무 D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이들에게 벌금형을 선고한 제1심 판결을 깨고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B씨 등은 2015년 1월 6일경 ‘알뜰시장, 재활용품, 전파수입 등의 방법으로 모아온 관리 외 수입으로 양질의 혼합 잡곡을 싼값에 사들여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제공’하기로 한 임차인대표회의 의결 사항을 집행함에 있어 공개입찰을 통해 잡곡을 구입하거나 혼합 잡곡 제조판매자인 농협으로부터 직접 잡곡을 구입하는 등의 방법으로 적정한 가격에 혼합 잡곡을 구매해야 할 업무상 임무가 있었다.

그런데 검찰은 “피고인들은 공모해 2015년 1월 19일경부터 26일경까지 사이에 혼합 잡곡 제조, 판매자인 농협만이 참여할 수 있도록 자격을 제한해 입찰을 실시한 사실이 있으므로 농협으로부터 직접 구입할 경우보다 싼 가격에 잡곡을 구입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충주 농협에서 납품을 받아 잡곡을 판매하는 중간유통업자인 F씨가 운영하는 E사가 재산상 이득을 취득하도록 하기 위해 2015년 1월 30일경 관리사무소에서 E사와 사이에 수의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소사실을 밝혔다.

B씨 등은 E사와 ‘서충주 농협에서 제조, 판매하는 달래강 혼합 잡곡 15곡(이하 ‘이 사건 잡곡’) 총 2600포(1포 4㎏)를 1포당 2만8500원, 합계 7410만원에 구입하는 계약’을 수의계약 형식으로 체결하고, 2015년 2월 5일경부터 12일경까지 사이에 3회에 걸쳐 혼합 잡곡 2570포를 교부받았으며, 그해 2월 6일경부터 E사에 잡곡 대금으로 5700만원을, 그해 3월 16일경 1590만3000원을 각각 송금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이 사건 잡곡은 F씨가 서충주 농협 H사업소로부터 1만360원에 납품받은 것이었으며, 이 사건 무렵 서충주 농협 하나로마트와 하나로클럽 I점에서 각각 1만8000원(박스 포장 포함), 2만100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이에 원심은 “피고인들이 이미 계약체결 이전에 이 사건 잡곡의 시장가격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농협이 아닌 E사와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더 높은 가격으로 계약이 체결되는 사실 또한 알고도, E사와 계약을 해 E사에 계약상 적어도 2184만5000원{8500원(2만8500원-2만원)×2570포} 상당의 이득을 얻게 하고, A아파트 입주자들에게는 동액 상당의 손해를 입게 했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검찰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 관리소장 B씨에게 200만원 임차인대표회장 C씨에게 500만원, 임차인대표회의 총무 D씨에게 400만원의 벌금형을 내렸다.

원심은 그 근거로 ▲특정된 이 사건 잡곡과 관련해 피고인 임차인대표회장 C씨가 F씨에게 연락했다고 보이는 점 ▲피고인들이 대량인 2570포에 대한 납품계약을 체결하면서 도매가가 아닌 소매가에 대해서만 시장조사를 하는 것은 이례적으로 보이는 점 ▲피고인 B씨가 작성한 E사를 수의계약대상으로 한 ‘주민화합을 위한 혼합 15곡미 구입계약’ 내부문서상에도 ‘계약금액은 수의시감을 통해 시장조사 가격을 참고해 부대비용 포함 최소비용으로 결제예정’이라고 기재돼 있어 E사가 납품하는 이 사건 잡곡에 대한 시장조사가 충분히 가능했던 점 ▲그러나 피고인 B씨, C씨가 한 시장조사에는 소매가가 낮은 이 사건 잡곡에 대해서만 그 조사가 누락된 점 ▲E사의 경우 이 사건 계약으로 인해 통상의 이익률보다 훨씬 상회하는 이득을 얻은 점 등을 들었다.

그러나 B씨 등은 “이 사건 잡곡을 구매함에 있어 정상적인 절차나 과정을 거쳤고, E사 대표인 F씨나 서충주 농협 직원인 G씨에게 속아 결과적으로 시가보다 비싸게 잡곡을 구매한 것”이라며 항소를 제기했다.

2심 재판부, “배임 고의 없어”

이에 2심 재판부는 “아무리 늦어도 피고인 관리소장 B씨가 수의계약 방식으로 이 사건 구매계약을 체결할 무렵에는 구매의 목적물이 ‘이 사건 잡곡’으로 특정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으므로, 2015년 1월 6일자 임차인대표회의 의결에 따라 잡곡에 관한 구매업무를 담당하게 된 피고인 B씨로서는 위 구매계약을 체결하기 전 별도 시장조사 등을 통해 F씨가 제시한 이 사건 잡곡의 1포당 가격인 ‘2만8500원’이 적정한 것인지에 대해 확인해야 했는데도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E사로 하여금 통상의 판매보다 높은 이익(납품 가격의 약 1.8배)를 얻게 한 점이 인정되기는 한다”면서도 1심 재판부와 다른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피고인 관리소장 B씨가 이 사건 구매계약을 체결하는 행위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춰 업무집행의 통상 범위를 현저히 일탈했다거나 위 피고인에게 배임의 고의 내지 불법이득의 의사가 있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이 사건 잡곡의 구매계약에 이르게 된 경위나 과정에 비춰 볼 때, 피고인 관리소장 B씨가 이 사건 구매계약을 체결함에 있어서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 등 관련 법령이나 규정에서 정한 절차를 위반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2015년 1월 6일자 임차인대표회의 의결에서 구매의 목적물인 혼합 잡곡의 브랜드나 잡곡의 구성 품목, 비율 등이 세부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었으므로, 피고인 관리소장 B씨가 입찰 공고 전·후에 이 사건 잡곡을 뺀 6개 혼합 잡곡의 소매가격만 조사했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에 어떤 주의의무 위반이나 위법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더구나 피고인 B씨는 이 사건 구매계약 체결 전 공고를 통해 입주민들에게 구매계약 체결의 과정이나 혼합 잡곡의 시장가격 등을 상세히 알렸는데, 그 과정에서 주민들로부터 별다른 의견이 제출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B씨가 이 사건 구매계약을 체결하기 전 이 사건 잡곡의 시장가격에 대해 별도로 조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F씨를 농협 직원으로 착각해 믿었고, F씨로부터 제시받은 이 사건 잡곡의 가격이 기존의 견적가격이나 입찰가격, 비슷한 상품의 소매가격보다 낮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수긍할 만한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F씨가 이 사건 아파트에 방문할 때마다 서충주 농협 H사업소 담당 직원인 G씨와 함께 왔고, F씨의 진술에 따르면 당시 F씨는 피고인들에게 자신을 ‘서충주 농협 H사업소 팀장’으로 소개하며 위 직책으로 된 명함을 사용하기도 한 점 ▲관리소장 B씨가 이 사건 구매계약 당시 제시받은 가격인 1포당 2만8000원은 기존 견적가격인 1포당 3만2000원이나 입찰가격인 1포당 2만9500원, 혼합 잡곡(15곡) 4㎏들이 6개 상품의 평균 소매가격인 3만1536원보다 낮았던 점 ▲B씨가 사전에 이 사건 잡곡의 원가나 소매가격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볼 만한 별다른 자료가 없는 점 등을 들었다.

또한 재판부는 “피고인 관리소장 B씨가 F씨를 알게 된 경위 등에 비춰 B씨가 이 사건 구매계약을 통해 F씨에게 많은 이익을 얻게 할 별다른 이유나 동기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이 사건 잡곡의 구입은 임차인대표회의 의결에서 정해진 사항을 집행하는 것이어서 피고인 임차인대표회장 C씨, 임차인대표회의 총무 D씨에게 실질적인 어떠한 권한이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 점 ▲피고인 관리소장 B씨가 자기의 권한으로 시장조사, 공고 등 잡곡 구입에 필요한 절차를 진행했고, 아파트를 대표해 이 사건 구매계약을 체결했던 점 등에 비춰, “피고인 C씨와 D씨가 이 사건 아파트 임차인들의 잡곡 구입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이들이 업무상 배임죄의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지 않음을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이 사건 공소사실은 모두 범죄의 증명이 부족한 경우에 해당해, 위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 판결에는 사실을 오인했거나 배임의 고의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피고인들의 주장은 모두 이유 있어 항소 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피고인들에게 각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저작권자 © 아파트관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