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김미란 칼럼] 진료는 의사에게, 소송은 변호사에게
승인 2018.09.14 09:20|(1212호)
법무법인 산하 김미란 변호사

며칠 전 법률상담을 요청해 온 분이 계셔서 시간을 내어 드린 적이 있다. 그 분은 위탁관리 업계에서 잔뼈가 굵으신 터라 공동주택이나 집합건물 관리를 둘러싼 여러 분쟁의 내막이나 소송 외적인 해법에 꽤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분쟁의 속성상 법적인 문제로 비화되기 쉬우니 그 분야에 아무리 일가견이 있다 해도 법률문제까지 스스로 해결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변호사를 찾은 것 아니겠는가.

문제는 변호사를 찾더라도 너무 늦지 않게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건이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태에서는 수습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다 간혹 수습되지 않는 경우도 왕왕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상담한 소송 건이 그러했다.

이 분이 소속된 위탁관리업체는 어느 집합건물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최근 이 집합건물의 구분소유자 중 하나인 A가 관리단 집회를 통해 새로이 관리인으로 선임됐다고 주장하면서 꽤 골치를 썩게 됐다. 이 업체는 A때문에 위 건물의 관리업무를 도저히 할 수 없는 지경까지는 아니었지만 A가 관리단 대표 행세를 하면서 관리사무소로 매번 찾아와 시덥잖은 일을 시키는 통에 상당히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 많았다. 그런데 조사를 해보니 A가 주장하는 바와 달리 적법한 관리단 집회가 개최된 적도 없었고, 그 밖에 관리인 선임을 위한 서면 결의로 볼만한 사정도 없었다. 이와 같은 사실이 드러나자 더 이상 귀찮게 구는 A에게 시달리기 싫어서였는지 이 업체는 덜컥 관리인 선임 결의 무효 확인의 소를 제기했던 것이다. A를 상대로 말이다.

이 업체는 원고 스스로 직접 소송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소를 진행했지만 A는 변호사를 선임해 적극적으로 다퉈왔다. 원고는 첫 변론기일에서 재판부로부터 한 소리 듣게 됐다면서 이 소송의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 상의하고 싶어 했다. 원고가 재판부로부터 들었을 법한 이야기는 뻔하다. 원고 적격, 피고 적격, 확인의 이익 그런 문제를 지적받았을 것이다.

확인의 소는 그 청구에 대하여 확인의 이익을 가진 자가 원고적격이 있고, 원고의 이익과 대립·저촉되는 이익을 가진 자가 피고 적격을 갖는다. 관리인을 선임한 관리단 집회의 결의가 무효라는 확인을 구하는 소송은 관리단이라는 단체의 내부분쟁에 해당한다. 이 경우 관리단 집회 결의의 효력 여부를 확인해 줄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피고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피고는 해당 단체이지 대표자 개인이 아니므로 단체를 피고로 삼지 않고, 문제된 결의로 선출된 대표자 개인을 피고로 삼게 되면 확인의 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된다(대법원 1973. 12. 11. 선고 73다1553 판결, 대법원 1998. 11. 27. 선고 97다4104 판결 등 참조).

따라서 이 사건은 애초에 잘못된 피고를 지정한 탓에 소를 취하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일 것이나 이 역시 쉽지 않다. 상대방이 본안에 관해 준비서면을 제출하는 등 다툰 이상 상대방의 동의를 받지 않고서는 소를 임의로 취하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피고가 변호사까지 선임해 적극적으로 다투고 있으므로 소 취하에 동의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결국 소는 각하될 것이고, 상소해 다투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소송비용은 패소자가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니 이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면 소송비용확정신청절차에 따라 상대방이 응소하느라 지출한 변호사 보수 등 일정 금액을 상대방에게 환급해 줘야 할 것이다. 함부로 소송을 제기한 결과는 이렇게 쓰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입주자대표회장과 관리소장이 동대표 선거에서 낙선한 자가 소를 제기했다면서 상담을 온 적이 있었다. 과거와 달리 후보자가 복수인 경우라도 해당 선거구 전체 입주자 등 과반수 투표가 필요한데(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제11조 제1항 제1호) 종전 관리규약 그대로 선거가 진행돼 단순히 최다득표자가 당선된 사실이 문제됐다. 이 선거에서 낙선한 후보는 당선된 사람을 상대로 해당 선거의 무효 확인을 구하는 소를 제기했고, 선거관리위원회를 상대로 직무집행정지가처분을 신청했다.

법령에서 정한 방식과 달리 동대표를 선출한 것은 분명 위법했으나 이들은 이 소송이나 가처분 사건에서 승소할 공산이 컸다. 상대방이 피고를 잘못 지정한 덕분이다. 선거 무효 확인을 구하려면 피고는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했어야 하고, 직무집행정지가처분을 신청하려면 피신청인은 당선된 그 후보자를 지정했어야 한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원칙적으로 입주자대표회의의 내부 산하기관에 불과하므로 별도의 당사자 능력도 인정되지 않는 터였다. 어느 모로 보나 상대방이 제대로 된 피고를 지정하지 못한 덕분에 분명 문제가 있는 선거였음에도 소송에서는 어부지리 승소를 하게 될 사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부디,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소송은 제발 변호사에게 맡겨주기를 바란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아파트관리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미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채용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학의로 282(금강펜테리움 IT타워) A동 21층 2107호  |  전화 (02)873-1114  |  팩스031-423-1143
발행인 : 김한준  |  편집인 : 홍창희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창희
Copyright © 2007-2018 아파트관리신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