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아파트 관리 위탁계약 시 ‘대표회의 임금 결정 권한’은?

급여결정권 관리업체에 있으나
관리비 출금·회장 날인 이유로
대표회의에 결정권 있다 오인

직원 임면 등 간섭하기도

미지급 시 책임은 관리업체에
‘부당한 현실’ 잇따른 지적

[아파트관리신문=서지영 기자] 아파트와 주택관리업체가 위·수탁 도급계약이 아닌 위탁계약을 맺는 경우, 관리소장은 주택관리업체와 근로계약을 맺지만 급여는 매월 입주자대표회의 결재에 따라 아파트 관리비 통장에서 지급되고, 관리업체는 아파트로부터 위탁수수료만 받는다. 관리소장의 근로계약서상 급여는 관리회사가 대표회의와 협의 후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대표회의가 소장 임금을 미지급하거나 기존에 정해진 임금보다 적게 지급할 경우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서울 구로구 A아파트에 근무하는 관리소장 B씨는 지난 6월 주택관리업체 C사와 월 급여 280만원에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A아파트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그런데 입주자대표회장이 근로 시작 10여일이 지난 후 갑자기 급여를 250만원으로 수정해 급여지급기안 결재를 올리도록 하고, 다음달에는 대표회의가 긴급회의를 통해 200만원으로 삭감토록 의결해 피해를 입고 있다고 토로했다.

첫 달에는 우여곡절 끝에 임시회의 의결에 따라 기존에 정해진 대로 280만원을 지급받았지만 급여지급기안을 수정하지 않고 직원 연차휴가 사전사용 승인 등을 이유로 대표회장이 날인을 거절하는 바람에 급여지급일인 6월 30일이 지난 7월 5일에야 지급을 받게 됐으며, 다음 달 급여는 삭감된 200만원밖에 지급받지 못했고, 이 또한 하루가 지나 받았다는 설명이다.

B씨는 “전임 관리소장이 법령에 위반한 옥상방수공사 수의계약 집행과 관련해 구로구청에 접수했던 민원의 회신이 관리사무소에 도착해 대표회의에 전달하자 이를 현 소장인 내가 제기한 것으로 오해해 이에 대한 보복으로 1차 급여를 삭감토록 했고, 나 또한 법령 위반을 이유로 수의계약 집행과 입찰공고를 거절하자 2차 급여 삭감을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B씨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관악지청에 체불고발을 하고, 구로구청에 관리소장 업무에 대한 부당간섭 사실조사 의뢰를 한 상태다. B씨의 소속 관리업체는 임금 삭감 후 B씨의 문의에 “관리계약 기간 만료 후 소송 등을 통해 대표회의로부터 미지급분을 받아 전해주겠다”고 답했지만 계약 기간이 3년 남은 상태에서 계속해서 적은 임금을 받으며 생활할 생각에 B씨는 막막함을 느꼈다. 그러던 와중에 대표회의는 B씨가 일을 잘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C사에 관리계약 해지 통보를 해 8월 말 새 주택관리업체 선정 입찰을 진행하게 됐다.

B씨는 “공동주택이 주택관리업체에 의해 관리되는 위탁관리일 경우에는 위탁관리업체가 관리소장에 대한 근로계약체결권을 보유하고 이에 따라 급여결정권도 보유하므로 대표회의는 관리소장 급여 결정권한이 없음에도, 이 아파트 대표회의는 관리소장의 급여가 관리비예치금통장에서 지급된다는 이유로 대표회가 관리소장의 급여결정권을 갖는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법원은 관리직원 임금 등과 관련된 판결에서 “대표회의가 관리직원에 대한 임금을 관리비 예치비 계좌에서 지급한 것은 위탁관리회사 명의의 계좌를 거치는 번거로움을 피하고 관리직원들에 대한 임금지급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며, 관리계약이 관리직원 임금지급 등 관리비 지출에 관한 예산안에 대해 대표회의의 승인을 받도록 정하고 있는 것은 관리소장에게 위임된 관리비의 지출 등 업무에 대해 대표회의에 관리·감독권을 부여하는 취지인 것으로 봄이 타당하고, 대표회의가 관리직원에 대한 사용자의 지위에서 그 임금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또 B씨는 “만약 대표회의가 관리소장의 사용자로서 급여를 결정한다 하더라도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교부해야 할 것인데, 대표회의와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바도, 대표회의로부터 근로계약서를 교부받은 바도 없다”며 “이는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정당한 사용자라도 근로자의 급여를 자신들의 마음대로 삭감할 수 없으며 일방적인 급여삭감 또한 근로기준법 위반 행위다”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B씨는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제23조(관리비 등) 제7항은 관리비예치금 관리계좌에 관리소장 직인 외에 대표회장 인감을 복수로 등록할 수 있도록 규정해 대표회장에게 관리소장의 자금집행을 견제 또는 감독할 수 있는 길을 허용하고 있다”며 “관리소장이 관리직원의 급여를 집행하는 권한을 보유하고 있으나 대표회장은 관리비예치금 계좌 인감 복수 등록과 인출서 날인을 통해 사실상 관리소장의 인건비 집행권한을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있으므로 대표회장도 사용자 또는 준사용자 지위를 인정함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관리소장이 급여 지급에 관한 모든 조치를 이행하고 회장이 최종 인출서에 날인하지 않아 임금체불이 발생했을 경우 사용자인 관리주체가 근로기준법에 따라 처벌을 받고 대표회장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임금체불에 아무런 귀책사유가 없는 자가 처벌을 받고 귀책사유자는 처벌을 면하는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한다”며 “이 아파트와 같이 공동주택 관리직원에 대한 인건비 지급과 관련해 체불이 발생할 경우에는 인건비 지급에 관련된 관리주체(위탁관리업체)와 입주자대표회의 중 귀책사유가 있는 자가 사용자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3월 대법원 민사3부는 서울 노원구 D아파트 위탁관리를 맡았던 E사가 고용노동청의 시정지시에 따라 이 아파트 전 관리소장 F씨에게 지급한 미지급 임금 및 연차수당 등과 관련해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제기한 구상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 이에 관리업계에서 “급여지급 등 위탁관리 운영 시스템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나온 비현실적인 판결”이라는 지적이 있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국토교통부에서는 위탁계약 아파트의 대표회의가 관리소장 등 관리직원 급여를 직접 지급하고 임금 인상률 등을 결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관리사무소 직원의 임금인상률 등의 결정은 위·수탁관리계약서에서 정하는 절차와 방법에 따라야 할 것으로 판단되고, 이 경우 관리비 부담주체인 입주자 등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관리규약 및 계약사항 등으로 정하도록 유권해석한 바 있다.

한편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제14조 제5항에 따르면 입주자대표회의는 주택관리업자가 공동주택을 관리하는 경우 주택관리업자의 직원인사·노무관리 등의 업무수행에 부당하게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관리현장에서는 대표회의가 관리소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관리회사에 관리소장 교체를 요구하고, 관리회사는 계약 해지를 우려해 울며 겨자먹기로 이를 들어주는 사례가 왕왕 발생해 문제로 지적되기도 한다.

B씨는 “나와 같은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표회의의 역할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교육, 관리회사의 직원 보호 역할 강화 등이 필요하다”며 “업무 외 부당지시, 직원 인격 모독 등에 대한 감시·처벌 체계 또한 강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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