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을 둘러싼 잡음이 가시질 않고 있다.
사업자 선정지침은 주택관리업자와 관리를 하면서 필요한 유지보수 및 공사 등을 위한 사업자 등을 선정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국토교통부의 고시다.

처음 사업자 선정지침이 도입된 이유는 투명성과 공정성 확보였다. 경쟁 입찰에 의하도록 함으로써 정책 당국은 이를 제고하려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장에서 적용되는 과정에서는 문제투성이였다. 2010년 7월 6일 제정 당시부터 불합리한 기준과 보편적 타당성을 잃은 내용에 대해 공동주택 관리 관련 분야에서는 지속적으로 문제점을 지적했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 관리에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 사업자 선정지침은 이후 11차례 개정의 과정을 겪었다. 2013년엔 ‘적격심사제’로 바뀌었지만 말만 적격심사제였지 실질적으로는 최저낙찰제와 다름없이 운용됐다.

이에 관리업계에서는 폐지 또는 개정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얼개는 그대로인 채 또다시 미봉적인 땜질 처방을 하곤 했다.

최근 사업자 선정지침의 ‘입찰담합으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처분을 받은 후 6개월간 입찰참가자격을 제한한 조항’은 무효라는 법원의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이 공정위의 과징금 처분을 받은 재도장공사업체가 국토교통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고시무효확인 청구소송에서 ‘무효’ 판결을 내렸다. 지난 5월 선정지침의 이 조항이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으로 볼 수 없다며 각하한 것과 배치된 판결이라 더 주목받고 있다.

이번 소송은 사업자 선정지침의 이 규정에 의해 입찰참가 자격 제한을 받게 된 사업자가 ‘경영상 막대한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고 폐업의 위기까지 처하게 된다’며 해당 조항의 무효를 구하는 소를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법원은 이 조항이 ‘위임입법의 한계’를 넘었다고 판단했다. 우리나라 헌법은 법률에 규정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위임입법 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이는 하위 법령에 위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명확한 범위와 내용을 예상가능 하도록 표현하면서 규정해야만 한다는 내용으로, 법률에 하위법령으로 규정될 내용 및 범위의 기본적인 사항들을 최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규정해 누구라도 그 법률로부터 하위법령에 규정될 내용의 대강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고시에서 입찰담합으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처분을 받은 경우 6개월간 입찰참가자격이 제한되고 입찰참가자격이 제한된 사업자가 참여한 입찰은 무효라고 정한 것은 모법의 위임 없이 모법의 내용을 구체화하는 단계를 벗어나 새로운 입법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며 “이 사건 조항은 위임입법의 한계를 일탈한 것이어서 무효”라고 판시했다.

물론 재판부의 지적처럼 입찰담합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렇지만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법률에 의해야 한다는 헌법의 원칙을 법원이 재확인 한 것으로 이번 판결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정책 당국의 역할은 군림하고 규제하는 것이 아니다. ‘입주민들의 행복’을 위해 바람직한 제도를 만드는 것이 할 일이다. 아파트 관리라는 ‘뜨거운 감자’를 공정하고 투명하고 부패하지 않게 규칙을 잘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틀을 바로잡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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