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입찰담합으로 과징금처분 후
6개월 참가자격 제한·입찰무효 조항

상위법 위임 없이 이뤄져
위임입법 한계 일탈 판단

항고소송 대상 행정처분 아니라며
각하한 판단 뒤집어

서울행정법원

[아파트관리신문=이인영 기자]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에서 입찰담합으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처분을 받은 후 6개월간 입찰참가자격을 제한한 조항은 무효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앞서 지난 5월 선정지침의 이 조항이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으로 볼 수 없다며 각하한 것과 배치돼 추후 진행될 재판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서울행정법원 제6부(재판장 이성용 부장판사)는 지난 3일 재도장공사업체 A·B사가 국토교통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고시무효확인 청구소송에서 “피고 국토부장관이 고시한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2016년 12월 30일 국토교통부 고시 제2016-943호) 제26조 제1항 제6호는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월 서울, 경기 소재 17개 아파트 단지에서 발주한 재도장, 방수 공사 입찰에서 담합한 17개 사업자들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총 3억9700만원을 부과하고, 이 중 12개 사업자와 1명의 임원을 고발했다.

이들 사업자들은 2010년부터 2013년 기간 중 서울, 경기 소재 17개 아파트 단지에서 실시된 재도장, 방수 공사 입찰에서 사전에 낙찰 예정자와 들러리 사업자를 합의했고, 낙찰 예정자는 각 아파트 단지의 입찰이 실시될 때 마다 들러리 사업자에게 투찰할 가격을 알려줬으며, 들러리사는 전달받은 가격으로 투찰함으로서 합의를 실행했다.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 제26조 제1항 제6호에 따르면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입찰담합으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처분을 받은 후 6개월이 경과되지 않은 경우 경쟁입찰에 참가할 수 없으며 입찰에 참가한 경우에는 그 입찰을 무효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A사는 “아파트 하자보수사업을 하는 업체로서는 6개월의 입찰참가자격 제한을 받게 되면 경영상 막대한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고 폐업의 위기까지 처하게 된다”며 지난 3월, B사는 4월 각각 고시의 해당 조항의 무효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 헌법 제75조는 ‘대통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해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에 관해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다’고 규정해 대통령령으로 입법할 수 있는 사항을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해 위임받은 사항으로 한정함으로써 위임입법의 한계를 제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조항과 같이 입찰참가자격을 제한하는 규정은 사업자의 직업수행의 자유를 직접 제한하는 것이므로 입찰참가자격 제한 여부, 사유, 기간의 상한 등의 본질적인 사항은 법률로써 정해야 하고,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사항을 하위법령에 위임하더라도 법률 자체로부터 그 위임된 내용을 대강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런데 이 조항의 모범인 공동주택관리법 제25조 제2호는 ‘입찰의 방법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방식을 따를 것’이라고만 규정하고 있고,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제25조 제3항 제1호는 국토교통부 장관이 고시할 사항을 정하면서 나목에서 모법에서 규정하지 않은 ‘입찰참가자격’을 새로이 규정하는 한편, 다시 국토교통부 장관의 고시로 입찰참가자격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포괄적으로 위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재판부는 “이 고시에서 입찰담합으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처분을 받은 경우 6개월간 입찰참가자격이 제한되고 입찰참가자격이 제한된 사업자가 참여한 입찰은 무효라고 정한 것은 모법의 위임 없이 모법의 내용을 구체화하는 단계를 벗어나 새로운 입법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며 “이 사건 조항은 위임입법의 한계를 일탈한 것이어서 무효”라고 판단했다.

앞서 공정위의 시정명령 및 과징금 처분이 있은 후 재도장공사업체 C사 등 8개 사업자는 지난 2월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의 입찰참가제한 조항의 무효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서울행정법원 제2부는 5월 24일 ‘공동주택관리법령이 사업자의 입찰참가권을 직접 제한거나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라 할 수 없어, 사업자의 구체적인 권리의무에 직접적인 변동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므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으로 볼 수 없다’며 각하했다.(원고 측 항소 제기)

이에 A사가 제기한 이번 소송에서도 국토교통부는 “사업자 선정지침은 공동주택관리법령의 위임에 따라 정한 일반적·추상적 법규이므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으로 볼 수 없다”며 본안 전 항변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사건 조항의 직접적인 규율 대상이 사업자이고 행정청의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이 필요한 국가계약법령과는 달리 별도의 집행행위 없이도 직접 입찰참가자격 제한의 효력이 발생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사업자로서는 이 조항으로 인해 낙찰자로 선정될 수 없게 되는 불이익을 실질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어, 이 사건 조항은 다른 집행행위의 매개 없이 직접 사업자의 구체적인 권리의무나 법률관계를 규율하는 ‘처분적 고시’에 해당하므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을 달리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사건 원고 A사 측 변호를 진행한 법무법인 강남의 진재용 변호사는 “이 판결로 국토교통부 장관이 법률상 근거 없이 담합 참여 사업자들에게 일률적으로 6개월간 입찰 참가를 제한해 왔음이 확인됐다”며 “입찰담합은 비난받아야 하지만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법률에 의해야 한다는 헌법의 원칙을 법원이 재확인한 것으로서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판결이 확정될 경우 무효판결은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 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대세적 효력이 있으므로 과거에 입찰담합으로 과징금 처분을 받았거나 앞으로 받게 될 모든 사업자들도 해당 고시의 적용을 받지 않고 입찰 참여가 자유롭게 된다”며 “따라서 입찰담합에 가담한 사업자에 대한 제재 근거를 법률에 정하고 합리적이고 세부적인 기준을 세우는 것이 요구된다”고 주문했다.

한편, 국토교통부는 이 같은 1심 판결에 불복해 지난 20일 항소를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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