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산하 김미란 변호사

몇 해 전의 일이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안전사고가 일어나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건을 의뢰받은 적이 있었다. 피해자는 위탁관리를 맡고 있던 회사를 피고로 삼아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 관리주체가 선관주의 의무를 소홀히 해 안전사고가 일어났다는 주장이었다. 손해배상으로 청구하는 금액이 상당했기 때문에 소송을 당한 의뢰인의 입장에서는 꽤나 신경이 쓰였을 것인데, 상담 내내 전전긍긍하던 사람은 피소된 회사의 대표가 아니라 그 아파트의 관리소장이었다.

사건 당시 상황이나 안전사고와 관련해 어떻게 대비했는지 등에 대한 설명이야 직접 업무를 수행한 관리소장이 잘 알 것이므로 그의 이야기를 주로 들을 수밖에 없었지만, 어찌 됐건 사건의 당사자는 관리소장이 아니라 관리주체인 주택관리업자인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애초에 사건을 맡아달라고 온 사람도 사건의 당사자인 회사가 아니라 관리소장이었다. 변호사 없이 자체적으로 소송에 대응하겠다는 회사를 설득해 가까스로 소송을 맡기는 모양새였다. 그 사건이 변호사 없이 응소해도 될 정도로 쉬운 사건이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어째서일까? 당사자는 당사자 같질 않고, 당사자 아닌 사람이 당사자 같이 나서는 이유. 혹시 ‘구상(求償)’ 때문이 아니었을까?

구상권이라는 법률용어의 의미는 타인을 위해 재산상의 이익을 출연(出捐, 금품을 내어 도와준다는 의미이다)한 자가 그 타인에 대해서 지니고 있는 반환청구권인데, 구상에도 여러 가지 경우가 있다. 연대채무자의 1인이 채무를 변제했을 경우에 다른 연대채무자에게, 보증인·물상보증인이 채무를 변제한 경우에 주채무자에게, 저당부동산의 제3취득자가 저당권자에게 변제한 경우에는 채무자에게 각각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민법에서는 그 외에도 타인의 행위에 의해 배상의무를 부담하게 된 자가 그 타인에게(민법 제465조, 제756조, 제758조), 타인 때문에 손실을 입은 자가 그 타인에게(민법 제1038조, 제1051조, 제1056조), 그리고 변제에 의해서 타인에게 부당이득을 발생하게 했을 경우에는 변제자가 그 타인에게(민법 제745조) 각각 반환청구를 인정하고 있는데 이런 경우에도 구상권이라는 용어가 쓰인다.

어찌 됐건 구상이란 다른 사람을 대신해 채무를 변제한 경우 본래 책임을 졌어야 할 사람에 대해 갖는 반환청구를 뜻한다.

위탁관리의 경우 관리주체와 관리소장의 관계 역시 이와 같은 구상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분명 소송의 당사자인데도 당사자 같지 않았던 이유가 패소하더라도 궁극적인 책임은 회사가 아니라 관리소장이 부담하리라는 기대가 일종의 안전장치처럼 버티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만약 그런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는 주택관리업자가 있다면 최근 경종을 울릴만한 판결이 있었다.

과태료를 납부한 주택관리업자가 관리소장에게 과태료 상당을 손해배상으로 구상한 사건에서 원고 청구가 기각된 것이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주택관리업자에게 부과된 과태료를 주택관리사인 관리소장에게 손해배상 등의 명목으로 부담시키는 것은 위탁관리의 경우 관리주체를 주택관리업자로 규정하고 있는 관련 법령의 취지를 형해화할 수 있어 그 요건을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면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인천지방법원 2018. 5. 3. 선고 2017나10299 판결).

물론 이 사건 판결의 의미를 확대해 주택관리업자가 관리소장에게 구상을 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관리소장의 과실로 인해 과태료가 부과됐거나 안전사고가 발생했다면 관리주체는 관리소장에게 구상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위탁관리에서 관리주체에 해당하는 주택관리업자와 실제로 관리업무 업무를 수행하고 실무를 담당한 관리소장 사이의 구상은 구상이고, 주택관리업자가 관리주체로서의 권리·의무의 귀속주체가 된다는 점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주택관리업자가 관리주체라면 진정한 당사자로서 맞서 싸워주길 바란다. 관리소장에게 구상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손해의 발생을 예방하는 데 소홀하거나 소송이 들어와도, 부당한 과태료가 부과돼도 적극적으로 다투지 않는다면 관리주체의 의미가 무색해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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