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민주주의.
지역에 살고 있는 평범한 주민들이 자각을 하고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민주주의의 한 형태다. 이 말이 사용된 지는 100년이 채 안 된다. 1930년대 미국에서 처음 쓰기 시작한 이 말에는 기존의 중앙집권적이며 엘리트주의적인 정치를 탈피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래서 풀뿌리 민주주의 하면 많은 사람들이 지방자치제를 떠올린다.

풀을 뽑아보면 잔뿌리가 많다. 이 뿌리들은 물과 양분을 흡수해서 식물이 잘 자랄 수 있게 해준다. 지방자치제를 풀뿌리에 비유하는 것은 지역의 아주 작은 문제는 물론 주민들의 실생활에 밀접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유기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치제도로서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의미를 생각할 때 우리나라 풀뿌리 민주주의 실천의 가장 기초적인 현장은 아파트다. 이미 우리나라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이 75%를 넘었다. 아파트 공화국이라 불려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이 ‘공화국’의 풀뿌리가 개개의 아파트 단지들이다.

아파트 관리 현장은 국가적 정치 현장의 축소판이다. 의회에 해당하는 입주자대표회의는 입주민을 대표한 의결주체다. 주민들 스스로가 동대표를 뽑고 자치적으로 운영한다. 이들은 헌법에 해당하는 관리규약을 만들고, 행정부에 해당하는 관리 집행을 담당하는 관리소장·관리회사 등 관리주체들을 선택한다. 동대표들은 아파트의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관리에 소요되는 비용을 분담하며, 관련된 정보를 입주민들에게 공개함으로써 투명하게 운영하려고 한다.

아파트가 잘 굴러가기 위해선 이들을 잘 뽑아야 한다. 진짜 아파트를 위해 머리 아프게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일부 정치판처럼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눈에 쌍심지를 켜는 사람도 있다. 세금이 줄줄 새듯 자칫 방심하면 아까운 관리비가 털린다. 눈을 크게 뜨고 투표를 잘 해야 한다.

아파트는 민주주의를 익히고 훈련할 수 있는 좋은 학습장이다. 근래 들어 층간소음, 이해관계의 충돌·대립 등 입주민 간 분쟁이 부쩍 늘고 있다. 그래서 더욱 더 이해조정을 하고 양보와 타협, 협조 등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개별 단지들의 실상을 보면 가슴이 탁 막힐 때가 있다. 낮은 참여도 때문이다. 관심도 없고 시큰둥하다. 공동체 활성화 등을 장려하고 유도하지만 아파트의 폐쇄적 문화 특성상 참여도가 낮다. 동대표로 봉사하려는 입주민들이 없어 대표회의 구성에 애를 먹는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민주주의는 참여를 먹고 산다. 내가 사는 아파트 게시판을 열심히 보고, 공동체 활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동참해야 한다. 아울러, 관계 당국은 불합리한 제도를 바꾸는 등 측면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개별 아파트 단지들에서의 풀뿌리 경험이 쌓이고 쌓여 튼튼한 토대를 이룰 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흔들리지 않고 강해진다.

곧 치러질 6·13 지방선거에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초인 ‘아파트 관리’에서 경험을 쌓은 많은 이들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대표회장, 지역아파트연합회장, 관리소장, 관리업체 대표, 부녀회장 등 다양하다. 단순히 권력이나 공명심에 의한 출마라면 풀뿌리 민주주의를 배신하는 것이다.이들 중에는 공동주택 관리와 관련한 조례 등이 제대로 채택이 되지 않자 “내가 직접 의회로 진출해 내 손으로 조례를 만들겠다”는 후보도 있다. 아무쪼록 많은 사람들이 입성해 초심을 잃지 않고, 공동주택 관리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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